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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스틴 Jan 25. 2021

마떼의 철학

아르헨티나의 평원을 담은 차  


이그나시오의 마떼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한번 즈음은 뇌리에서 잊을 수 없는 강력한 장면을 목도한다. 나에게는 친구 이그나시오 모습이 그랬다. 20대 초반의 내가 마주했던 잊을 수 없는 모습이다.


나는 당시 인턴으로 일하고 있던 회사에서 주관하는 행사로 아침 일찍부터 분주했다. 후다닥 채비를 마치고 거실로 나선 순간. 이그나시오를 보았다. 새벽 어스름 사이로, 거실 중앙에 홀로 앉아 있던 그. 바닥에 가부좌를 튼 채 한 손에는 스테인리스 주전자를, 다른 한 손에는 ‘마떼(Mate)’ 잔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경건히 잔에 물을 따르기 시작했다.  


혼자만의 시간에 박제된 듯 보였던 이그나시오. 거실 허공을 한참 응시하던 그는 이윽고 봄비샤(Bombilla, 빨대)를 얼굴 쪽으로 가져갔다. 어둠이 빚어낸 적요함과 마떼에서 피어오르는 뽀얀 수증기, 목각 같은 그의 자세가 조화로이 일치된 그 장면은 가히 감동스러운 것이었다. 하나의 의례 같은 경건한 모습에 압도된 나는 어느새 숨소리마저 죽인 채 그를 훔쳐보고 있었다.


이그나시오와 마떼, 그 어스름의 순간은 나에게 깊이 각인되었다. 그때부터였다. 마떼를 준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일이 잦아졌다. 특히나 스트레스나 압박을 심하게 느낄 때면, 조급함에 비례하는 만큼의 시간을 들여 정성스레 마떼를 우려내곤 했다. 나에게는 마떼를 마시는 행위가 일종의 명상이요, 테라피였다.


물론, 드롭 커피나 다른 차를 내리는 과정에서도 편안함을 느낄 수는 있다. 하지만 마떼만의 고유한 아우라와 에너지가 있다. 커피나, 루이보스 차가 주는 감동과는 그 결이 다르다. 투박하면서 진실하고, 강인하달까. 적어도 이그나시오의 모습을 본 이후로 나에게 마떼는 다른 무엇과도 치환될 수 없는 하나의 메타포가 되었다.


봄비샤로 마떼를 들이 마실 때면 아르헨티나의 드넓은 평원 ‘라 팜파(La Pamp)’가 통로 온몸에 드리우는 느낌을 받는다. 일상에 치여, 모가 잔뜩 설 대로 선 마음이 둥그러이 확장되는 느낌을 받는다. 아르헨티나의 느긋함과 그 허심탄회한 맛이 빨대와 식도를 거쳐 온 몸에 뜨끈히 퍼진다.


 공유의 철학


처음에 필자가 언급한 잊을 수 없었던 장면 속 이그나시오는 마떼를 홀로 마시고 있었지만, 사실 마떼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다른 사람들과 나눠 마시는 차라는 점이다. 우리네 다도처럼 각자 개인 잔에 차를 담아 마시기보다, 단 하나의 마떼 잔을 여럿이 돌려가며 마시는 문화다.


마떼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에게는 하나의 빨대로 여럿이 차를 돌려 마신다는 발상이 다분히 경악스러울 수도 있다. 실제로 위생, 보건 상의 이유로 마떼 문화를 미련 없이 스킵하는 외국인들도 많다. 게다가 코로나 19로 위생에 대한 개념이 더욱 엄격한 요즘, 외부인의 시선으로는 어딘가 위태위태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네 문화에서 한 찌개를 두고 여러 명이 숟가락을 넣어가며 함께 먹는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할 것 같다. 물론 요즘에야 개인 그릇에 덜어먹는 추세가 있다고는 해도, 우리네만큼 식탁 위 공유경제에 익숙한 문화권도 많지 을 것이다.


내가 마떼라는 걸 처음 알게 된 건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통해서였다. 20대 의대생이었던 평범한 청년 에르네스토 게바라가 오토바이를 타고 남미를 여행하면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고통을 체감하면서 '체 게바라'의 면모를 갖춰가는 성장의 과정을 그린 영화다.


체 게바라가 어느 황무지에서 고난한 여정을 계속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추위가 뼛속으로 스며드는 사막의 밤 한 원주민 부부를 만나게 되는데,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뒤 그들에게 망설임 없이 마떼를 권한다. 당시 마떼가 무엇인지 아예 모르던 나는 빨대로 뜨거운 물을 마시는 데 의아함을 느꼈다. 그리고 더 놀라웠던 건 방금 만난 완전한 이방인에게 그렇게 선뜻 마떼를 공유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사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마떼를 권하는 일은 흔치 않다. 모쪼록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대개 어느 정도 자신의 서클에 있다고 여기는 지인, 친구, 가족들 사이에서 마떼를 나눠먹는 편이다. 마떼를 함께 나누는 행위는 일종의 친밀감과 우정, 신뢰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체 게바라가 사람에 대한 신뢰와 인정이 많았다고 해석할 수 있는 지점이다.


한편 마떼를 책임지고 따르는 사람을 쎄바도르(Cebador)라고 부르는데, 물을 끓이고 마떼를 만드는 것부터 함께하는 사람들이 나름의 순서에 맞게끔 마떼를 돌리고, 리필하는 역할까지 풀 코스를 맡는다. 첫 잔을 시음하는 것도 쎄바도르다. 맛이 쓴 지, 탔는지, 온도가 적당한지 등을 체크한다. 누가 쎄바도르의 역할을 하느냐는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고, 매번 바뀌는데, 마떼를 먼저 먹자고 이야기한 장본인 혹은 그냥 내키는 사람이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그 다도 한 판(?)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마떼의 나라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국립 마테 셰르바 협회 (Instituto Nacional de la Yerba Mate)에 따르면 아르헨티나는 연간 1인당 110리터의 마테를 소비한다고 한다. 아르헨티나 내수 시장에서 연간 7억 5천만 달러 소비를 차지하는 중요한 산업이다. 아르헨티나 가구의 무려 95%가 마떼를 소비한다고 하니, 마떼 없인 못 살아, 정말 못 살아다.


심지어 아르헨티나의 한 커뮤니티는 다수 애플리케이션에 마떼 이모티콘을 추가해달라는 캠페인을 활발하게 전개하기도 했고,이윽고 2019년 Whatsapp을 비롯한 다양한 앱 서비스에서 마떼 이모티콘이 제공되기에 이른다.  


그런데, 꼭 아르헨티나에서만 마떼를 마시는 것은 아니다. 우루과이, 파라과이, 칠레 등 남미의 일부 국가에서도 마떼를 소비한다. 여기에 거대 라틴이민자 커뮤니티가 존재하는 미국은 물론이거니와, 중동의 레바논에서도 마떼를 소비한다.


그 중에서도 뭐니 뭐니 마떼로 가장 유명한 3개국을 뽑으라면 단연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3개국을 꼽을 수 있다. 이 3개 국가 간에는 일종의 '마떼 부심' 및 경쟁 기류도 존재하는데, 마떼의 진짜 원산지가 어디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가기도 한다.


이 해묵은 논쟁을 두고 BBC는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 마떼의 진정한 왕은 누구?>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내놓았는데, 이에 따르면 파라과이는 '마떼의 전통을 가장 잘 고수한 역사 왕', 아르헨티나는 '생산과 마케팅의 왕', 우루과이는 '소비 왕'으로 각각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마떼와 3개국의 특징이 집약적으로 잘 나타난 것 같다. 모두가 왕이라는 칭호를 가져갔으니, 나름대로 만족할 것 같다.


우루과이 사람들이 '소비 왕'이라는 데에 개인적인 감흥이 있다. 나는 여러 번의 우루과이 여행을 통해 그곳 사람들의 마떼에 대한 진한 사랑을 굉장히 인상 깊게 보았다. 그들은 길거리든, 자전거 위, 그 어디에서든 항시 옆구리에 보온병을 차고, 마떼를 숨 쉬듯 마시며 사는 것 같았다. 또 한 번은 스페인 마드리드 지하철에서도 보온병과 마떼를 가슴에 고이 품고 환승하는 한 남성을 보았는데, 비록 그의 국적을 확인할 수는 없었으나 내 남편에 의하면 그는 의심의 여지없는 "우루과이 사람"이란다. 이쯤 되면 아르헨티나인들도 우루과이인들의 뜨거운 마떼 사랑을 인정하는 것 같다.  


실제 우루과이는 인구 당 마떼 소비량이 전 세계에서 1위인 나라로, 1인당 연간 소비량이 8kg에 달한다고 한다. (아르헨티나는 1인당 연간 소비량 6.4kg) 실제로 많은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우루과이 사람들을 보며 어떻게 자전거를 타면서 동시에 뜨거운 물을 따르고, 마떼를 마실 수 있는지 신기해한다고 하니 그들의 마떼 사랑은 찐이다.



마떼 (제대로) 만드는 법


한국에서는 마떼라 하면 '태양의 마떼차'처럼 페트병에 든 아이스 마떼 내지는 티백용 마떼가 더 유명한 것 같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정통 리얼 마떼를 마시려면 적어도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 번째가 마떼 잔(Mate)이요 - 스페인어로는 그대로 마떼라고 부른다 - 둘째가 셰르바 마테 (Yerba Mate, 마떼 찻잎), 마지막 세 번째가 봄비 샤 (Bombilla, 빨대)다.


자, 이 세 가지 준비물을 갖췄다면 마떼를 제대로 우려 내보자. 우선 뜨거운 물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은 절대로 물이 끓어 올라서는 안된다는 것. 온도가 지나치게 높을 경우 찻잎이 타고, 쓴 맛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기도를 따스히 적시면서도 셰르바를 태우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뜨거움이 필요하다. 이런 연유로 아르헨티나에서 판매하는 전기 포트에는 마떼 온도 옵션이 따로 있을 정도다.  


개인적으로는 전기 포트보다 일반 스테인리스 주전자의 낭만을 선호한다. 물이 데워졌을 때 주전자가 내뿜는 기관차 소리와 달그락대는 뚜껑 소리가 그렇게 정겨울 수 없다. 물을 데우는 동안 마떼 잔 3/4를 채울 만큼의 셰르바를 부어 넣는다. 그런 다음, 마떼 잔 윗부분을 손바닥으로 덮고 한 번 뒤집어 셰르바가 손바닥에 닿도록 한 뒤 서너 번 솎아준다. 이 과정을 하고 나면 손바닥에 분말들이 달라붙는데, 그대로 공중에 털어내면 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셰르바에 섞여 있는 자잘한 분말들을 제거하기 위함인데, 분말이 많을 경우 봄비 샤, 즉 빨대를 막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제 물을 부을 차례다. 물을 찻잔의 가장자리부터 뿌려가며 적신다. 차가 잘 우려 나오기 위해서는 물을 한 번에 따르기보단 조금씩 부어가는 것이 핵심이다. 맨 처음 부을 땐 찻잎이 건조하기 때문에 금방 물을 다 빨아들인다. 건조한 잎이 물을 충분히 빨아들일 만큼 시간을 준 뒤, 한 차례 더 뜨거운 물을 뿌린다. 다시 한번 유의점! 이때 절대로 마떼 잔에 홍수가 나서는 안된다! 물이 자작할 정도로만 졸졸 붓는다. 새벽이슬에 젖은 잔디, 딱 그만치의 촉촉한 느낌이 나야 한다.


자! 그럼 이제는 첫 잔을 맛볼 차례. 첫 모금은 가장 맛이 진하다. 빨대로 마시고, 물을 붓는 과정을 반복한다. 셰르파 잎색이 옅어지거나 맛이 아주 연해졌을 때, 원래 잎을 버리고 새로이 바꿔주면 된다.


추가로 흥미로운 사실은 시음자의 취향에 따라 마떼 설탕파 vs. 오리지널파로도 나뉜다. 마떼 위에 설탕을 올려서 달달하게 먹는 사람들도 있고, 설탕이 웬 말이냐 경악하면서 마떼 고유의 씁스름한 맛을 고수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네 탕수육 부먹 vs. 찍먹 가르기에 가히 가까운 개(인)취(향)의 영역이랄까.

 


셰르바와 봄비 샤 추천


셰르바에는 매우 많은 브랜드가 존재한다. 그 많은 브랜드 중 어떤 셰르파가 제일 맛있냐는 순전히 개인의 취향이다. 아르헨티나 혹은 남미에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슈퍼에 가서 다양한 브랜드의 셰르바를 맛보기를 바란다. 모쪼록 일종의 가이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아르헨티나에서 2019년 제일 많이 판매된 브랜드 TOP5를 나열해 보았다.


1위 따라구이 (Taragüi)

2위 노블레자 가우차 (Nobleza Gaucha)

3위 끄루즈 데 말따 (Cruz de Malta)

4위 아만다 (Amanda)

5위 로사몬떼 (Rosamonte)


필자의 개인 취향으로는 Amanda와 Rosamonte가 제일 순하고 마시기에 편했다. 1위를 차지한 따라구이는는 맛이 매우 쓰고 강한데, 조금만 먹어도 머리가 아픈 경우가 많았다. 1위에 따라구이가 선정된 데에는 비교적 값싼 셰르바라는 것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한편 셰르바에도 잎만 들어간 것 혹은 잎과 대가 혼합된 것, 향신료가 첨가된 것 등 다양한 종류가 있어 소개한다.


Yerba mate con palo  70% 잎 + 30% 막대 제일 전통적인 종류의 마테로 비교적 맛이 연하다.

Yerba mate sin palo 강하고 오래 지속되는 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맛이 진하다.

Yerba mate compuesta 카밀레 꽃, 박하 등 다양한 차 종류가 함께 섞여서 들어가 있어 향미가 풍부하다.

Yerba mate saborizada 자몽, 레몬, 오렌지 등이 향이 첨가되어 있다.

Yerba mate tereré 여름에는 마떼를 어떻게 먹을까? 뜨겁게도 먹지만 아이스로도 먹을 수 있다. 마떼에 셰르바와 함께 얼음을 담은 뒤, 뜨거운 물 대신 오렌지 주스나 레몬류 음료를 따라 마신다. 특히 파라과이에서 많이 먹는 방법이다. 떼레레 전용 셰르바의 경우 먼지(Polvo)가 적게 들어간다.

Yerba mate Barbacuá 과라니 족이 전통 제조법에 따라 만들어진 셰르바

Yerba mate orgánica 유기농 셰르바


봄비샤

무엇보다 필터 부분을 개복하여 씻을 수 있는 모델을 추천한다. 이 부분이 봉합되어 있는 일체형도 있는데, 이 경우 빨대 안을 닦을 수가 없어 위생상 그다지 추천하지는 않는다.


모쪼록 이 글을 통해 누군가 마떼를 체험해볼 수 있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한다. 아르헨티나의 평원을 담은 차, 마떼. ¿Tomamos unos matecitos?


참고자료

¿Qué país es el verdadero rey del mate: Argentina, Paraguay o Uruguay? - BBC News Mu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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