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점장님과 첫 대면
지점에서 정신없는 OJT 기간이 끝나갈무렵, 내 지정 자리가 생기고 드디어 나도 앉아서 업무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 때 지점장님이 나를 지점장실로 불렀다.
지점에서 가장 높은 분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하실 까. 내심 긴장이 되었다.
지점장님과 나는 테이블을 마주하고 독대 했다.
"자네는 은행에서 꿈이 뭔가?"
라고 물.으.셨.다.
안경 너머로 지점장님의 반짝이는 눈이 선명하게 보였다.
순간 머리가 하애지면서...
"아.. 저는 열심히 업무 배워서 손님들에게 빠른 업무처리와 친절한 직원이 되는 것입니다."
라고 웅얼거리며 이야기 했다.
지점장님의 포커페이스를 살피자 손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지점장님이 원하는 답이 아니었던 것이다.
"적어도 은행에 들어오면 은행장이 되야지! 라는 큰 꿈이 있어야 한단 말일세."
대박. 은행장이라니.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대답을 잘 못했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지점장님이 원하는 직원은 큰 꿈을 가진 직원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며 갑자기 부담감이 밀물같이 몰려왔다.
그렇게 여러 이야기가 오고간 후, 나는 맥이 풀려 지점장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집에 오는 중에 나는 생각에 잠겼다.
'내가 직장에서 뭘 이루고 싶은걸까?'
'직업은 나에게 무슨 의미일까?'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취업을 했는데 더 큰 꿈을 가져야 한다고?'
'내가 은행에서 이루고 싶은게 뭘까'
'은행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나는 왜 은행원이 되었지?'
라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어 하루 종일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대학교 졸업반이 되자, 그저 남들과 같이 취업준비를 했다.
여자가 다니기에 안정적이고 복지가 잘 되있고, 급여시스템이 잘 갖춰준 직업을 생각하니 은행원이었다. 교사, 공무원은 나에게 해당사항이 아니었다.
학기중에 휴학을 하고 외국계회사에서 인턴을 하였는데 남성중심의 조직문화와 정년이 보장되지 않은 불안정한 근무여건 속에서 일을 하는 것을 경험하고, 여자들이 많이 근무하고 어느정도 정년이 보장되는 곳을 찾아보니 은행이라는 직장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은행에 지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은행에서 이루고 싶은 꿈은 사실 딱히 없었다. 하루 절반 이상을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 만큼 내 개인적인 시간도 중요했기에 나는 나머지 시간과 에너지를 직장에 더 투여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큰 욕심없이 맡은 직위대로 열심히 일을 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하루 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내가 직업을 가진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한 것이고, 돈을 버는 이유는 내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싶어서였다.
즉, 직장은 내 생활을 윤택하게 하기 위한 부차적인 개념이니, 내 삶의 목적이나 목표가 될 수 없었다.
물론 자신의 일을 통해 자아를 성취하거나 발견할 수 있는 예외도 있겠으나, 나에게 은행이란 그저 하나의 직장에 불과했다. 직장이 내 꿈과 나를 표현하는 곳이 될 수 없었다.
젊은 시절 온 열정과 헌신을 다해 직장을 다닌 분들 (물론 존경하지만) 의 (퇴직인사 이후) 끝모습은 그렇게 처량할 수가 없다.
수많은 직장인들이 직장 내에서 열정을 강요당하고 있다.
'열정페이'라는 말이 들릴 정도로 직장에서는 직원들에게 업무 이외의 많은 것들을 요구한다. 야유회, 단합모임, 워크샵 등 업무의 연장선인 회식이 그렇다.
작년부터 주 52시간이 시행된다고 하나 올해 다시 유예기간을 가지면서 흐지브지 됐다. PC가 강제적으로 꺼져도 종이서류를 붙들고 기존처럼 야근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야기가 잠시 새어나갔지만..
우리나라도 여느 선진국처럼 개인의 행복을 위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직장은 직장일 뿐이며, 직장은 나를 대변해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