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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복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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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맘 Jan 06. 2019

영업점 첫 발령

사령장을 받은 그 날, 나는 해당 영업점의 서무과장님께 전화로 먼저 연락을 드리고 다음날 부터 첫 출근을 했다.

첫 출근을 하기 전날 밤, 잠이 쉽사리 오지 않았다. 나보다 한 기수 먼저 입행한 남자친구에게 이야기 보따리를 한참 늘어놓으며,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시피한 나는 알람시계가 울리기 전에 눈을 떴다. 전날 곱게 다린 유니폼을 챙겨 첫 발령지인 영업점으로 향했다.

오전 7시 30분. 지점엔 청소를 하시는 이모님 뿐이었다. 8시가 지나니 직원들이 한 두명씩 오기 시작했다. 뻣뻣하게 굳은 나는 선배 직원들에게 90도로 인사를 하며 목석같이 입구쪽에 서있었다.

직원들은 로버트처럼 서있는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호기심을 보였다.

지점장님이 출근하시자 모든 직원들이 객장에 모였다.

"오늘 신입직원이 새로 왔습니다. 모두 환영해주시길 바라며, 서동연 행원은 앞에 나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가장 떨리는 순간이 왔다. 12명의 직원들이, 24개의 눈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앞에 나가 자기소개를 시작했고, 몇몇 직원분들이 구령을 외쳐보라는 요구에 큰 소리로 손을 흔들어가며 신입직원의 패기와 민망함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정말이지 닭발이 오그라드는 순간이었다.ㅠ

간단한 소개가 끝나자 영업개시를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철통같은 보완속에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는 금고가 '덜컹' 열리는 순간이었다. 금고에는 수많은 문서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고, 철로된 여러 개의 시재금고들과 각 개인 시재박스가 있었다. 그리고 가장 안쪽에는 현금이 들어있는 큰 금고가 있었고, 나는 생전 처음보는 돈더미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금고 안에 또 철문이 있고, 금고 키만 여러개가 있었다.

(최영장군의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라는 명언은 곧... 이루어진다.)

처음보는 은행 금고에 넋을 잃은 나는 밖에서 재촉하는 소리에 곧 정신을 차렸다. 은행문이 열리는 오전 9시가 되기 직전이었다.

나는 신입직원이라 당분간 직원들이 업무하는 것을 뒤에서 지켜보며 영업점 실전업무를 배우기로 했다.

9시 되기 3분전, 2분전...땡..!

9시가 되자 셔터가 스르르 올라가기 시작했고, 은행을 이용하려고 문앞에서 대기하는 손님들의 다리가 여러 개 보였다.

모든 직원들이 일제히 일어서 아침 인사를 하고, 영업점 업무가 시작되었다. 그날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일하는 직원들 뒤에 서서 상담업무 내용과 스킬들을 열심히 메모하고, 직원들의 여러 잔신부름을 맡았다.

그리고 오후 네시가 되자 셔터가 다시 내려갔다.

은행에 손님으로 올 적에는,

'오후 네시만 되면 은행원들은 뭘할까?'

'참 편한 직장이다.'

'직원들 벌써 집에 갔나?'

라고 생각하며 셔터가 내린 은행 창문을 호기심있게 들여다 보았었다.

하지만 은행원들의 업무는 오후 네시부터가 시.작.이었다.

영업시간에 받은 대출서류에 대해 전산작업을 하고, 당일 손님들이 작성한 서류들을 정리해 결제를 받고 스캔하여 발송목록에 꾸려놓고, 각 개인이 보유한 현금시재와 대체시제를 정산하여 개인 시재마감을 한 후, 영업점 CD기를 포함한 전체 돈을 세고 확인하여 영업점 점 마감등을 해야했다.

네시가 지나고 손님이 없어도 바쁘게 일을 하는 직원들을 보며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내가 생각했던 은행이 아니었구나.'

'은행은 바쁜 곳이구나'

'쉴새 없이 일하는 곳이네'

'나.. 잘 온거 맞겠지?'

은행에서 첫 날을 그렇게 보내고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날아다녔다. 손님으로 은행에 왔을 때 했던 막연한 생각들, 대표적으로 은행은 돈을 많이 벌고 편하게 일하는 직장이라는 생각들이 하나씩 깨어지고 있었다.

특히 해가 쨍쨍쏟아지는 한 여름에 은행을 들어가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늘 여유있는 미소로 손님을 대하는 은행원들을 보면서 시원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편하게 일한다는 생각이 자리잡게 되었다.

머릿속에서 혼란스러운 나는 곧 신입직원 환영회라는 지점 회식에 끌려갔다. 끌려갔다라기보단 내가 갔다라고 하자. 엉덩이를 붙일 새 없이 모든 직원들에게 술잔을 따르고 인사를 드렸다. 잘 부탁드린다는 말은 자동으로 나왔다. 하루 종일 긴장했던 탓에 배는 고팠지만 속이 더부륵했다.

12명의 직원들에게 돌아가며 술을 따라주었고, 12명의 직원들도 나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그리고 나는 12잔의 술을 먹었다.

(나중에는 눈치껏 술을 버리는 요령도 터득하게 된다.)

정신이 혼미해질 무렵, 어떻게든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고 혼자 안간힘을 썼다. 별빛이 쏟아지는 밤을 보며 드디어.. 집에서 나온지 16시간만에 다시 집에 돌아왔다. 몇 년 만에 돌아온 고향집 같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나는 깜짝놀랐다.

어제 입은 옷과 화장이 나와 함께 잠들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영업점에서의 OJT 기간이 하루 하루 흘러갔다.


#은행원일기 #신입직원 #복직일기 #은행원일과 #육아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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