어느 미대졸업생의 이야기
※ 인터뷰를 토대로 쓴 글입니다.
시각디자인에서 서양화, 지금은 심리학
“미대를 졸업했고, 현재 심리학 대학원 진학 준비 중입니다.” 인터뷰 전 짧게 자기소개를 준비해달란 말에 그가 했던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짧고 간단했던 소개가 그의 성격을 온전히 나타내는 것 같다.
1993년 7월 11일, 천안 출생인 임세린(가명, 26)씨는 현재 미술대학(서양화과)을 졸업하고 심리학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초등학생 때 방과 후 보충수업을 통해 미술을 처음 접했다. 대학엔 시각 디자인과로 입학했고, 2학년 때 서양화로 전공을 바꿨다. 그가 이번엔 심리학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 심리학은 ‘나만의 온전한 첫 선택’............................................. 1
물론 그가 지금까지 미술을 해 온 이유는 '좋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미술조차 자신만의 온전한 선택이었냐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모습과 본바탕 그대로의 자신 사이에 괴리감을 느껴왔다.
임세린 씨는 자신이 잘못됐다는 투의 잔말에 계속해서 부딪혀왔다. 서양화를 하고 싶었던 그에게 "순수미술로 뭐하고 먹고 살 거냐"는 비난이 빗발 쳤고, 결국 디자인과로 대학에 입학했다. 입학 자체에도 문제가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당시, 세린 씨는 원하는 대학에 모두 떨어져 재수를 하고자 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원서접수를 한 부모님에 의해 그는 대학에 입학하게 됐다.
사실 미술을 좋아했던 세린 씨에게 "미술은 완전무결한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자신에게 회의를 품게 된 것은 주변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런 그는 어릴 때부터 서둘러 집을 나오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아르바이트를 자처하며 자취방을 구했지만, 그는 대학생활 동안에도 부모의 그림자를 벗어나진 못했다. 계속해서 부모님의 재정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사실상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하기엔 무리였다. 그는 자기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자신의 내성적인 성격도 한몫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사실 내 주변을 둘러다 봐도 재정적으로 독립한 친구(대학생)들은 많지 않다. 그런 친구들은 부모님이 원하는 바가 자신과 다를 때면 깊은 고민에 빠지곤 한다.
현재 임세린 씨는 대학을 졸업했고 재정적으로도 독립했다. 그런 그는 심리학 대학원 준비와 더불어 평일과 주말 아르바이트를 모두 하고 있다. 새벽같이 도서관에 가고 저녁엔 일을 한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생활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힘든 내색을 하지 않을뿐더러 괴로워 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심리학 공부를 '온전한 자신의 첫 선택'으로 보았다. 하지만 사실 '첫' 선택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변해왔다. 조금의 생활비로 보탬이 됐을 뿐이지만 아르바이트를 조금씩 시작했던 순간. 자신이 원하는 전공으로 전과를 결심했고 준비했으며 실행에 옮겼던 순간들이 그렇다. 사실관계를 차치하더라도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점진적인 그리고 확연한 정서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분명컨데 긍정적인 변화였다.
갑자기 달라지는 건 없는 것 같다. 사람은 더욱 말이다. 내면부터 서서히 변화하던 게 차츰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 주변의 눈에 띄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물론 어쩌면 자기 자신조차도 그 순간을 갑작스러운 '변신의 순간'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사실은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바뀌어 온 것인데도. 임세린 씨도 그랬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오랜 기간 미술을 해오던 그가 심리학을 공부하겠다고 나선 건 돌연한 일이 아니다.
꿈의 힘이라는 것은 참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실제로 꿈을 가진 아동·청년은 꿈이 막연하거나 없는 아이보다 행복지수, 자아존중감, 학교생활 적응도 등 모든 지표가 긍정적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 월드비전, 동그라미재단 연구
하지만 꿈을 갖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것 같다. 주변의 내 또래 친구들 그리고 아이들에게 꿈을 물을 때면 ‘구체적인 무엇’을 듣는 경우는 드물다. 보통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란 답을 받는 경우가 많다.
# 임세린 씨는 미술에 회의감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미술을 좋아하고 있었다......... 2
단지 심리학이라는 새로운 열정을 찾았다고 하는 것이 좋겠다.
처음엔 자신을 위해 심리학에 발을 들였다. 눈에 띨정도로 독특한 스타일을 가진 그는 고등학생 때부터 동성애자 등 많은 오해를 받아왔다고 고백했다. 끊이지 않던 소문에 의한 괴로움이 쌓이고 쌓여, 그는 대학생이 돼서야 교내 상담센터를 찾게 된다. 당시 대학교 2학년, 21살이었다. MBTI, 성격진단검사 등 세 가지의 검사를 받았다. 일주일 후 그는 ‘면담 필수’라는 결과를 받게 된다.
임세린 씨는 근거 없는 소문에 오랫동안 시달려왔다. 두 번째로 만났을 때, 그에게 당시 가장 힘들었던 점이 무엇이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는 힘듦의 대상이 어떤 인물은 아니었다고 했다. 적어도 그의 눈엔 어떤 악의적인 사람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고통스러웠던 것은 근거 없는 소문이 사실로 여겨지는 현실이었다. 오해가 쌓여 사실이 된 순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고통을 느끼는 것 외엔 없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그저 미웠다.
소름이 돋았다. 소문은 참 끔찍하다란 생각을 했다. 소문에 의한 고통은 누군가와 주먹다짐을 하는 것과 엄연히 다르다. 소문의 고통은 주먹 한 대를 맞는 것처럼 한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고통이 언제 끝날 지를 알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소문이 사실로 여겨지는 현실에선 그 유발자가 누군지도 알 수 없다. 끔찍함은 바로 여기에서 나타난다.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는 피해자는 자신을 탓하게 된다.
이후로 임세린 씨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상담을 꾸준히 받았다. 동시에 그는 한 친구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프로젝트란 '일주일에 두 번 만나 두 시간여 동안 대화하면서 서로를 이끌어주고 자신을 발견해가는 것'이었다. 나아가 그는 상담과 프로젝트를 통해 이끌어낸 감정을 자신의 졸업작품 속에 담고자 했다. 졸업작품에서 그는 시간 흐름 속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아우르는 가치관을 ‘박스’들로 표현했다. 졸업작품을 마무리 짓는 순간, 그는 그동안 겪어왔던 아픔을 정리하며 내려놓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처음엔 내가 너무 힘들어서, 내 아픔을 극복하려고 그렇게 애썼는데. 조금은 극복하고 보니까 예전의 나 같은 사람을 돕고 싶어 졌다”
임세린 씨는 주변에 기대며 자신의 아픔을 극복해가는 과정 속에서 자신도 누군가에게 버팀목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전문지식을 쌓아야 함을 절실히 느꼈다. 그렇게 심리학에 입문했다.
아직 어수룩하지만 상담도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이 상대에 대해 과도하게 감정 이입하는 버릇이 있음을 느꼈고, 본래 목표했던 ‘상담가’란 직업에는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연구원이든 상담가이든 심리학을 계속해서 공부하는 것엔 변함없을 것이란 말로 이야기를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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