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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맘 Aug 01. 2020

시아버지에게 터뜨리고 말았다.

한 철 장마가 지나고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는 무렵이면, 시아버지는 부산에서 KTX를 타고 인천으로 올라오신다.


인쇄업을 본업으로 하시는 아버님은 주변 인쇄업체들이 휴가 날짜를 맞추어 단체로 공장문을 닫기 때문에 정해진 날짜에 2박 3일이라는 짧은 여름휴가를 보내신다.

그래서 매년 휴가철이 되면 아버님은 아들과 딸이 살고 있는 인천으로 올라오신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에 이혼하셨다. 이혼하신 후 두 분은 부산에서 각자의 삶을 사셨다. 신랑과 결혼할 당시 나는 아버님을 뵐 기회가 많이 없었다. 결혼 후에도 2~3년 간은 그랬다.


부모님의 별거 후, 엄마와 단 둘이 살아왔던 신랑은 엄마와는 매우 각별한 사이였지만 아버지와는 관계가 좋지 않았기에 왕래도 적었다. 가끔씩 남자 친구에게(지금의 남편) 부모님이 왜 이혼하셨는지, 아버님은 어떤 분이신지 물어보면 짤막한 대답이 돌아오거나 잠시 동안의 침묵이 이어졌다.


아버님에 대한 정보는 어머님을 통해 종종 듣곤 했다. 어머님의 원망 어린 기억 속에 있는 아버님은 소위 ‘나쁜 남자’였다.(이 정도로만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버님이란 사람을 알기 전에 안 좋은 선입견부터 갖게 되었고, 신랑의 쓴 뿌리가 드러날 때마다 내 마음속에는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우리 가정에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남편은 아버지의 역할을 감당하기 시작했고, 점점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에 대한 마음의 상처도 세월의 흔적과 개인적인 신앙을 통해 조금씩 옅어져 갔다.


결혼 3년 차가 되었을 무렵, 남편은 아버지에 대해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서서히 열어갔다. 만남을 통해 알게 된 아버님은 생각보다 마음이 따뜻한 분이셨다. 김장철이 되면 죄송스럽게도 아버님이 김장김치를 작은 박스에 담아 택배로 보내주신다.


본인도 혼자 사는 처지에 주변에서 받은 김장김치를 소량만 떼어 놓고 나머지를 다 보내주시는 것이다. 한창 허니 감자칩이 인기를 끌어 매장에서 과자 구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웠던 시절에도 어떤 인맥을 동원하셨는지 허니 감자칩을 한 박스나 보내주셨다. 물론 손자들 먹으라고 보내주신 거지만 내가 다 먹었다.


이 외에도 곤약젤리, 초코볼, 껌 등 소소한 간식거리를 택배로 보내주셨고, 거래 은행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꽃 이불, 촌스런 디자인의 두터운 발매트까지 아버님의 소소한 택배 선물은 계속되었다. 또한 주변에서 받은 인형들을 모아 놨다가 아이들에게 선물로 주곤 하셨다.

어제 인천에 올라오신 아버님의 가방엔 2/3 공간을 차지하는 정체모를 검은 봉지가 있었다. 당연히 쓰레기가 담겨있는 줄 알았는데 봉지를 열자 특이하게 생긴 인형이 있었다. 돌연변이 물고기 괴물 같은 인형이었는데 나름(?) 귀엽게 생겼다. 아버님은 그 인형을 손녀에게 주려고 부산에서 인천까지 가져온 것이었다.


봉지를 열 때 아버님의 얼굴에는 기대 반 설렘 반 표정으로 그 인형을 막내 아이에게 건네주셨고, 막내 아이는 인형을 보자마자 놀란 듯이 도망을 갔다. 매우 당황하신듯한 아버님을 보며 남편과 나는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환갑이 넘은 할아버지가 물고기 인형을 품에 안고 3시간 동안 달리는 좁은 기차 안에서 손주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웃음 짓고 오셨을 아버님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지금 그 인형은 아직 아이들의 택함을 받지 못했지만, 우리 집에서 잘 보이는 곳에 인형을 놓아둘 예정이다. 손주를 사랑하는 할비의 따뜻한 마음을 기억하며.

늦은 저녁, 아버님, 남편과 나는 식탁에 둘러앉아 간단하게 캔맥주를 먹으며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랑의 어릴 적 추억부터 속상했던 기억까지 허심탄회한 이야기가 오고 갔고, 나는 전부터 궁금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님, 어머님이랑 가끔씩 연락하세요?”
“응, 하지.”

“그럼 가끔씩 만나기도 하세요?”
“응, 가끔씩 보기도 하지.”

“그럼 나중에 어머님이랑 합치실 생각도 있으세요?”
“그렇지. 아주 나중에는.”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남편은 연신 놀래 하며 아버지에게 재차 의사를 확인했다. 남편의 남모를, 오랜 바람이기도 한 부모님의 합가를 아버지 입에서 직접 들으니 놀라웠나 보다.

아버님은 잠깐 나를 보더니 이야기를 하셨다.

“근데 내가 너에게 부탁할게 한 가지 있는데,
네가 시어머니를 이해하고 관대하게 받아줬으면 한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흥분 게이지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아버님 입장에서 충분히 하실 수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제 개인적인 관계이고 제가 어머님한테 말로써 너무 상처를 받아 저는 가능한 한 가까이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도 너를 좋아하고 네가 나한테 하는 것처럼 시어머니한테도 친절하고 네가 좀 더 이해해주고 하면.”

모든 이야기를 쓸 수 없지만 그간 어머님으로 인해 마음고생했던 이야기를 쏟아놓았다. 더군다나 어머님의 경제관념 문제까지 겹치면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더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아버님도 어머님의 돈문제로 결혼생활 도중에 마음고생을 하셨기에 돈 이야기가 나오자 입을 다무셨다. 남편은 중간중간 아빠는 모르시는 일이라며 그만 이야기하라고 했지만 이미 터져 나온 봇물은 막을 수 없었다.

“내가 아버님이니까 이런 이야기 하는 거야. 아버님이니까!”

결국 나는 시부모님의 이혼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다.

“두 분의 이혼으로 인해 남편과 저는 감당해야 할 짐이 생겼고 결혼할 때에 남편도 아버님을 원망스러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부산에 내려갈 때에도 따로 두 분을 보는 것도 그렇고 내려가는 길에도 마음도 불편합니다. 더군다나 홀어머니는 아들한테 의지하길 원하고 아들도 그런 엄마를 챙기려고 할 때마다 저는 외롭게 결혼생활을 했습니다. 돈문제로 남편과 얼마나 싸웠는지 아세요? 아버님도 어머님 돈문제 때문에 힘드셨다면서요.
저는요. 지금도 아버님이랑 어머님이 이혼하지 않고 같이 사셨으면 어떨까 상상을 해요. 저는 두 분이 합치셨으면 좋겠습니다.”

남편은 눈치를 보며 나를 말렸고, 나는 결국 강한 한 방을 터뜨렸다.

“아버님은 저한테 이해하라고 받아주라고 하면서 왜 그럼 어머님이랑 이혼하신 거세요?!”

잠시 동안의 침묵이 이어지고 아버님 굳은 얼굴로 짧게 대답하셨다.

“이제 그만 하자.”

내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라 후끈후끈했고, 어색한 정적의 시간만이 집안의 공간을 가득 메웠다.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이었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동안 마음에만 꾹꾹 담아왔던 속이야기를 처음으로 아버님에게 했다는 후련함, 왠지 모를 미안함, 묵혀온 상처로 인한 화난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올라오면서 화내지 않고 자리를 지켜준 아버님한테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한 번은 올해 6살 된 둘째 아들이 할아버지와 통화 도중에 물었다.

“할아버지, 근데 왜 할머니랑 같이 안 살아요?”
“아.. 미안하다. 할아버지가 나중에 설명해줄게. 미안해.”

본인도 아내와의 이혼으로 인해 아마도 자식들에게, 심지어 손주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갖고 계셨을 것이다. 사실 아이들이 이런 질문을 나에게 할 때면 적절한 대답을 찾기가 어렵다.


할아버지하고 할머니가 사정이 있어서 같이 안 살게 됐다고 하면 그 사정이 뭐냐고 물을 것이고, 성격이 안 맞아서 같이 안 산다고 하면, 그럼 엄마 아빠도 같이 안 살 수 있게 되는 거냐고 물을 것이고 나도 난감해진다.


아이들에게 할아버지 할머니 이혼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줄 수 없지만, 너희들을 아빠 엄마가 사랑해주는 것만큼 가장 많이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이야기해준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신랑이 안쓰러워진다. 시부모님의 이혼으로 며느리로서 느껴지는 답답함, 불편함, 억울함이 이 정도인데, 자식은 어떤 마음일까... 그 마음이 오죽할까 싶다. 부모님 앞에서 내색하지 않고 그저 자식으로서 도리를 감당하며 그 시간들을 묵묵히 보내온 신랑을 생각하자 마음이 짠해진다. 이럴 땐 또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불끈 솟아난다.

아이들을 위해서
또 미래의 손주들을 위해서
나와 남편을 위해서
가정을 잘 지켜나가야겠다고
그렇게 다짐해본다.

(제 개인적인 경험에 한정된 다짐이기 때문에 옳고 그르다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이혼이 누군가에게는 수많은 고민 끝에 내린 최선의 선택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 상처이기도 할 것입니다.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아 말씀드립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쓴 글임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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