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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영 Jun 06. 2020

내 기준이 과연 내 것일까

나는 내가 어렵다

어렸을 땐 뭐든 확고했다. 특별한 기준 없이도 명확하고 또렷했다. 아득바득 우기며 나를 내세우고, 싸운 뒤 이기고 굴복하길 반복했다. 틀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존재가 증명된 생각했다. 초년생에게 마련되는 당연한 자리는 숫자가 더해질수록 사라진다. 화려한 색에 미운털이 박히고, 무채색은 칭송받는다. 튀는 건 무질서하며, 문란했다.


투명해다. 예의라고 가르치는 것들은 내게 가식을 씌웠고, 갖은 방아에 치와 불신을 배웠다. 시선은 개성을 죽였다. 명랑과 쾌활은 어린아이에게만 허락된 천진난만함이었고, 고충과 고뇌는 어른이 감수할만한 진리다. 기대와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 걱정과 불안에 대한 고찰만이 그럴듯한 삶을 완성했다.


그게 철이 드는 거지. 사람들은 말했다. 철이 든다는 건 내가 흐릿해지는 건가요. 묻고 싶었다. 고 싶은 것과 안 되는 것 사이에서 갈망했다. 옳고 그른 통념에 감금되었다. 


나는 명랑하고 쾌활했다가 침착하고 날카로웠다. 기대했다가 절망했다. 친절했다가 매정했다. 배신했다가 사과했다. 이상을 좇다가 현실에 치였다. 세월에 부딪히면서 낡았다. 가지런한 질서 사이에 헐거워진 날 끼워 넣고 출렁출렁 흔들렸다.


의도없는 모순 가감 없이 날 까뒤집고 있다. 모질고 계획적 모습이 해맑고 충동적인 모습을 힐난하고 있. 군상에 가까워질수록 모순의 간극은 좁아지고 있으나 간극이 좁아지길 바라는 건지 알 수 없다.


나는 날 잘 알았었는데. 내가 날 가장 잘 알아야 하는데. 투명하다가도 탁해지고, 탁하다가도 투명해진다. 아스팔트 위에 고인 웅덩이처럼 세상을 비추다가도 발길질에 어그러진다. 교육된 기준에 잡아먹힌다. 주눅 든 신념을 조롱한다. 나는 나를 불신한다. 선명한 모든 것을 추궁한다. 줏대 없는 용기를 질책한다. 그리고 용서한다.


정답 없는 일에 자꾸 정답을 어서

정답에는 정답이 없.


그래서 나는, 내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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