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아웃>을 보고 집에 오는 길에..
내 빙봉은 어디로 갔을까. 분명히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첫사랑의 얼굴은 기억이 난다. 옆반 여학생을 훔쳐보던 초등학생의 설렘의 감정도 기억난다. 안마당에서 공을 차다가 처음으로 축구라는 게 재밌다고 느낀 순간도 기억이 나고, 친구랑 개구리 20마리를 잡아 김칫독에 넣어뒀다가 엄마한테 처음으로 크게 혼났던 기억도 난다. 즐겨먹던 짝꿍이 100원으로 올라 물가상승에 대한 슬픔의 첫 경험도 기억난다.
그런데 빙봉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분명히 있었을 텐데, 아마 있었을 거야, 말 못하는 아이라면 있었을 건데, 분명히 있었을 텐데,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아니, 사실 그게 진짜로 있었나? 나에겐 없었을 거야,라고 의심이 들 정도로 존재 자체가 기억나질 않는다. 만약에 정말 있었다면 그건 어떻게 생겼었을까?
아예 짐작도 되질 않는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그게 너무 슬펐다. 내가 빙봉을 완전히 잊어버린 서른 살이라서. 무언가를 형상화하려면, 교육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재가공해서, 실현 가능한 결과로만 유추하는 버릇을 가진 어른이 되어버려서. <인터스텔라>를 좋아하게 된 이유도, 그 영화를 9번 관람한 이유도, 우주 영화 중에서 가장 현실적이었고 말이 될 법한 이야기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서.
내가 6살 때였나, 7살 때였나.
나는 군홧발 소리가 늘 궁금했다. 그때도 나는 옆으로 누워 잤다. 귀를 파묻고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베개에서 척척 거리는 군화 발소리가 들려왔다. 작은 벌레들이 베개 속에서 돌아다니는 줄 알고, 베개를 열어보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이유를 못 찾겠어서 나중엔 그냥 익숙한 소리를 여기기로 했다. TV에서 보던 군인들의 발자국 소리, 열댓 명 따위 정도의 발소리가 아니라 시베리아 대륙쯤은 횡단하고 있는 수만 명의 군홧발 소리. 시베리아였던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소리가 주로 겨울에 잘 들렸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게 맥박 소리라는 건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확실했던 건, 일곱 살의 나는 시베리아 군대의 소리라고 생각했을 때 가장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이게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어린이다운 생각이다. 그 외에는 기억나는 게 없다. 빙봉은 고사하고, 나의 어린이다운 생각들이 뭐였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집에 오는 내내 울적했다. 두려워했던 순간이, 피터팬이 막으려고 했던 그 세상이, 그 안으로 들어온지 너무너무 너무 오래되어버린 것 같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