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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진 Feb 19. 2023

내 마음 가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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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 so blue - Calme




 조금 답답합니다. 어디에 나가고 싶지도 않고, 저를 밖으로 부르는 사람도 없습니다. 제 속에 답답함과 공허함은 싸여만 가는데 할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니. 그래서 암막 커튼으로 저의 창을 가렸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았습니다.


그제야 은하수가 가득 차올랐습니다. 마음이 편안합니다. 눈을 감고 상상할 때 저는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과거를 되세김질할 수도 있고, 하늘을 비행할 수도 있어요. 이건 쓸만한 자격이 없어도 쉽게 할 수 있는 여행입니다.


육체는 살았지만, 마음은 죽었습니다. 마음은 살아도 육체가 죽어버렸습니다. 다 괜찮습니다. 썩 마음에 듭니다.


자격이란 거, 자격이란 거, 다 그런 거 아니겠어요?


글의 형식 같은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전하는 메시지나, 이 글이 얼마나 흥미진진한지, 얼마나 문학적으로 가치가 있는지. 그런 것은 다 모르고 싶어요. 그냥 저는 눈을 감았고 제 영혼을 표현하고 싶을 뿐입니다. 제가 숨 쉬고, 느끼고, 헤엄치고, 일렁거리는 것을. 저의 색깔을 가감 없이 세상에 수놓고 싶습니다.


하지만 분명 이 색깔도 어떤 글의 파도에 휩쓸리겠죠. 그것을 충분히 예지하고 이곳에 몸을 담근 것이니, 걱정은 말아주십시오. 저는 사냥에 능한 뱃사람처럼 상심치 않고 항해를 계속하겠습니다. 은하를 찾기 위한 항해를.


사실 은하수는 눈을 감지 않아도 어디에나 있습니다. 이를테면, 바닷속 깊은 곳. 그러니까 아주 아주 깊어서 눈을 떠도 감은 것 같은 곳에서. 제 팔과 다리를 앞뒤로 잘게 흔들면, 조금밖에 남지 않은 숨을 토해내면. 그러면 그때 공기 방울이 하얀 은하수가 되어 바다 위로 반짝이더군요.


사실 은하수는 눈을 감지 않아도 어디에나 있습니다. 이를테면, 한 방향으로 흐르는 시간 같은 것. 새벽은 아침 해를 기다리고, 정오는 사람들이 하루를 양껏 살아내도록 품을 내어줍니다. 그러다가 홀로 어둠을 견뎌야 할 때즈음, 우리는 밤에 다다르게 됩니다.


행복한 시간을 붙잡고 싶다거나, 괴로운 시간을 넘겨버리고 싶다거나. 이런 상상들은 다 부질없습니다. 결국에 시간은 밤에 다다르니까요. 하루를 지나 은하수를 향해 달리니까요.


시간은 은하수를 품은 밤입니다.

밤은 은하수가 물결치는 시간입니다.


마음껏 팔다리를 휘저을 수 있고, 겨우 남은 숨을 토해낼 수 있는 그런 시간. 몰래 아래로 가라앉아도 아무도 모르는 순간. 아득한 찰나. 인간의 추한 모습을 숨겨준다는 부분이 시간이 가진 상냥함입니다.


시간은 매정하고, 공평합니다. 이 세상에 사는 그 누구도 시간의 얼굴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늘 도망치는 시간의 뒷모습을 봤을 뿐입니다. 눈을 감은 이 순간도 시간은 제게 등을 보인채 저만치 달아났습니다.


심해와 우주와 시간은 퍽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정체 모를 생명체가 별빛에 목을 축인다는 점이나, 인간의 걸음으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다는 점. 그 외에도 깊은 어둠을 간직한 채라는 점. 얼마나 많은 존재가 다녀갔길래, 저렇게 발자국이 겹겹이 새겨져 검어진 걸까요? 어쩌다 저렇게 검어지다 못해 어둠이 된 걸까요? 저로서는 감히 알 수 없습니다.


저는 가만히 우주복의 헬멧을 고쳐 썼습니다. 헬멧 유리에도 온통 별 그림자입니다. 까만 유리 너머로 지금 제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분명 쏟아지는 은하를 맞은 인간의 벅차오름이겠지. 경외심이겠지. 떨림이겠지. 끝없는 어둠을 보는 공포겠지. 그런 것을 눈에 담았겠지. 하고 상상하는 게 고작 일 것입니다.


저는 또 이렇게 세상 한켠에 저를 수놓았습니다. 눈을 감을 때, 우주복 헬멧을 쓸 때. 이럴 때만 저는 겨우 살아 숨 쉬는 것 같습니다. 입술을 오므려 뻐끔거렸습니다. 저 멀리서 고래 소리가 저의 은하를 뒤흔들었습니다. 바다 고래인지, 우주 고래인지, 시간 고래인지 헷갈립니다. 개체별로 울음소리의 파동이 다르다지만 미세한 차이입니다.


조금 위험한 상황입니다. 머릿속에 경고등이 울렸습니다. 고래의 거대한 눈과 마주하면 영혼을 빼앗긴다는 괴담이 있거든요. 이곳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이제 저는 눈을 뜨려고 합니다. 우주복 헬맷을 벗어던지려고 합니다. 다시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려고 합니다. 조금 무섭지만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진짜 은하수가 있는 밤으로, 사람들의 걱정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저마다 사랑을 부딪치는 현실로. 눈을 뜨면 건조해질 대로 건조해진 제 방 천장이 보이겠죠. 고민으로 장식한 공간이 보이겠죠.


눈꺼풀을 잘게 떨었습니다. 털털거리며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가 들렸습니다. 고소한 부엌 냄새가 났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야광별이 보였습니다. 아주 어릴 적에 붙여둔 것입니다.


충격입니다. 이곳에도 은하수가 있었네요. 제가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네요. 발견하려 하지 않으려 했던 걸지도요. 발견하는 방법을 몰랐던 걸지도요. 그냥 고개를 들기만 하면 되는 건데.


뭐, 변명은 하지 않아요. 저는 늘 도망만 쳤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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