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파일링의 창시자 존 더글러스의 이야기
한국 최초의 프로파일러 권일용 님의 이야기가 담긴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 드라마화되며 책도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아요.
위 책은 출간된 직후 읽었는데 무서워하면서도 끝까지 읽어내려갈 정도로 재미있고 절박한 책이었습니다.
이후 책에 많이 언급되었던 존 더글라스의 《마인드 헌터》를 구매했었는데요,
이번에 뒤늦게 읽으면서 정말로 어마어마한 세계를 엿본 것 같아 꼭 소개하고 싶었어요.
존 더글러스와 마크 올셰이커 지음, 이종인 옮김, 《마인드 헌터》(비채, 2006)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인간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고?’ 였어요. 존 더글러스가 어떻게 FBI에 들어가 프로파일링이라는 걸 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도 있지만 사실 그보다 더 많이 나오는 건 그가 다룬 사건 이야기거든요. 그는 수많은 살인사건의 프로파일링을 하게 되는데요, 정말 너무 끔찍한 범죄가 많더라고요. 많은 범죄가 죽이는 걸 넘어 사체를 강간하거나 인육을 먹거나(심지어 내장을 먹는 사람도 나옵니다) 사체를 심각하게 훼손합니다. 읽다 보면 미간이 펴질 틈이 없을 정도로 잔혹한 이야기들이 이어집니다.
존 더글러스가 책 앞부분에서 콕 집어 말하듯 대다수 연쇄살인범은 남자이고, 대다수 피해자는 여성입니다. 어떤 범죄자들은 자기는 이렇게 생겨먹었다고 하지만 그건 대개 여자만 향하더라고요. 게다가 존 더글러스에 따르면 많은 연쇄살인범은 1) 정상적인 이성관계를 가져본 적이 없고 2) 뒤틀린 성 인식을 가졌고 3) 학력 수준이 낮으며 4) 정기적인 직업이 없고 5) 어릴 때 학대를 당했다(그게 아니라면 환경이 굉장히 좋지 않았습니다) 특징이 있어요. 책을 읽는 독자는 같은 의문을 품을 겁니다. 여자 중에도 그런 사람은 많은데 왜 여자 연쇄살인범은 없는 걸까? 왜 남자들만 살인을 하고 강간을 하는 걸까?
존 더글러스는 그게 테스토스테론 때문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상황에 있는 많은 여자는 그런 스트레스 요인을 안으로 삭힌다고 해요. 그래서 이들은 술을 마시거나 약물에 중독되거나 매춘을 하거나 자살을 하고, 어떤 경우 자신이 받았던 학대를 되풀이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남자들은 그걸 밖으로 분출합니다. 남을 죽이거나 강간해서 스트레스 요인을 해소해버린다고요. 제압하기 쉬운 여자들, 아이들, 노인들을 노리는 건 절대악이 아니라 지질한 악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존 더글러스가 맡은 사건은 대개 연쇄살인범에 의한 경우가 많은데요, 그는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몇 가지로 정리합니다. 1) 방화 2) 야뇨증 3) 제압과 조종과 통제. 사실 1번과 2번은 많이 들은 얘기였는데 3번은 좀 신기했던 것 같아요. 모든 상황을 자신이 조종하고 통제하고 싶어 하기에 이들은 대개 주거지 주변에서 범죄를 저지릅니다. 더 놀라운 건 그래서 이들이 경찰 혹은 그와 유사한 신분이 되고 싶어 한다는 거예요. 나중에 살인범들을 잡고 보면 경찰과 비슷한 직업인 야간 경비원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요.
“제압, 조종, 통제는 연쇄 강간범이나 연쇄 살인범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특징이다. 이들 흉악범은 대부분 적개심이 강하고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르는 인생의 실패자였다. 그들은 자기들이 인생에서 부당한 대우를 당했고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당했다고 느꼈다. 그러니 힘센 사람이 되어 자기를 이런 나락으로 빠뜨린 자들을 모조리 감옥에 처넣고 싶다는 엉뚱한 심리가 발동한다. 바로 이런 심리 때문에 경찰관이 되고 싶은 것이다.”
가끔 10대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폭행했다는 기사가 나오잖아요. 그럴 때마다 정말 화가 나는데 《마인드 헌터》에도 비슷한 사례가 소개되더라고요. 존 더글러스는 노인이 폭행당했다는 걸 듣고 범인은 10대일 것이다, 라는 결론을 내요. 정말 그러기도 했고요. 그가 그렇게 추론한 이유는 일종의 예행 연습일 가능성이 크다는 거였어요. 10대 남성은 성인 여성이 자신보다 완력이 세거나 제압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자신이 완전히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노인을 노려보는 거라고요.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이렇게 잡힌 10대들에게는 꼭 다른 길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예행 연습을 해본 건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럴 확률이 있다면 꼭 반드시 그렇지 않은 길로 교화를 시켜야 한다고요. 그렇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이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큰 불행이 오기 전에 막는 것도 사법 및 교정당국의 역할일 텐데, 시스템이 잘 돌아가는 것 같지 않아.. 여러모로 아쉽지만요.
제가 이 책에서 정말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시그니처와 M.O.의 구분이기도 했습니다. ‘시그니처’는 범인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해당 범인만의 특징을 의미하는 것이고, ‘M.O.’는 범인의 범행 수법을 얘기하는 거였어요. 전자는 어떤 범행을 하든 반복적으로 발견되지만 후자는 범행을 거듭할수록 더 정교하게 발전하기에 바뀔 수 있다고 해요. 이 구분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존 더글러스가 들어준 예시가 아주 기가 막혔는데요, 궁금하신 분들은 꼭.. 책에서 확인해보시면 좋겠어요. ㅎㅎㅎㅎㅎㅎ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과 《마인드 헌터》의 두 저자 모두 밀려드는 살인사건과 악한 인간들을 보며 똑같이 생각합니다.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그런 생각을 했어요. 많은 범죄자가 자신을 학대하는 가정에 있었고(지하실에 가두거나 때리거나 성적으로 학대하거나 모든 경우가 다 있었던 것 같아요) 그로 인해 정상적인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다지만, 그렇다고 살인과 강간을 실행하는 건 정말 다른 문제 아닌가? 아무리 분노로 가득 차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풀 수 있는 건가?
25년간 흉악범을 상대해온 존 더글러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난 25년 동안 흉악범들을 연구, 조사하면서 내가 느낀 것이 있다면 좋은 성장 환경, 우애 깊고 서로 돕는 가정,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집안 분위기에서 자란 사람이 흉악범이 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흉악범은 그들의 범죄, 그들의 선택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고 또 죗값을 치러야 마땅하다. 범죄자가 14, 15세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자신이 저지른 죄의 심각성을 잘 모른다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내 아들 제드는 여덟 살인데도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어떤 것이 좋은 일이고 어떤 것이 나쁜 일인지 잘 알고 있다.
치안 분야에서 25년 동안 종사해온 결과, 나는 범죄자가 ‘타고 난다’기보다, ‘만들어진다’는 확고한 결론을 얻었다. 이것은, 그 범인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나쁜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도 상황이 달랐다면 반대로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범죄 해결을 위해 충분한 예산 확보, 경찰력 증강, 형무소 증설 등도 좋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사람들 사이에 더 많은 사랑이 자리잡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문제를 단순화하는 거 아니냐, 혹은 그건 누구나 알고 있는 거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실천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핵심 중의 핵심이다.
전에 읽었던 《법정의 얼굴들》에서 읽었던 신창원 얘기도 떠오르더라고요. 어릴 때 신창원이 학교에 갔는데 선생님이 뒤통수를 때리며 돈도 없는 새끼가 학교에는 뭐 하러 왔냐고 핀잔을 주고 타박했다는 얘기입니다. 신창원은 그때 그 선생이 내 머리 한번 쓰다듬어줬으면 나 같은 애는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얘기를 해요.
범죄를 저지르는 건 그들의 선택이니 책임을 져야 하지만 범죄로 내모는 어른들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미국도, 한국도, 아니,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가장 쉽고 큰 해결책은 아이를 학대하지 않는 것 아닐까 싶네요.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책, 《마인드 헌터》는 절대 따스하고 평온한 책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곳에서 일어난 이야기들이었다는 점에서 꼭 한 번은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닌가 싶어요.
현실을 직시할 때에야 비로소 해결에 착수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럼 곧 다른 책으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http://aladin.kr/p/efMB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