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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스틴 Feb 01. 2021

취미가 나를 옭아맬 때

재밌자고 시작한 일이 부담스러워졌다.



생산적인 주말에 대한 집착


일요일 오전 8시. 토요일을 허투루 보냈으니, 오늘만큼은 내 기필코 생산적인 하루를 보내리라. 필사적인 내적 외침에 알람도 없이 눈을 번쩍 떴다.   


인스타툰 그리기, 브런치 글쓰기, 아쉬탕가 1시간 등 평일에 미처 탐하지 못한 취미들을 '완수'하겠다는 결심은 곧 부담이 되어 나를 짓누른다. 그리하여 나는, 진즉 달아난 잠의 끝자락을 붙들고 꿈의 세계로 도피해버리고 마는데. 한참을 뒤척이다 허리가 배겨 겨우 침대 밖으로 나오는 때가 오후 2시 즈음이다.


copyright @yumstin


벌써 하루 다 갔네, 망했어...라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오랜 기다림 끝에 돌아오는 이 귀한 일요일의 절반을 날렸다는 판단에 마음이 동요한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시작한담...수많은 선택지에 압도돼버린 나는 결국 그 어느 것 하나도 시작하지 못한다.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에 이번엔 유튜브의 세계로 도망. 알고리즘의 덫에 포박된 나는 얼마간은 현실을 망각하고 히죽대지만, 한 칸 한 칸 줄어가는 스마트폰 배터리를 보며 내 하루도 이렇게 소모되고 있구나를 자각하기 시작한다.


copyright @yumstin




애당초 즐겁자고 시작한 일인 것을


어느 일요일, 어김없이 불안해하는 나를 보며 남편이 말했다.


copyright @yumstin



힘을 빼라는 말이 와 닿았다. 사실 인스타툰이든 브런치든, 내가 즐겁게 주말을 보내기 위해 취미로 시작한 일이었다. 애당초 힘을 쥐고 있을 이유가 없는 일들인 것을.


그런데 언젠가부터 '잘' 해야 한다는 욕심이 마음에 들러붙었다. '한다'는 습관이 몸에 베기도 전에, 덜컥 바람만 든 격이다. 곧 취미는 '즐거움'만 쏙 뺀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가령 인스타툰만 해도, 무엇을 그려야 사람들이 더 좋아할까, 어떤 그림체로 그려야 더 잘 그려 보일까를 고민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허황된 계산과 자책을 거듭하다 보면, 그림에 대한 설렘은 온 데 간 데 없이 달아나 버리기 일쑤였다.


애초 내면의 쾌를 채우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종이에 연필을 쓱싹일 때의 촉감, 색연필 특유의 쿰쿰한 냄새 등 그림이 내포하는 그 모든 아날로그 적인 것들에서 희열을 느꼈기 때문이다.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또 제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내가 전문 작가처럼 잘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다. 그런데, 이 영역에서 조차 내 동기와 선택은 오로지 외부의 기준을 향해 치달리고 있었다.



감흥을 느끼어 마음이 당기는 멋


취미 趣味
명사

1.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취미 생활.
2. 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 취미를 기르다.
3. 감흥을 느끼어 마음이 당기는 멋. 수학에 취미가 있다.


비슷한 듯 다른 세 가지 취미의 사전적 정의가 참 근사해서, 감명 받았다. 감흥을 느끼어 마음이 당기는 멋이라니. 문득, 이 정의를 집필한 그 누군가가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필시 그는 진정으로 취미를 즐길 줄 아는 자 일거다.


난 잠깐의 방황을 접고 다시 취미로 돌아가련다. 편한 마음으로 취미에 집중하다 보면, 즐거운 주말이 쌓일테고, 그렇게 내 인생의 감흥도 깊어지지 않을까.


일요일 밤. 홀가분한 마음으로 발행을 누른다.


copyright @yums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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