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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영 Dec 06. 2020

우리는 가족입니다

애비규환

연하 남친 호훈과의 불꽃 사랑으로 임신을 하게  대학생 토일. 출산 후 5개년 계획까지 준비하며 결혼을 선언했지만, 돌아온 것은 “넌 대체 누굴 닮아 그 모양이냐”는 부모님의 호통뿐이다.


누굴 닮았는지 직접 확인하겠다며 찾은 친아버지는 기대와 달리 실망스럽기만 하고, 착잡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예비 아빠 호훈의 행방이 묘연해진다. 어색한 현아빠, 철없는 구아빠, 집 나간 예비 아빠까지! 첩첩산중 설상가상 그야말로 ‘애비규환’이로다! (출처: 다음영화 http://movie.daum.net)



영화 시작부터 교복 차림의 남자 친구와 부모님 앞에 앉은 토일은 과감하게 입고 있던 후드티를 벗어던진다. 그제야 드러나는 임신 5개월의 불룩한 배. 그리고 영화 내내, 토일은 한 번도 자신의 배를 숨기려고 하지 않는다. 넉넉한 원피스나 티셔츠 대신 반팔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누구든 그녀가 임산부임을 알 수 있게 당당하게 걷고, 우연히 만난 고향 친구에게도 자신이 결혼 전 임신임을 숨기지 않고 얘기한다. 마음먹었다면 할 수도 있었을 임신 중지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까지도.


이렇게 씩씩한 토일이는 기대보다 훨씬 배우 정수정과 잘 어울려서 내 마음을 빼앗았는데, 열애설 하나에도 민감한 아이돌이자 20대 초반의 여배우로서 임산부 설정이 본인에게도 회사에게도 선택하기 쉽지 않았을 거라 짐작되지만, 그녀는 토일이처럼 용감하게 도전했고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토일의 엄마는 토일이 어릴 적 이혼을 했고, 동료 교사와 재혼하여 토일을 데리고 서울로 온다. 대구 출신에, 아직도 한옥에 살며 제사를 지내는 친정 부모님을 가진 엄마가 이혼 후 싱글맘으로서 겪었을 스트레스가 보수의 고장 ‘대구’라는 공간적 배경 덕분에 별다른 설명 없이도 이해될 것 같았다. 그래서 엄마는 토일을 내면이 단단하고 주체적인 아이(물론 엄마가 원하는 방향은 이게 아니었을테지만)로 키우고 싶지 않았을까.


토일은 대구 외갓집에서 찾은 사진첩에 아빠 사진이 한 장도 없어서 누군가 버린 게 아니었나 의심하지만, 뒤늦게서야 자기 독사진만 가득하고 엄마의 사진도 없다는 걸 발견한다. 이유를 묻는 토일에게 외할머니는 무심하게 대답해준다. '찍어주는 사람이 없었나 보지' 수많은 토일의 독사진 뒤에는 카메라를 든 엄마가 있었다. 토일이 대구를 돌아다니며 문득문득 떠올렸던 어릴 적 추억 속에서 엄마는 항상 씩씩하게 토일의 옆에 있어 주었다는 것도 그때서야 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



임신과 결혼 선언도 모자라 집을 나간 토일이 걱정되어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다 무심한 척 메시지를 보내는 아빠는 친아빠를 찾으려는 토일의 의도를 알고 서운해진다. 사춘기 시절 반항도 심하긴 했지만, 처음 대구 유원지에서 만났던 꼬마 토일이 때부터 듬뿍 사랑을 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갑자기 나타난 친아빠가 사라진 호훈 찾기에 합류해 동네에 전단지를 붙이고 다니자 토일이 싫어할까 걱정스러우면서도 아빠로서도 밀리는 게 아닐까 불안한 마음이 엿보였다.

하지만 토일이 결혼 선언 시 인생 5개년 계획을 거침없이 발표하거나 암호에 가까운 사자성어로 말싸움을 하는 모습에서 아빠와 딸은 많이 닮아 보였고 이미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낸 가족이었다. 토일과 엄마가 강한 여성임이 명확하지만, 그 뒤에선 아빠가 묵묵하게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이렇게 혼전 임신, 재혼 가정이란 소재를 당당하게, 사랑스러운 캐릭터들로 보여준 것이 이 영화가 밝고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자 내가 이 영화를 보고 기분이 좋아졌던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뒤늦게 등장한 친아빠도 혈육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며 대립하기보다 그저 한 사람의 조력자로서 그려진 것도 좋았다.

소식이 끊긴 친아빠에 이어, 사라진 남자 친구 찾기에 바빴던 토일이 발견한 건 항상 곁에 있었던 엄마와 자신에 대한 믿음이었다. 호훈이 사라지면서 완벽하다고 믿어왔던 자신의 결혼 계획이 흔들려 잠시 패닉에 빠지지만 ‘인생 살다 보면 실패할 수도 있다’는 진리를 깨닫는 건 누구의 조언도 아닌 토일이 이뤄낸 성장이다. 마지막 장면 토일이 모녀의 투샷이 너무 예뻐서 기분 좋게 끝낼 수 있었던 영화


애비규환 More than Family

최하나 / 108분 / 드라마 / 한국 /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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