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현재

현재의 나에 대하여

by loioloi

현재 나는 35살의 평범한, 어쩌면 평범보다 조금 떨어진 대한민국의 건강한 남성이다. 작은 건축사사무소를 다니고 있으며, 곧 있을 결혼을 준비 중이다.


이단종교에서 나온 지는 2년 반정도가 지난 것 같다.

그동안 여자친구가 곁에 있어줘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여자친구는 나에게 있어서 귀인(貴人)이다.


현재 가장 큰 목표라고 한다면,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지금의 여자친구와 잘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별 탈없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꿈이다. 하지만 이게 나의 자아의 꿈은 아니라는 것 쯤은 알고 있다. 어렸을 때는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지금은 그 꿈이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이제는 꿈을 찾는 게 하나의 꿈이 되었달까.


건축을 하는 건 재미있다. 그래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전공을 살려서 먹고살고 있는 건 참 다행이다. 스펙을 키우기 위해서 건축기사 공부도 하고 있고, 기사를 따고 나면 실무수련 3년 되는 시기에 맞춰 건축사 시험을 볼 수 있게 건축사 학원도 등록할 계획이다.


요즘에는 결혼준비를 하느라 바쁘다. 웨딩홀, 스드메, 집, 프러포즈 등등등...

나는 사실 결혼에 대한 로망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는데(오히려 스몰웨딩이나 비용을 최대한 아끼는 방향이었다..), 여자친구가 로망이 있기도 하고, 준비하다 보니 줄 때의 설렘이 좋아서 나도 준비를 더 하게 되었다.


부모님도 지난 나의 방황으로 인한 상처에서 조금씩 회복해 나가시는 것 같고, 아픈 손가락이라고 말씀은 하셔도 이전보다는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보이시는 것 같다.


어머니는 나의 방황기간 동안의 스트레스로 대장암에 걸리셨다. 지금은 다행히 수술 후 잘 회복해서 5년이 지나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병 투병으로 인해 많이 빠진 머리카락과 부쩍 주름진 얼굴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손발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저린다고 하신다.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버지는 나에게 미운 사람이다. 왜 미운털이 박혔는지 모르겠다. 아마 아버지께서 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걸 느끼기 때문일까? 아버지의 행동과 나의 행동이 닮았기에 거울을 보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싫어하는 걸까. 아버지는 한량기질이 있고 가정적이기보다는 자기밖에 모르는 그런 사람이다. 가족보다 가문을 중요시하고 가족에게는 함부로 대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한마디 못하는 그런 한심한 사람이다. 먼저 도와주는 경우가 없고 아쉬운 얘기를 해야 그제야 필요한 만큼만 도와준다. 여자친구한테 그 부분이 정말 부끄럽고 미안했다. 여자친구 집은 아쉬운 얘기를 하지 않아도 결혼자금을 자연스럽게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와 다른 생각이기에 먼저 최대한 도와주려 하셨지만, 물주는 아버지시기에 우리는 아쉬운 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부모 도움을 안 받고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는 숨 쉴 구멍이 부모의 도움밖에 없다고 생각했기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고, 여자친구의 부모님은 도와주는데, 우리 집이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인데, 안도와 주는 건 여자친구 집안에 상처를 주는 행동이라 생각하여 무조건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아버지께서 도와주시긴 하셨지만, 항상 도와주고 싶어서 도와주는 게 아니라, 도와주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도와주는 느낌이라 속이 상하다. 하여튼 나에게 아버지는 솔직하게 말하자면, 본받고 싶지 않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의 기준이 되는 사람이다. 그러나 또 나를 도와줄 수 있는 그리고 도와준 유일한 사람이기에 미워할 수도 없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는 감사하다.


이단종교에서 나온 지 2년 반이 지난 후 가장 큰 변화는 나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단종교에 있었을 때에는 나보다는 교주의 사상대로 살려고 했기 때문에, 나라는 사람을 지우며 살았고, 교주가 말하는 대로만 살았다. 10년이 넘게 그렇게 살다 보니, 지금도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의 취향이 무엇인지도 정확하게 아직 모르겠다. 하나 둘, 걸음을 떼는 어린아이처럼, 세상의 것들을 하나 둘 경험해 보면서 이것이 좋은가, 저것이 좋은가 알아가고 있다.


물론 세상에 나와서도 삶을 살기에 급급하기에 다른 방향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되기도 하지만, 삶에 있어서 주체적으로 내가 결정하고 대항한다는 것 자체가, 진정으로 삶을 살아가는 느낌을 준다. 한겨울에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 '내가' 그 바람을 맞고 있음을 느끼듯이 말이다.


이단종교에 있었을 때에는 그런 게 없었다. 모든 것은 자기 책임 분담이라고 말하긴 하지만, 뜻이 아니라고 치부하며 금방 포기해 버리는 일도 많았고, 천국에 가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예배만 드리면 삶에서 잘 살든 못살든 그건 중요치 않았다. 삶에 대한 애착을 놓아버리게 되었던 것이었다. 지금도 삶이 너무 힘들 때 그런 마음이 생긴다. 모든 걸 포기하면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을 텐데.. 하지만 그러면 내 와이프는 아기들은 누가 책임지는가.. 그리고 그런 남자를 어떤 여자가 믿고 자신을 맡길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보면 과거처럼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지금이라도 그렇게 살지 않고자 발버둥 치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단종교에 13년을 있으면서 물론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었다. 그 안에서 엄청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무엇인가를 했었다. 그 안에서는 목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래서 그 귀한 대학생 시절에 공부보다 전도와 찬양과 말씀과 기도를 그렇게도 열심히 했다. 7일 금식도 3번이나 했다. 새벽 1시에 일어나 기도하고 새벽에 5시간씩 기도하거나 하루에 7시간씩 기도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천명이 넘는 교회에서 새벽에 설교를 하기도 하였으며, 전도사 긴급도 받아서 성직자로서 열심히 충성하기도 했다. 중고등부, 대학부, 청년부 지도자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관리하였고,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지도자이자 형으로써 그리고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쪽 세계에서는 엄청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꿈을 이뤄가면서 살고 있는 나름 성공적인 청년의 삶이었다.


나의 모든 열정을 투자해서 그 삶을 만들어 놨는데, 그 터전을 버리고 세상으로 나오기가 아무리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고 한들 두렵고, 아쉽고, 눈물이 나지 않겠는가... 나의 꿈과 젊음을 모두 버리고 나오는 것인데 말이다. 그 이단종교에서 같이 생활하던 친한 사람들 아무도 나에 대해 모른다. 내가 얼마나 애착을 가지고 그 삶에 투자하고 사랑하며 키우며 살아갔는지를..


잘못된 곳이었지만, 그곳에는 내 인생과 삶의 덩어리가 있는 곳이다. 그렇기에 지금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애잔하고, 아쉽다는 말로는 부족한 나의 젊음의 고향이다.(절대 그곳이 좋다는 얘기가 아니다. 나의 삶이 잘못된 데 투자되었다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꿈만 같다. 왜 그렇게 열광했으며, 왜 그렇게 내 모든 것을 바쳤는가.. 한 여인을 사랑하듯, 왜 나의 꿈과 사랑을 그곳에 쏟아냈는가... 나의 영혼을 그곳에 남긴 채 지금의 나는 껍데기만을 가지고 세상밖으로 나왔는가, 이단종교라는 곳이 그런 곳이다. 사람의 영혼을 가져가고 껍데기만 남겨놓는 그런 곳.


하지만 어쩌겠는가. 밤송이가 처음에는 껍데기밖에 없다가. 후에 밤 알갱이를 맺듯이. 나도 이 남은 껍데기에 새로운 영혼을 불어넣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 젊다면 젊고 늦었다면 늦은 이 마지막 기회의 끈을 잡고 혼신의 노력을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내 삶을 누가 책임져주나, 내가 책임지고 가야 하는 거지. 내가 주저앉아 있는다고 해서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비도 피하고 눈도 피하고 햇빛도 피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지꼴을 면하지 못한다.


'노력', 그 단어 하나만이 나에게 남았다. 직장을 3년 동안 3번을 바꿨다. 거의 1년에 한 번 이직을 한 샘이다. 가는 소장님들마다 같은 얘기를 반복한다."너는 늦었으니까 남들보다 2배는 더 노력해야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만큼 따라잡을 수 있어." 노력, 노력, 노력!.. 나는 노력하고 있다. 이단종교를 나와서 처음 1년은 숨 쉬는 게 노력이었고, 그다음 1년은 웃는 것이 노력이었고, 그다음 1년이 되어서야 조금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노력한다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다. 아니, 그들이 원하는 노력이라는 것을 하는 데에도 기본으로 갖춰져 있는 것들이 있어야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처음 이단종교를 나왔을 때, 생각했다. 5년! 정상적인 위치에 오르는데, 5년 걸릴 거라 생각했다. 왜냐면 그곳에서의 5년의 노력이 나에게 있어서 위치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제 직장생활을 한 지 3년이 흘렀다. 3년 동안 그냥 허송세월을 한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게, 내가 봐도 건축이 많이 익숙해졌고, 도면 보는 것과 알아듣는 용어들, CAD속도 등 어느 정도 많이 올랐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직도 소장님께 "노력!"이라는 말을 듣는 것을 보면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나를 믿는다. 그놈의 '노력!'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노력 너를 이기는 게 내 첫 번째 목표다!


이렇게 나는 나와서 내 삶과 투쟁하며 동시에 계획되지 않은 날것의 내 삶을 어떻게든 붙잡으려 하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과거에 내가 그 이단종교에 쏟았던 시간과 노력, 열정, 사랑을 나의 커리어와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에게 쏟았다면 나의 삶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오늘도 상상해 본다. 가슴 아픈 상상이다. 과연 과거로부터 나는 얻는 것이 없었던 것일까? 무엇이라도 하나라도 있었다면 좋겠다. 그 보석을 발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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