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각도기를 어디다 대요?"
"선생님, 각을 쟀는데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선생님, 179도 인지 178도인지 모르겠어요."
열두 개의 입이 쉬지 않고 떠들어댄다. 각도기 사용법도 충분히 설명했고, 어떤 질문이 나올지도 준비를 했건만, 저런 원초적인 질문을 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각도기 중심을 각의 꼭짓점에 대라고 몇 번 말했냐. 각도를 쓰면 되지. 못 쓸 게 뭐 있어. 거기 쓰여 있는 수를 쓰라고. 179도인지 178도인지 교과서에선 175 아니면 180이야. 누가 그런 각도를 물어보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아이들 아우성에 영혼은 이미 출타 중이다.
새벽부터 수업 준비를 해도 오후 3시가 되면 심장 소리가 빨라진다.
오후 3시, 초등학교 3학년 수업에 들어갈 시간이다.
문을 열면, 아이들의 눈동자와 입술이 동시에 움직인다. 반갑니? 고맙다. 나도 반갑다. 최선을 다해 설명해 줄게. 그래, 늘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도 그들과 나 사이엔 큰 벽이 있는 기분이다. 나는 A라고 말했는데, 그들은 B라고 묻는다. 내가 문제니? 니들이 문제니?
아이들이 다 가고 교실에 혼자 앉아 오늘 수업을 돌아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내 머릿속에선 그림이 그려지는데 그들 머릿속은 뒤죽박죽일까? 차라리 외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접근을 해보면 어떨까?
그 날부터 나는 일방적인 설명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이 노는 걸 관찰하고, 대화를 주의 깊게 듣고, 질문 내용을 분석했다. 그들의 언어를 외국어라 생각하고 접근하니 흥미진진했다. 단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그들의 언어 세계. 초등 아이들의 언어는 어른들의 것과 달랐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이 말은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요."
"각도기를 어디에 대요?" 이 말은 "선생님이 말하는 각도기의 중심, 밑금, 꼭짓점 이런 게 정확하게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각을 쟀는데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 말은 "각도기에 엄청 많은 숫자랑 선이 있는데 너무 복잡해서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는 거다.
초등 아이들의 언어는 구체적이지 않다. 오히려 직관적이다. 그 말을 액면가로 받아들이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난다. 해석이 필요하다. 뇌구조가 달라서 그런가? 뇌구조, 여기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뇌에 대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전두엽, 측두엽, 후두엽...... 오 마이 갓. 내 인생에 뇌과학까지 들어올 줄이야. 그런데 내 추측은 명백한 사실임이 이미 증명되어 있었다. 나만 몰랐을 뿐.
분석적인 뇌는 전두엽이 관장하고 있었다. 문제는 전두엽 발달이 12세를 전후해서 발달한다는 것. 그러니 내 말을 못 알아들을 수밖에. 전체적인 흐름을 중시하고, 정확한 용어를 강조하는 나와 직접 만져서 느껴봐야 그런 줄 알고, 앞 뒤 맥락 없이 나무만 보는 10살짜리 아이들의 의사소통이 일방통행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아이들과 소통하고 싶었다. 그들의 언어로 수학을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이론은 간단하다. 수학 말을 내 말로 번역한다. 그걸 초등 언어로 통역하면 된다. 문제는 언어적인 측면만 충족하면 되는 게 아니라는 거다. 그걸 해 보고 알았다.
도를 닦는 마음으로 마음수련을 병행해야 했다. 10명 중 8명이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어른들의 세계는 단순하다. 아이들은 반대다. 본인들은 심플하게 생각을 드러낸다. 10명 중 8명이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받아들이는 사람은 얼마나 머리를 써야 하는지......
오랜 기간 수련을 하면서 얻은 능력은 꽤나 차원이 높은 것들이다. 독심술은 기본이고, 몸동작 하나만으로도 하고 싶은 말을 유추할 수 있다. 하나의 개념을 설명할 때, 아이 눈을 보면서 순식간에 설명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게 되었다. 그림으로, 수식으로, 글자로, 말로, 교구로, 수학 말 해석을 돕는다.
내 아이를 키울 때도 큰 도움이 되었다. 아이의 행동을 관찰하는 건 이미 몸에 밴 습관이다. 수학 공부라고 다를 바 없다. 엄마가 수학을 가르친다고 해서 아이가 수학을 잘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것도 해냈다. 나는 엄마표 수학을 하면서 어른이 되어갔다.
불어를 포기하고 선택한 초등 언어학 전공. 그것은 삶의 철학을 바꾸는 일이었다. 멋지고 폼 나는 길을 버리고, 볼품없는 황무지 길로 접어드는 일이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그 길을 벌써 23년째 걸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