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려왔던가.
마침 바람도, 햇살도 투표하러 가기 딱 좋은 날,
여느 때처럼 짝꿍과 함께 다소 먼 곳에 있는 한 사전투표소로 향한다. 관외투표를 하면 대기시간도 줄일 수 있는 데다가, 드라이브를 하고 주변장소들을 거닐며, 짧은 여행을 하는 기분에 녹아들어 둘만의 데이트를 즐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점심 무렵이라 그런지 투표소는 여느 해보다 사람들로 붐빈다.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예사롭지 않은 열기가 더운 공기에 더해져 투표소 안은 후끈후끈하는 기운이 느껴진다. 오랜 시간 가슴속에만 품은 채로 누르고 눌러왔던 열망이 이런 열기를 만들어낸 걸까.
신분 확인을 마치고 기표소에서 기표를 하려는데 왜 이리 긴장이 되는 건지, 칸 밖으로 삐져나가게 도장을 찍지나 않을까, 수전증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조심조심 오른손에 기를 모아 도장에 온 힘을 가한다. 끓기 직전의 물에 가하는 마지막 열기라고 생각하며 비장한 마음으로 도장을 누른다.
혹여나 용지를 반으로 접힐 때 도장이 번지지나 않을까, 기표된 부분을 손톱에 도포된 값비싼 매니큐어인양 호호 불어가며 인주가 완전히 마르기를 기다린다. 긴장 바짝 오른 손을 부여잡고 이게 뭐라고?라고 혼자 중얼거리다가 그래, 이게 뭐지,라는 대답을 스스로 내뱉는다.
지난 육 개월, 걱정스러운 마음을 동동거리고, 밤잠 설치고, 비바람 내리는 차가운 아스팔트를 견뎌내야만 했던 날들에 대한 씩씩한 위로와 보상. 아이들에게 좀 더 떳떳한 엄마가 되기 위한 최후의, 가장 강력한 무기를 마침내 결사항전하는 심정으로 치켜드는 자리이니 이리 긴장될 수밖에 없을 테지. 함께 간 짝꿍도 말한다. 기표를 하는데 이번만큼 긴장된 적은 없었다고.
무사히 투표를 마치고 둘만의 잠깐 데이트를 즐긴다. 하얀 눈 내린 크루아상에 잼을 적절히 스며들게 한 뒤, 한입 스르르 베어 물고, 커피 한잔을 찬찬히, 속 깊숙한 곳으로 내린다. 카페 전면 창 밖, 여름에 다다른 마지막 봄이 푸르디푸르게 아우성을 치고 있다. 그동안 상처 깊었던 우리의 일상에도 저리 푸른빛이 치유의 손길을 곳곳에 뻗어주기를...
오후가 되자, 몸도 불편하고 찍어주고 싶은 사람도 없어 이번 투표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엄마가 스리슬쩍 내게 물었다.
"투표, OOO 주민센터에서 하면 되는 거가?"
놀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높였다.
"엄마! 투표하지 마. 찍고 싶은 사람도 없다면서 아무한테나 투표하고 그러는 거 아니야!"
엄마가 계엄에도, 계엄을 옹호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걸 나는 잘 알기에, 이번만큼은 엄마의 한 표를 막아야겠다는 절박감이 솟구쳤다.
"애들 미래를 생각해야지. 우리 어른들이야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엄마 기분 나쁠까 봐 '우리 어른들'이라고 뭉뚱그려 말했지만, 특히 엄마 연배의 어르신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긴 하다.
"108세 할머니도 투표한다는데, 안 하고 있으려니 해야 할 일 남은 듯 뒤가 찝찝하고 그러네."
사실 엄마가 투표소 위치를 물은 건, 단지 그 위치가 궁금해서가 아니라는 걸 나는 안다. 거기까지 내가 엄마를 부축해서 데려다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한 표가, 내 아이와 이 나라의 밝은 미래에 반하는 결정이라면, 나는 단호히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 믿고 000 찍어볼란다."
눈이 번쩍 뜨이고 귀가 솔깃했지만 나는 쉬이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엄마에게서 몇 번이고 약조와 확답을 받고, 지장을 찍고, 각서를 쓰기 직전까지 가서야 엄마의 팔을 단단히 부여잡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 OOO 주민센터까지 거리가 얼마나 될까, 직선거리로 한 이삼백 미터 되려나? 그런데 얼마 되지 않는 그 길을, 약간의 경사로가 있긴 하지만, 칠십 대의 엄마가 혼자서 제대로 걸어가질 못한다. 인간 지팡이가 된 내게 의지해서 겨우겨우, 것도 가쁜 숨을 내쉬며, 중간중간 마치 앞으로 고꾸라져 넘어지기라도 할 듯 몸을 가누지 못하고, 수행하기 몹시 어려운 미션을 간신히 해내듯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어쩌면 엄마에게 마지막 대선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함께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주민센터까지 가는 작은 풍경들조차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다음 대선인 2030년엔 엄마는 팔십 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아들램은 단 며칠 차이로 투표권을 가지지 못하겠지만, 딸아이도 선거권자가 될 것이고. 큰 탈이 없다면 우리 집 투표권자는 두 배로 늘어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 '큰 탈'은 엄마가 겪을 확률이 높을 테지.
요즘 부쩍, 몇 년 주기로 하는 행사나 대회를 셈하고 챙기는 것이 점점 부담스러워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