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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jin Kim Jan 18. 2019

잠든 기계과 신들의 박물관

Centrale Montemartini

로마에서 맞는 세 번째 겨울. 

상반기 세일이 시작되어 주말마다 거리가 붐비고 온갖 상점들이 새빨간 할인마크들로 유혹을 하지만... 

세 번의 겨울이 지나며 자그마한 내 방 여기저기 쌓여가는 갖가지 물품들 덕에 이제는 겨우 건조대를 펴둘만큼으로 좁아진 공간을 보면 이만큼 차오르던 물욕이 금세 사라져버린다.


허무한 물건에 파묻혀 지내는 현대인이라면 통감하겠지만 나 역시 언젠가 안정적인 생활을 한다면 최소한의 아주 소중한 물건만으로 삶을 꾸리는 미니멀리스트, 최소주의자가 되겠다는 다짐을 매번 새로이 한다. 


그러던 와중에 문득.. 

'만약 과거의 사람들이 모두 미니멀리스트였다면 그들이 남긴 유적도 아주 적은 양이지 않았을까? 

후대를 생각한다면 맥시멀리스트, 최대주의자로 사는 것이 좋을 지도 모르겠다' 

하는 뜬금없는 맥락의 생각이 들었다. 


나아가 개인이 아닌 사회적, 국가적 규모로 생각한다면 현재를 대변하는 문화를 최대한 많이 생성하고 또 그로 인한 결과물을 보존하거나 아로 새겨두는 것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는 말처럼 후대의 미래를 위한 의무이다. 라는 생각까지 


그런 면에 있어서 아무리 경제 대공황을 맞은 이탈리아라도 칭찬 받아 마땅하다. 적어도 (물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기 때문이라 할 수도 있지만) 유적지를 부시고 집을 짓겠다, 재개발을 하겠다, 하는 말은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본인이 가장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에 살고 있다고 입을 모으는 로마인의 자부심은 박수받을만 하지 않은가? 


이 천년 세월의 극장에 세워진 집, 경기장을 뒤덮어 만든 광장, 평범한 식당 아래 남겨진 유적 등..

이렇듯 고대 유물 위에 여러 시대의 문화가 덧입혀져 이내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 내는 독특한 광경은 영원의 도시 로마의 숙명이자 특기로 대채 불가한 매력을 형성해낸다. 



긴 서론을 줄이고 소개하고자 하는 로마의 또 하나의 명물이 있다. 

잠든 기계과 신들의 박물관 Centrale Montemartini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중인 건물의 최초 명칭은 Giovanni Montemartini로 당시 경제학자의 이름을 따서 1912년 6월 20일 로마에 첫 번째로 설립된 공공 전기발전소였다. 

테베레 강에 인접한 이 발전소는 1933년 베네토 무솔리니의 정권 수립 이후 전체주의 시절에도 전기 공급을 위해 활발이 운영되었다. 허나 기술발전으로 인해 제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3년부터 서서히 전기 공급을 줄이다 1963년 완전히 중단하게 된다. 

그 수명이 다 하기도 전에 멈춰져버린 발전소는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강가에 초라하게 버려져 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1997년.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의 한 구역이 리모델링 되는 기간동안 조각 작품을 옮겨둘 장소로 발전소가 선택되고 그 김에 발전소 기계들과 함께 "The Machines and The Gods" 라는 제목의 단기 전시회를 열게 되는데.. 

전시의 반응이 어땠는지는 자료로 찾을 수 없지만 단기 전시회가 상설 전시관으로 바뀐 결과를 보면 쉽게 유추할 수 있다.

현재 Centrale Montemartini 로 건물의 명칭을 바꾸고 로마시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발전소 였던 당시의 모습을 아주 생생하게 담고 있는 공간.

한 눈에 다 담기지 않을 만큼 거대한 크기의 검은 기계들 사이로 그리스 로마 시대의 오리지널 조각들이 새하얗게 앉아있으니 그 극단의 대비가 주는 힘과 위용이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기계에 붙어있는 DO NOT TOUCH 안내문

대체 무엇이 예술작품인가? 



두고 간 1파운드짜리 파인애플도 작품이 되는 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진 세상이니만큼



언젠가는 로마를 밝혔던 이제는 잠든 기계와 벽면에 설치된 배관들마저도 작품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벽의 배관들은 쉽게 파리 퐁피두 센터를 연상시키는데 퐁피두 건축팀 중 한 명인 Renzo Piano가 공교롭게도 이탈리아 출신이다. 자료는 없지만 혹시?! 몬테마르티니에서 영감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 




논외의 이야기지만 영원의 도시에 지내다보니 최첨단 도시가 되어버린 서울이 보잘 것 없어 보일 때도 있다. 

최근엔 몇 몇 역사마저도 아무 대책없이 밀어버리는 일을 서울 시장이 계획하고 있다하니 더 말할 것도 없다. 

백년 기업, 백년 가게를 운운하며 소공장인들의 살아있는 역사를 부숴버리는 모순은 대체 무슨 목적일까.

청계, 을지로와 평생을 함께한 장인들이 또 그곳을 제 집처럼 드나들던 여러 디자이너들이 일궈낸 역사가 원치 않는 재개발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있다. 이미 철거는 연초부터 진행되었는데 이에 워낙 많은 이들이 반발하니 최근 재검토가 이뤄진다고는 한다.

장인들 몰아내고 오래된 건물 철거해 지은 신식 주상복합 건물에 과연 기대만큼이나 화려한 'Makers' 공간이 만들어질까 의문이 든다. 




아무튼 다시 박물관으로 돌아와..

1912년 발전소로 시작된 이 건물은

이제 로마시 박물관이 되어 과거와 현재의 아우르며 장엄하게 서있다. 

무분별한 재개발과 빛 좋은 개살구 식의 도시 재생보다 

남겨진 역사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그들의 마음가짐이 오히려 로마를 더 매력적인 도시로 만들어 준다. 


건축을 짓는 목적이나 방식, 재료에 있어서는 분명히 다를 수 있다.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니까

하지만 건축이 보존 가치를 지니게 된다면, 그 유적을 다루는 방식과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만큼은 이탈리아를 본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여러모로 다양한 생각이 들던 박물관이었다.

기회가 닿는다면 꼭 한번쯤, 기계와 신들이 고요히 잠들어 있는 Centrale Montemartini 방문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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