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다섯 시가 되기도 전에 사방이 깜깜해지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 춥고 어두운 계절을 맞이하기까지 매일매일 우린 단 하루만큼의 변화에 반응 또는 적응하며 부지런히 지금 이 자리에 도달했을 텐데, 어디 가만히 몸을 기대고 앉아 문득 되돌아보면 세월이 한 움큼 덜어내어 진 듯 여긴 새삼스럽다. 계절 기억 상실이랄까. 일 년 내내 오늘처럼 겨울이었던 것만 같은 이 기분. 내 마음이 이렇다고 해서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진 않아, 책임감 있게 분열하는 나를 끌어안고, 이 밤, 축구장으로 소년을 모신다. 올해 마지막 실내 축구 연습이 있으므로.
정해진 시간 동안 축구공을 다 찬 소년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로라앱으로부터 구글맵을 방해하는 알림이 온다. 조급한 마음에 어두운 도로 위를 서둘러 집에 도착하니 하늘이 울렁대. 상서로운 예감에 온통 휩싸여 하늘에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이대자 하늘빛이 보랗다. 현관문을 열면서 오로라! 를 비명처럼 외쳤다. 집에서 저녁 차리고 있던 남편을 납치하듯 차에 태워 집 앞 농장과 호수까지 다녀왔다. 잠옷입은 고등학생은 따라 나오지 않는대서 집에 혼자 놔뒀고. 우린 밤하늘 아래 서서 고개 들어 넋 놓고 바라보면 꼭 아름다운 소리를 낼 것만 같은 오로라빛의 침묵에 목소리를, 꺅꺅, 입힌다. 세상이 전에 없이 황홀하게 멸망해가고 있어, 저주를 내릴 뻔했지만 축구복 차림인 소년이 추위에 벌벌 떨고 있어, 이제 그만 집에 가자, 했습니다.
새벽 한 시가 다 되도록 오로라는 우리 집 앞 밤하늘을 보랗게 일렁였다. 자다 깨서 몇 번이나 현관문을 나서 하늘에다 스마트폰을 간절히 들이댔는지 몰라. 맨눈에 보일 리 없는 그 빛깔을 스마트폰 화면 속에 펼쳐진 사진으로 거듭 확인하면서 내 두 눈에 보이는 일부만을 이 세계의 전부라 여기면서 내 안에, 나 하나로 갇히고 싶지 않아, 아주 성능 좋은 카메라가 필요해, 추위에 곱은 맨 손가락으로 구글 검색을 시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