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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xtHaDes May 15. 2018

나는 노래한다.

켈베로스산책


막내긴 하다.

하지만,귀여움의 대상도, 애정의 대상도 아니다.

뉴에라 느낌은 하나도 안나는 직선 모자챙

힙한 느낌 없이 크기만 한 군복,

밖에서 옆으로 드는 건 봤지만 등 뒤로 맬줄은

꿈에도 몰랐던 더블백

나에게만 새롭지, 나를 제외한 모두에게는 낙서위치와

내용까지 기억하는 그 공간

살면서 가장 힘차고 공손해 보이는 말투를 구사하며 군인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할수록 개그가 되는 그런 환경

왼쪽과 오른쪽 눈에 호기심과 연민렌즈를 껴고 몰려든

나빼고 서로 다 아는 사람들

이 속에선 박보검과 정해인도 초라해진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作 방문객



물론, 이등병도 사람이니,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오긴 온다.

관심을 두지 않을 뿐.

그에게 관심을 갖기엔 여자아이돌이 많은

나라에 살고 있다.


나 또한 무관심 반 호기심 반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10여년이 지나 이등병 시절의 힘듦을 생각해보자면,

강원도 인제의 추위도,

모든 것이 낯설고 차가운 시선도 한 몫했지만,

의외로 노래를 ‘흥얼거릴’ 수 없다는 현실이 견디기

어려웠던 것 같다.

자신의 ‘일’을 덜어줄 후임이 생겨서 잠시 좋아하다가,

내가 그의 ‘일’이 되었음을 깨달은

나의 선임은 내게 내무실에서 지켜야 할

무수히 많은 것들 중 하나로

노래를 흥얼거려선 안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지나고 나서 안 사실이지만, 그 선임은 대학교에서

노래동아리 회장직을 맡고 있었다.

본인의 경험같았다.

하지말라고 하는 것들은 사실,

자신이 했다가 ‘당한’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

다른 무수히 ‘안되는 것’을 암기가 아닌 ‘숙지’하던 내게, 그건 너무나도 쉬운일 처럼 느껴졌다.


당시, 이등병의 노래는 딱 세 가지만 허락되었다.


1.  부대행사 및 훈련 시 애국가, 군가, 대대가

2. 모두가 모여 작업을 할 때, 상병의 동의하에 분위기를 띄워줄 노동요

3. 일요일 교회에서 부르는 찬송가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등병에게 해당되는 사항이었다. 모두가 지키면 그것은 법이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그것은 공중도덕으로 변모한다.


당시, 이등병의 노래는


1. 별로 힘들지 않음

2.일을 많이 하지 않음

3.여유있음


의 증거로 이해됐다. 이등병은 힘들고, 일을 많이해야하며 여유가 있어선 안되는 존재라고 대부분 ‘동의’했다.

나 역시 그렇게 ‘동의’했다. 그것이 이등병의 역할이었고 자세였다. 고로 이등병끼리도 누군가가 노래를 부른다면 쳐다볼 정도였다. 민간인이었던 우리들의 모습은 정문 위병소 바위 밑에서나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등병, 이 직책은 22년간 살아온 우리의 모습을 말끔히 지우는데 앞장섰다.


별다른 주의를 하지 않고 지내던 어느 날

주말 종교활동을 끝마치고 세면장이었던 것 같다.


“...야”
“이병 X X X”
“너, 방금 노래불렀지”
“아닙니다.”


나는 ‘공중도덕’을 어겼다.

사실, 노래를 흥얼거렸던 것 같기도하고 아닌 것 같기도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군필자는 알것이다.

저 상황에서 사실유무는 별로 중요치 않다. ‘야’ 라고

부른 시점에 이미 판결은 나 있는 것이다.

크게 혼나진 않은 것같다. 어차피 걔도 나도 걸레를 빨고 있었을테니까. 나보다 고작 두 달 빠르게 호기심과 연민의 대상이었던 OO와 OO.


무의식적이었다.

내가 흥얼거렸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전혀 노래가 나올만한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그럴 의지가 있지 않았음에도 나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걸레를 더 잘 빨기위해서라면 내가 왜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을까.

부르자마자 규율을 어긴 것에 대한 방어기제였을까

완벽한 거짓말은 완벽한 믿음에서 태어난다.

‘했지만 절대 하지 않았다’고 믿음으로서 말이다.

하지만, 그정도의 위협은 아니었다.

왜, 나는 그때 노래를 불렀을까.



頭2 : 노래를 통해 드러나는 태양


'오후의 햇살'


다섯글자로 나타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나른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살은 그 출발점이 전혀

그런 정도의 것이 아님에도

흩뿌려 내려쬐는 탓에 우리의 감정을

기분 좋게 감싸안는다.

심지어 비타민D합성에도 관여한다.


하지만, 온화한 햇살을 한점으로 모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돋보기를 통해 하나로 모으면

그제서야 햇빛의 모체가 타오르는 태양이었음이

드러난다.

흩어져 있을 땐 모르지만 한 점으로 모이면

강한 힘이 드러난다는 사실,

아쉽게도 이 사실은 슬픈 역사를 통해 확인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요한 함성

목소리를 모으지 않아도
일상이 유지되었다면
쓰러질수록 일어나는 노랫소리와
갓난아이의 웃음을
동시에 보지 않을 수 있었을까

길 잃은 장송곡이 산 속 깊이 울려퍼지면
자장가 없는 밤과 울지 않는 아이만이
영문도 모른 채 따라부른다.


봉기 하루 전날에도 그들은 평범한 농민이었다.

자신이 일한 만큼 굶지 않고, 솟을대문은 없지만

안락한 방 한칸과 아이의 웃음소리로만 삶을

채울 수 있었다면, 그들은 돌아올 수 없는 지옥길로

향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코 민중이 전사가 된 것이 아니다.

그들의 일상이 전쟁터가 되었을 뿐이다.

이기리라는 확신도 없이 밭이 아닌 위를 향하게 한

발화점은 고부군수 조병갑에게 있었지만

전쟁터를 만든 건 조병갑이 생존할 수 있던 시대

그 자체였다. 알다시피 시대는 누가 만들어서

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관심이 내리쬐지 않는

음지에서 자란 병든시대는 부모를 원망하는 아이처럼

울부짖으며 부모를 거리로 불러내 한을 토했다.


1894년 그 날 이후 우리는 다시 수 차례

음지에서 탄생한 시대를 마주했다.

병든시대의 모습은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으나

대치하는 이들은 매번 다른 모습이었다.

이전 세대의 과오는 잊혀졌고 그 대가代價는 잔혹했다.


1919년, 흩어진 목소리는 거리에서 함성이 되었고

60년이 지난 그 해부터는 피로 새긴 음표위에서

함성은 노래가 되었다.

그렇게 얼어붙은 서울의 봄은 햇살이 아닌

태양의 노래로 가득했다.

병든시대를 불태우며 나약한 우리안에 총칼을 태우던

불길이 여전히 존재함을 노래를 통해 드러냈다.


찢기는 가슴 안고 사라졌던 이 땅에 피울음 있다.
부둥킨 두 팔에 솟아나는 하얀 옷에 핏줄기 있다.
해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 벌판
우리 어찌 가난하리오 우리 어찌 주저하리오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

- 노래를 찾는 사람들 <광야에서> /
원곡: 문대현(성균관대 무역학과 82학번) 작사 작곡


모든 것을 태울만한 힘이 우리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지배계층은 몰랐을까.

어떤 한 점으로 모이는 것을 꺼리며

분열을 조장하는 것은 통치자의 클리셰다.

지난 인류 역사를 통틀어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무엇을 야기했는지 그들은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노래는 병든시대를 태우기 위한

돋보기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듣기만 해도 외울 수 있다는 점은 글자를 읽지 못해도

상관없다는 점에서 더 피지배계급과 맞아 떨어졌다.

메시지의 축약과 반복을 통해 전파되는 노래야 말로

민중을 하나로 모으는 비밀요원이었다.

구전이 강력한 메시지 전달 수단 중 하나라는 건 부처 사후死後 구전을 통해 탄생한 불교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당시의 우린 노래를 통해 소극적 존재감을 드러냈다.





頭3 : 내가 너를 부른다 그것이 노래다


시는 노래고

노래를 콘서트장에서 듣는 건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몰랐다.

아이돌의 콘서트에서 김춘수의 꽃을 듣게 될 줄.

그들은 자신들을 잘 표현하는 ‘시’라며

한 사람씩 돌아가며 꽃의 구절을 낭송했다.


4월22일, JBJ 는 그렇게 김춘수의 <꽃>을 낭송하며

짧았던 JBJ 로서의 활동을 종료하며

팬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
(생략)

김춘수作 《꽃》

존재와 본질을 건드리며 몸짓에 이름을 더하니 꽃이 되었다는 전개는
네이밍 꽤나한다는, 혹은 관심있어하는 이들의 먹잇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예전, 산업의 모든 영역이 인문학을 한번쯤 엮고 들어가던 것이 ‘힙’ 한 것으로 치부되던시절,
브랜딩은 김춘수의 꽃을 낚아챘었다.


모든 아이돌이 팬들의 사랑을 먹고 산다지만,

팬들의 사랑을 먹을 수 있는 상태까지 오기 위한 여정에

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많지 않다.  

즉, 아이돌(혹은 연예인)의 탄생의 결정적 역할은

팬이 아닌 연예기획사가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데뷔하고나서야 비로소 팬덤의 화력이 그들의

생존력에 영향을 미친다.


JBJ는 그 팬덤의 화력이 데뷔를 결정시켰다.

각자 구성원의 팬들은 그들의 데뷔가 현실이 되길

매일 같이 노래했다.

JBJ를 탄생시키려한 팬들의 염원은 , 타 팬덤이 보기엔

백일몽(daydream)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팬들은 그들의 몸짓에 ‘JBJ’란 이름을 더했고 꽃이 될 기회를 부여했다.


프로듀스101 시즌2 - 최종 11명에 들어 데뷔하지 못하고 선발된 워너원을 향해 박수를 보낼 때, 탈락자,

즉 JBJ멤버들은 자신들의 이런 운명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그간의 서러움을 달래려 하는듯

‘Fantasy’를 첫번째 곡으로 활동의 서막을 알렸다.

팬들의 염원이 백일몽이 아님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노래는 그들의 존재를 여지없이 드러내주었다.


You’re not a daydreamer
지금 네 눈앞은
너의 시공간을 멈출 새로운 fantasy
네가 날 불러
간절히 원할 때
네 몸 곳곳에 번져 감각을 깨울게
#
(생략)
#
너가 내 이름을 불러준 순간에 I’m alive
미로 안 갇힌 날 이끌어 준 건 너야 right
내 목소리가 피어나길 바래 너의 귓가에 또 마음 안에 너는 상상해 내가 만들게
꿈꾸던 모든 게 다 가능하게
#
JBJ <Fantasy​>  중

‘팬’타지로 나타난 그들은 팬을 향해 ‘꽃이야​’를 외쳤고

가요프로그램1위를 거머쥐었다.

순위프로그램의 신뢰도는 둘째치고,

팬들의 손으로 데뷔시킨 그룹이 1위를 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김으로써, 전통적 형태의 연예기획사는 비즈니스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을 것이다.

모든 서비스가 온디맨드(Ondemand)서비스로의

전환을 도모하는 이 시점에, 기존방식을 고수한다는 건

소비자의 수준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것과도 같다.

취향을 큐레이션 해주는 서비스가 태어날 때 부터 존재한 이들에게 생산과정을 비밀에 붙이고 가요계에 등장 시킨후 홍보하는 형태의 기존 비즈니스 모델은

매력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값을 지불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직접 팬의 손에서 탄생한 그룹과,

그 그룹이 1위 하는 것을 목도한 세대라면 더더욱

기존 생산방식에 더욱 의구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JBJ는 2018년 4월 22일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해체했다.

팬들이 그들의 몸짓에 이름을 더해 JBJ가 되었듯,

그들은 남겨진 팬들을 향해 마지막 노래를 불렀다.

#
널 부를게
 
피어난 널 만나 아름다웠다
내겐 참 소중한 사람
잊지 말아줘 어느 좋은 날 내가
네 이름을 부를게
 
네가 없는 하루 생각조차 싫지만
마지막이 아니야
잊지 말아줘 날 기억해줘 내가
다시 한번 널 부를게
#
JBJ <부를게>​ 중


백일몽으로 여겨지던 팬들의 염원은 노래가 되어

존재를 일으켜 세웠다. 유의미한 존재감을 얻은 그들은 노래를 통해 팬들에게 의미를 부여했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음을 시인한 이들의 이야기는 내게 있어 아주 흥미로웠다.

그 서사가 전개되는 방식도 서사의 주체도 모두.

아마, 내가 강연을 할 때 즈음이면

김춘수의 꽃을 제치고 가지런히

빔 프로젝트 화면 어딘가에 자리잡게 되지 않을까.

그전에 누가 나를 불러줘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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