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베로스산책 : 광고인들을 ‘다시’ 만나다.
네, 카피라이터를 준비중입니다
그냥, 이 말이 좋았다.
이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공간’과‘시간’만 있다면
되진 않았지만, 된 사람처럼 이야기했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는 ‘미래공식’이라는 것이 지금보다는 말이 되는 시절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OO대학 OO전공은 그 업계 선배로 가득하다”는 이야기를 다양한 채널을 통해 들을 때마다
내게 기회는 영원히 없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대학 그 전공이 아니었고, 그 전공과 두고 고민하는 ‘전공’도 아니었다.
그 당시의 나와 꿈과의 거리는 돌이켜보면 굉장히 멀었지만
그때는 체감하지 못했다.
우리가 중력의 매우매우매우 거대한 힘을 평소에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거리가 아득히 멀어 오히려 거리감을 몰랐기에 닿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카피라이터에 닿지 못했다.
드라마는 없었다. 현대서사의 전형.
Whirlwind 이기 때문에 휠윈드가 아니라, 훨윈드로 읽어야한다부터 원래 묵음이라 월윈드에
가까운 발음이다란 주장을 너무 존중한다. 하지만 당시 코어타깃에겐 훨보단
[돈다=바퀴=휠]의 언어연상 + Wheel&Whirl 형태 및 예상발음 유사 + 훨(Whirl)스펠링 초면
-> 휠윈드 탄생
나는 이 겜성(감성+게임성)을 밝혀 적고 싶다.
나는, 광고를 전공專攻하지 않았다.
전공專攻의 ‘공攻’은 ‘공격하다’의 의미다.
공攻은 한자의 형성 당시, ‘무기를 들고 치다’의 의미로 쓰였다.
한 곳을 무기로 치는 것이 전공이다.
무기를 들고 친다는 것은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속 나의 생존을 보장받기 위한 행위다.
따라서 현대사회에서 아직까지 전공은 ‘생존=밥벌이’ 수단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당시, 비 전공자인 나는 생존을 위한 수단을 광고로 선택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의 전공과 생존수단에 대한 이해는 그러했다.
A전공은 a가 되기위한 관문이자 a가 된 길드원으로 가득한 길드의 출입구처럼 여겨졌다.
어쩌면 그 ‘길드’ 자체보다는, 항상 같은 것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 하는 길드원으로 가득할 것이란
상상이 내게 부러움의 감정을 줬는지도 모르겠다.
선망이란 원래 [ 나의 기대감 + 주변인의 시선 - 실제경험 ] 과 같다.
실제경험이 0인 내게 아직 명함은 커녕, 명함을 달 수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밤새, 공통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싸우고 떠드는
그들만의 시간이 부러웠다. 나의 크로노스속에 그들의 카이로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카이로스 : 의미있는 순간, 기회가 되는 시간
크로노스 : 절대시간, 흐르는 시간
한번도 경험해 본적은 없지만
나에게 그것은 어쩌면 ‘카피라이터’ 자체 만큼이나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던 것 같다.
꼭 경험을 통해서만 중요한 것을 인식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 전공을 나는 지금 뭐라고 이해하는 편이 좋을지 아직도 ‘결정’할 수는 없지만
미봉책彌縫策도 ‘策’ 이긴 하니 이야기해보자면,
‘지금 당장 정량적 수치로 드러낼 수 없지만 산출물에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되는
두 가지 단어가 도움을 줄 것 같다.
‘마인드’와 ‘베이스’ 다
사실, 마인드는 스스로 이야기 할 때 활용되고 누군가가 ‘평가’ 할땐 ‘에티튜드’로 불릴 때도 있다.
베이스는 ‘~인데 도 할 수 있는’ 정도의 의미일까? 두 사람이 해야 할일을 한 사람이 해야하면(또는 할 수 있으면) 베이스(깔고간다)를 종종 쓰는 듯.
디자인베이스의 카피, 기획베이스의 카피, 카피베이스의 기획 또 뭐가 있더라 기획베이스의 에디터, 에디터베이스의 기획 이런것도 가능할까
참, 효율지향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직감적으로 전공이 두 개면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곳도 두 곳(또는 이상)이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한창 파이형 인간이니 이런 말에 혹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보’면에서는 물론 ‘경험’면에서도 말이다.
그래서인지, 전공을 마인드(또는 베이스)로 업계를 휘몰아치려면 또 다른 손에는 ‘무언가’가 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왼손에 새로운 전공專攻을 들고
오른손만큼 자유롭진 않겠지만, 오른손을 도와 나의 생존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휘몰아 칠 수 있길 기대하며.
전공專攻을 대신 할 무언가를 찾았고
그 길에 비슷한 생각을 했던
사람들을 만났다.
대부분, 왼손은 빈 손이었다.
배니싱트윈(Vanishing twin)
쌍생아소실, 산모의 태내에서 쌍둥이 중 한 명이
한명에게로 흡수되어 소실되는 현상
카피라이터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AE, CW, AD 한 때, 나의 직업관을 지배하던 이 세 단어는
지금 내게서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당시 빈 손으로 방황하던 우리 중 몇몇은
‘광고’와 전혀 다른 일을 하고있고 일부는 ‘광고’를 하다가 그만뒀고,
또, 나처럼 밖에서 누가 보면 다 비슷해 보이지만
‘우리’가 볼땐 차이가 너무 큰, 관련업계에서 일하는 경우도 있다.
그 시절은 모두에게 ‘의미있는’시간이었을 것이다.
지금 모두에게 그 기억이 어떤 ‘의미’로 작용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의미의 크기는 어떠한지
만약 다르다면 어디에 기준을 두고 맞춰야할지
혹은 꼭 맞춰야하는지도.
‘기준’의 오남용은 위험하다. 폭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기때문이다. 홀로코스트가 그랬듯.
한참을 잊고 살았다. 내가 정말 ‘카피라이터’를 꿈꿨던 사람인지
함께 일하는 동료의 말처럼 그냥, 지금 하는 일을 하기위해 살아온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발현된 것은 지금의 ‘내모습’이지만
나의 체내 어딘가엔 ‘그 시절의’ 내가 있다는 것을 엊그제 확인했다.
지금의 나의 인식과 사고의 바탕은 모두 그 시절 그 ‘매트릭스’ 안에서 성장했다.
비록 일정시간이 되어 사회인으로 태어났고 한동안은 그것을 잊고 살았지만.
실제 모체가 되던 그 곳은 작년 73기를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더 이상 그곳으로 한 손에 전공을 ‘더’하기 위해 찾아오는 나같은 바바리안은 없을 것이다.
내 옆과 앞에 한 때 나의 꿈이었던 사람들이 앉아 있다.
꿈이 내 앞에 마주하고 있다.
내가 이루지 않아도 그걸로 됐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통해 완성했으니.
내 꿈은 그들 안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광고’를 품었던 그 시절의 우리가 곧 나고 내가 곧 그 시절의 우리다.
나는 ‘우리’에서 태어나 다시 ‘우리’가 되었다.
광고가 전부였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또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전부일 것이다.
또 어떤 형태의 베니싱트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을 하며 ‘생존’하더라도 그 시절의 ‘우리’는 강력한 ‘전공’으로 우리의
생존과 성장을 도울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