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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영 Sep 10. 2020

우연이 만들어낸 미래

2019 세토우치 국제예술제 여행기를 시작하며

2019년 내내 여행 계획을 세우며 보냈고, 한 번의 여행이 끝나면 머지 않아 다가올 다음 여행을 기다리며 보냈다. 다시 열어보기 겁나는 수많은 양의 사진과 동영상이 남았지만, 개인 SNS엔 몇 개의 포스트를 올린 것이 다였다. 그래도 이 여행에 1년을 꼬박 바쳤는데 여행이 고플 땐 언제라도 꺼내 읽고 싶은 이야기로 남기고 싶단 욕심이 생겼다. '정말 좋은 곳이에요'라는 말보다 조금 더 친절하게 내가 다녀온 소박한 섬들을 소개하고 싶었다. 내가 우연히 이 곳을 알게 되어 여행을 떠났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듯이, 누군가도 우연히 이 글을 읽고 세토우치로의 여행을 꿈꿔본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순환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세토우치 지역을 처음 알게 된 건 2016년 여름이다. 당시 연애 중이던 남편과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오랜 일본 아이돌 팬 경력에, 교환학생, 출장까지 다니며 일본 방문이 잦았던 나와 달리, 남편은 도쿄에 이은 두 번째 일본 여행이었고 우리 모두가 만족할 수 있도록 아직 가본 적 없는 곳을 찾기로 했다. 그때 남편이 물었다.


"나오시마 가본 적 있어요?"


도쿄, 오사카 등 대형 도시 위주로 방문했던 나에게 '나오시마'라는 지명은 낯설었다. 종종 가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들은 지명이라고 하여 나도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아티스트 쿠사마 야오이의 호박이 마스코트처럼 서 있는 섬. 안도 타타오가 지은 커다란 미술관이 있는 섬. 포털사이트에서 나오시마가 속해 있는 카가와현(県, 우리나라의 '도'와 같은 행정구역)의 블로그를 발견했고, 나오시마에 대한 정보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세토우치 국제예술제를 알게 되었다.


세토우치 국제예술제(Setouchi Triennale)

예술을 통한 지역의 세토내해(內海) 지역의 활력 회복과 재생을 목적으로 한 Art Setouchi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3년마다 열리는 국제예술제. '바다의 부활(Restoration of Sea)'을 슬로건으로 하여, 2010년 처음 시작되었으며, 봄, 여름, 가을 3 계절로 나뉘어 약 100일간 진행된다.


세토내해

일본 혼슈, 시코쿠, 큐슈 3개의 육지에 둘러싸인 바다로, 호수와 같이 잔잔한 수면과 수많은 섬들, 백사장과 소나무 해변, 계단식 논 등 친숙한 풍경과 풍부한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1934년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 '세토내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해상교통의 요지로 인력과 물자를 나르던 대동맥 역할을 하였으나 1960년대 이후 고도 경제성장과 함께 대규모의 공업개발과 경제발전으로 인해 심각한 환경오염을 겪으며 쇠퇴하였다. 1980년 후반 나오시마가 예술의 섬으로 새단장하게 되면서 시작된 Art Setouchi 프로젝트의 무대가 되고 있다.

-내용 및 그림 출처 : 세토우치 국제예술제 공식 홈페이지(https://setouchi-artfest.jp/en)

여행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6월 말이었는데 이미 잡혀 있는 회사 일정이나 개인 약속 등을 제외하고 나니 예술제가 끝나기 직전인 11월 초에나 떠날 수 있었다. 4박 5일의 일정으로 쇼도시마와 테시마, 나오시마 3개의 섬과 타카마츠시를 둘러보고 돌아왔다. 크고 작은 배를 타고 이 섬에서 저 섬으로 옮겨 다니는 여행은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예술 작품들은 신선하고 아름다웠고, 어디서든 조금만 걸으면 탁 트인 바다를 만날 수 있었다. 그 날의 마지막 배가 떠나고 난 뒤 섬에 찾아오는 정적이 좋았다.


섬에서 3일을 보내고 육지로 돌아가기로 한 날은 2016 세토우치 국제예술제의 마지막 날이었다. 항구에서 출발하는 배편 중 각 행선지별 마지막 배에는 다음 예술제를 기약하는 리본이 달렸고, 예술제 자원봉사자들과 지역 주민, 항구 직원들이 떠나는 배를 향해 있는 힘껏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아, 일본의 이런 점이 여행자를 이 나라에 다시 오게 만들지.

 


세토우치 여행을 하면서 남편은 자주 말했다. 우리 3년 후엔 더 많이 준비해서, 오래오래 머물고 돌아오자고. (사실, 그는 3년 후엔 예술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자고 했었다) 그때만 해도 언제 3년이 지나지 했는데, 이 여행을 끝나고 돌아오고 나선 주말마다 광화문 촛불 시위에 나갔고, 이듬해 3월엔 결혼을 했다. 대통령이 바뀌었고, 2018년엔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났다. 팀을 옮기면서 출근하는 사무실이 바뀌었다. 나 개인과 나라의 역사적인 순간들을 맞이하다 정신을 차리니 2019년이 다가와 있었다.


그래, 이제 다시 떠날 수 있다.

예술과 힐링이 있는 세토우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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