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해 던지는 7가지 질문’과 함께
언젠가 대학원 수업 중 한 분이 교수님께 질문을 하셨다.
“요즘 사람들은 책을 안 읽는데, 저는 책을 꼭 읽어야 한다 생각하거든요. 교수님 생각은 어떠세요?”
질문만 듣고 이후 답이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이후에 내가 졸았거나 딴생각을 했나 보다.
암튼 저 질문이 방학을 보내고 있는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맴도는 차에 ‘책에 대해 던지는 7가지 질문’을 읽는데, 첫 장부터 ‘책을 읽지 말아야 할 이유’에 대해 적고 있다.
책을 읽으면 안 되는 이유는 뭘까
책 중독의 위험성
술이나 담배도 그렇지만 책도 한번 중독되면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 책 중독에 걸린 사람은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한정된 귀한 시간을 책에 고스란히 헌납한다. … 책 중독자는 책에 바치는 과도한 신뢰로 책에 세상의 진리가 들어있다고 생각하며 책을 완전히 믿어버린다. 책을 많이 읽으면 누구라도 품위 있는 교양인이 되고 존경받는 인격자가 되는 것일까? 독서가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되려 일상을 황폐화시키지는 않을까? 책을 많이 읽다가는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마저 상실한 채 무거운 머리만 가진 자폐적 인간이 되지는 않을까?
마트 장 보러 가는 길을 제외하고는 늘 가방에 책을 챙겨 넣는다. 한권만 챙기고는 ‘ 혹시 이 책이 재미가 없으면 어쩌지.’ 하고 한 권을 더 챙겨 넣는다. 고작 1시간 외출 길에 책만 두 권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보다가 어느 순간 책을 사서 모으게 되면서 한정된 시간을 쓰는 것만큼 한정된 돈도 다 책에 쏟아붓는다. 결국 한 달에 책 사는 돈을 정해놓았다.
그렇게 집에는 한번 읽고 다시 열지도 않은 책들이 한가득 쌓여가고 방의 주인이 바뀌어간다.
“책을 읽으면 인생을 현명하게 살 수 있어요.”
“책을 읽으면 교양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책 속에 진리가 들어있어요.”
학교에서 방송에서 살면서 늘 듣게 되는 말이다.
책을 읽으면 누구라도 교양 있고 우아한 사람이 되는 걸까.
책 속에서만 살다가 현실을 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건 아닐까
모든 일을 책에서 본 것처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건 아닐까.
생명력의 상실
인간은 문명화되면서 야만의 상태에서 벗어났지만 원시적 생명력을 상실했다. 철학자 안병욱은 지성, 감성, 야성이 균형을 이룬 삶을 이상적인 삶으로 생각했는데 문명인은 그중 ‘야성’을 상실했다. 함석헌이 즐겨 말한 ‘들사람 얼’이 있어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도 멀리 갈 수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책이 등장한 이후 책에 붙잡힌 인간은 원초적 생명력을 잃기 시작했다. 책은 밖에서 뛰놀고 야생의 에너지를 얻어야 할 인간을 ‘실내인’으로 만든다.
어린아이들부터 책을 읽어야 똑똑해진다는 부모의 말로 놀이터보다 도서관, 집에서도 뛰어놀기보다는 얌전히 독서를 하고 있다. (이것은 물론 층간소음이 문제겠지만). 책에서 이야기하듯 문자와 종이는 푸르른 삶이 불타고 남은 회색빛 재에 불과하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활자에 숨을 불어넣고 생명력을 준다. 그 생명력도 내가 경험이 있어야 불어넣을 수 있을 텐데. 책에서 얻은 간접적인 삶의 경험으로 또 다른 책의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돌려막기다.
건강의 약화
모든 중독처럼 책 중독도 자칫하면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될 수 있다. 책을 너무 많이 읽으면 건강이 나빠지고 현실 부적응자가 되며 심한 경우 정신이상자가 되기도 한다. “책에는 한 가지 중요한 문제점이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정신은 활동을 하는데 신체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책과 바람난 여자]라는 제목의 자전적 소설에서는 “… 간단히 말해, 적어도 3킬로그램을 어깨에 메거나 등에 짊어지고 다니다 보면, 제2 경추부터 미저골에 이르기까지 척추가 변형되어 망가진다. 고개를 숙이고 책을 들여다보면 모든 독서광을 호시탐탐 노리는 목 부분의 관절통이나 책을 읽을 때면 늘 어디엔가 괴고 있는 팔꿈치에 생기는 까끌까끌한 못이나 접촉성 피부염은 차지하고서라도 말이다.” 어디 척추와 목뿐인가. 책을 많이 읽다 보면 눈이 침침해진다. 잘 보이던 글자가 점점 희미해진다. 돋보기를 코에 걸치게 된다. 부디 그런 상태가 되지 않게 스스로를 조절하며 책을 읽을 일이다. 아니, 일정한 시간 이상으로는 책을 읽지 말아야 한다.
1박 2일 여행을 가도 짧은 시간 외출을 하더라도 책이 없으면 불안해진다. 반나절 외출에 책 2권. 들고 다가서 책을 읽는 순간보다 안 읽고 짐짝 되는 날들이 허다하다는 걸 알면서도 불안한 마음에 꾸역꾸역 들고 간다. 책 2권, 책 읽고 감동받은 멘트를 적어야 할 다이어리, 볼펜, 형광펜, 침침한 눈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돋보기와 안경집 그리고 텀블러. 이미 한 짐이다. 어깨는 축 쳐지고 목은 뻐근하고 눈은 침침한 지 오래다. 가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다 보면 수면의 질이 떨어져 퀭하다. 일정한 시간 이상으로는 책을 읽지 말아야 한다.
직접 경험 기회의 축소
책만 끼고 살다 보면 현실에서 멀어져 세상 물정을 모르게 된다. 세상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직접 체험이 점점 줄고 책을 통한 간접경험만 무작정 늘어난다. 직접 체험이 인격 형성을 비롯한 인생행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거기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지나치게 독서만 하다 보면 직접 경험을 할 시간이 줄고 모든 것을 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경험하려는 습관이 생긴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 책에 쓰인 말보다 진솔한 마음이 더 크게 사람을 움직인다.”라고 말했고 니체는 “공부를 하고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현명해질 수 없다. 여러 가지 다양한 체험을 함으로써 사람은 현명해진다.”라고 말했다. 제대로 생각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책만 읽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무슨 일이든지 열정을 가지고 해보아야 한다.
음식도 내가 먹어봐야 방송에 나온 음식이 무슨 맛인지 어림짐작이나마 할 수 있고, 사랑도 해봐야 로맨스 소설을 읽으며 두근거릴 수 있을 텐데. 아니면 나처럼 “허무맹랑한 판타지 소설을 써놨네.”하면서 삐걱거리는 감상평을 내놓을 수 있다. 여름 에세이 책 읽을 시간에 더운 여름 땀 흘리며 동네 산책을 한 바퀴를 하는 게 느끼고 얻는 게 훨씬 많은 건 사실인 것 같다.
설익은 지신인의 범람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속담이 있다. 책 깨나 읽은 사람들 중에는 아는 척하기에 바쁜 사이비 지식인이 많다. 책을 어설프게 많이 읽은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을 자신보다 지적으로 열등한 사람으로 간주하여 자신이 지금껏 책을 읽어서 알게 된 정보와 지식, 가치나 관념을 가르치려는 경향을 갖게 된다. 잘 알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서도 아무런 대안 없이 이러쿵저러쿵 비판만 늘어놓는다. 책에서 읽은 어설픈 지식을 떠들어대는 설익은 지식인들은 세상을 밝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어지럽게 만든다… 무신론적 계몽주의 철학 입문서를 두어 권 읽은 사람들이 프랑스혁명 시기 귀족들을 공격하는 데에 앞장섰고, 마르크스-레닌주의 해설서 몇 권 정도 읽은 사람들이 러시아 혁명 때 영주들을 몰아내는 일에 우두머리가 되었으며, 반유대주의 소책자나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읽은 사람들이 나치 전위대가 되었다.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멍청하고 아는 게 없고 과거의 내 말들을 주워 담고 싶고 겸손해지게 만든다. 읽으면 읽을수록 내 무식함만 확인하는 것 같아 입이 무거워지고 지금 아는 것도 100% 확실한 건 아니겠지 하며 말을 더 줄이게 된다. 그렇게 점점 더 뭔가 이야기할 때 조심하게 된다.
하지만 주변에는 ‘책을 읽고 책 읽는 나에 취해 이렇고 저렇고 비판을 늘어놓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 사람들도 조금 더 읽게 되면 과거의 자신의 말에 후회하지 않을까
현실 부적응
책에 흠뻑 빠지다 보면 책의 내용이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르트르처럼 부유한 집안의 관념적 지식인이라면 몰라도 각박한 무한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의 보통 사람들에게는 책은 멀리해야 할 물건이다. 작품 속 허구와 현실을 혼동하면서 어떻게 현실을 타개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중세 기사도 소설을 지나치게 많이 읽는 바람에 현실과 유리되어 환상 속의 원정을 떠나는 돈키호테야말로 독서가 만든 현실 부적응자의 전형이다. 평생 먹고살 것이 보장된 귀족이나 재산가라면 책을 멋 삼아 인생을 탕진할 수 있다. 그러나 거친 현실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생활인이라면 책과 멀어져야 한다. 그래야 현실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
그래, 책만 보고 살아가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오이값이 올랐는지 기름값이 올랐는지 알지 못한다. 현실은 지옥인데 책 속은 아름답기만 할 때가 있다.
영성의 고갈
이 세상에 대한 지식이 많다고 해서 참 평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불행은 지식으로 극복되지 않는다. 신학자들이 이성을 동원하여 책을 읽고 또 책을 쓰다 보면 오히려 신앙이 약해지거나 사라진다는 말도 있다. 오히려 굳건한 믿음을 갖고 영성의 수준을 높이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영성은 굳건한 믿음을 낳지만 그와 달리 지성은 끝없는 의문을 낳는다.
그렇게 동생도 교회를 다니다 교회와 멀어졌다.
자연으로부터의 소외
사람 구실을 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이니 독서를 위한 독서에만 시간을 바쳐서는 안 된다. 특히 아름다운 심성을 가꾸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진정한 만남과 자연과의 심미적 접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라는 말이 있지만 때로는 책에서 벗어나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이 인생과 세상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책 읽을 시간만이 아니라 들로 산으로 나가 새와 나무와 시냇물과 아침햇살과 저녁노을을 바라볼 시간이 필요하다.
여름 소설, 겨울 소설을 읽을게 아니라 미치도록 더운 날 계곡에서 수박을 깨 먹고, 추운 겨울 눈 맞으며 오뎅과 붕어빵을 사 먹는 순간이 더 인간다운 삶이 아닐까
책으로부터 탈주
“책을 버려야 책이 보이고, 그래야 세상이 온전히 보이는 법입니다. 책만 보고 있으면 엉덩이가 썩어요!” 책을 통한 정보가 많아질수록 직접 체험이 줄어들고 삶의 의미가 시들해진다. 책 읽기는 가상의 현실이고 독서는 타인의 체험을 통한 간접체험이다. 그러나 나의 삶은 지금 여기서 진행되고 있고 나의 삶의 핵심은 나의 직접 체험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러니 독서라는 간접체험에 빠져들어 삶이라는 직접 체험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특히 자아가 형성되는 아동기에서 청년기까지의 시기에는 더욱더 직접 체험을 많이 해보아야 한다. 사랑과 모험의 체험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문학책과 역사책을 제대로 읽고 이해할 수 있겠는가? 책은 다만 모든 것을 다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상상과 추체험을 통해 타인이 겪은 것을 간접적으로 경험함으로써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는 보조 수단일 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책을 읽지 말아야 할 이유'는 300쪽 가까운 페이지 중 30쪽이다. 나머지 270페이지는 그럼에도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로 채워져 있다.
2장부터 7장까지 쭉 이어지는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약간의 사기당한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책을 안 읽어도 되는 이유라는 이 책의 도입부가 너무 재밌고 새로운 시선이어서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지만
그래도
책은 읽어야 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