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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유 Nov 29. 2022

밤을 걷는 밤 -유희열/위즈덤하우스-

책주인_주인장의 책

 퇴근을 하고나면 시간이 되는 한, 동네를 걷는다. 그 말을 들은 한 친구는 “미화, 밤 산책 하는구나?” 라고 했다. 나는 그냥 걷는 건데 ‘밤 산책’이라고 하니 뭔가 있어 보이고 감성적이게 느껴졌다. 한 동안 ‘밤 산책’이라는 단어에 꽂혀 있을 때 이 책을 보게 되었다. 나처럼 밤에 거닐고 있는 것일까? 과연 나와 같은 생각을 할까? 읽기도 전에 여러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밤이 되면, 걸으면, 자꾸 생각나는 이 책을 결국 들고 거리를 나섰다.


 이 책 서문을 보면 가장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생각이 많을 때 산책을 하는 유희열님. 나와 정반대였다. 나는 생각을 하고 싶을 때 걷는다. 정리가 안 되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고, 재밌는 생각을 하고 싶을 때면 나는 걷는다. 최대한 가볍게 하여 나만의 산책 코스를 걷는다. 이 책에서도 다양한 코스별로 그 거리, 그 동네의 추억을 떠올리며 걸었다. 

 추억의 길을 걷는 유희열님을 보며 나도 나의 추억의 길을 생각해보았다. 내가 살던 동네는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온 후로 그 동네는 잘 가지 않았다. 나쁜 기억이 있다기보다 추억에 젖어 처량하게 보내는 내 자신이 싫었다. 특히나 아빠가 돌아가신 후로는 그 근처는 아예 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 생긴 카페를 가다가 새로운 길을 따라 오는데 오다보니 내가 살던 집 동네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곳이 이렇게 바뀌었구나.’ 보다 더 먼저 반응하는 건 어린 나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달라진 곳들을 보면서 웃음이 나오니, 이제 내가 이 동네에 와도 괜찮구나 싶었다. 

 풀벌레 소리 밤의 소리
 난 매미 소리만 들리면 여름이 구나 보다 내가 살던 집이 떠오른다.
 나무에 달라붙은 매미들이 울어대는 그 소리가 정겹다.


 내가 홍콩 여행을 다시 가고 싶은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는 ‘야경’이다. 그런데 항상 멋있는 곳, 아름다운 곳을 멀리서 찾는다. 하지만 ‘야경’ 밤의 불빛들. 우리 동네에 없을까? 없을 리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우리 동네 ‘사라봉’의 밤의 모습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그러니 제주에 영주 10경 중 하나인 ‘사봉낙조’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관광과 여행을 오는 여기. 여기가 바로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이며 나의 산책길이다. 유희열님 말처럼 참 좋은 것이다. 밤에 걷는다는 거. 일부러 여행가서 보는 야경을 난 퇴근길에도 산책길에도 우리 동네에 해가 지면서 땅의 빛들이 하늘 위로 쏘아 밝힌다. 유희열님의 같은 서울에 살지만 처음 와 본 동네에 낯설게 느껴졌다. 표지판을 보고 동네의 이름을 알고 나서 동네를 걸어본다. 이제는 본인이 와 본 동네가 된 것이다. 나도 요즘 동네를 걸으면 예전에 관심 없던 비석들을 보게 된다. 이젠 흔적이 사라지고 터만 남은 그곳에 ‘~터’라고 새긴 비석들을 보며 그 때의 시절을 잠시 상상해본다. 

 ‘이곳이 빨래터였구나.’ ‘이곳이 장터였구나.’ 하면서 말이다.


 산책을 하는 가장 즐거운 이유는 새로운 길, 가게를 ‘발견’ 하는 일이다. 차를 타면서 볼 수 없었던 골목, 골목을 걸어서 찾은 예쁜 길, 새로 생긴 가게들을 저장해두어 나만의 플레이스를 만든다. 걷는 재미는 보는 재미 찾는 재미다. 그걸 유희열님도 알고 계신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끼고 계신다. 나 역시 걷다가 발견하게 되면 보물찾기에서 보물을 찾듯이 기쁘다. 이번에 찾은 카페도 다음에 책을 들고 갈 것이다.

 유희열님의 밤산책은 지나간 기억을 꺼내보고, 사람을 떠올려본다. 내가 다니던 그 공간이 나의 추억을 꺼내게 만든다. 나도 나만의 산책 코스와 좋아하는 길이 있지만 그냥 그 길과 공간이 좋았는데 이제 나의 추억을 새겨놓고 있다. 다시 걸을 이 길에 오늘을 떠올릴 수 있게


가끔 동네를 돌다가 나에게 길을 묻는 사람이 꽤 있었다. 친절하게 알려주고 싶지만 내가 모르는 곳을 물을 때도 많았다. 그럴 때면 과연 나는 우리 동네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고민하게 만든다. 이름을 들으면 어디서 봤는데 하며 갸우뚱거리다 지연스럽게 이끌리 듯 그 앞을 가게 된다. 이렇게 나의 동네와 친해지고 있나보다.


밤을 걷는 밤 도서 리커버 - 2022 민유

 최근 참 이상한 경험을 했다. 쉬는 날 오랜만에 애월에 갔었는데 역시나 관광객들로 어디든 붐볐다. 관광객들 사이에 내가 들어가 있으니 마치 나도 관광객이 된 듯 하여 행동이든 생각이든 그들처럼 하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 노형에 잠시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자연스레 제주도 도민이 되었다. 동네 사람들 사이에 내가 들어 가 있으니 이제야 한결 마음이 편하고 내가 사는 제주도 같았다. 잠시 커피를 마시는 동안 그 이상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같은 제주도에서 다른 동네를 보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그 아이러니한 상황을… 

마치 내가 사는 곳에 다른 세계가 있는 것 같았다.




-밤을 걷는 밤 재미있게 읽는 TIP-

자신의 동네 한 바퀴 걷고 와서 비교해보기.


-밤을 걷는 밤 한 줄 평-

밤산책은 온 몸의 세포 하나, 하나, 감성을 깨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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