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영 Jun 11. 2023

[2022 영국] 떠나볼 결심


* 2022년 여름 런던에서 보낸 68일의 기록입니다.





2022년 3월, 졸업 후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 11년 가까이 일한 뒤 무소속이 된 지 한 달 남짓 지났다. 퇴사 전 업무에서 손을 놓은 때부터 세어보면 벌써 석 달째 휴식이었다.


일단 올해는 있는 힘껏 자유로운 생활을 즐겨보자고 마음먹었지만, 그동안 내가 뭘 했나 뒤돌아보면 아주 약간의 운동과 아주 긴 집콕 생활뿐.. 회사만 그만두면 평일 카페 투어, 미술관/영화관 투어를 열심히 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몸도 마음도 움직이질 않았다.


이것도 다 그동안 지쳤던 몸과 마음의 회복 과정이겠거니 했지만, 코로나까지 걸려 3주 가까이 칩거 생활을 하다 보니 이렇게 쭉 집에만 있으면 나중엔 분명히 아쉬워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나를 위해 사용할 목적으로 조금 떼어둔 퇴직금을 한 번에 탕진할 계획을 세웠다.


그것은 바로 해외여행!


언젠가 일을 안 하게 된다면 꼭 장기 세계 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예전처럼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는 여행을 준비하기엔 변수가 많을 거 같아서, 대신 한 도시나 나라에 머물며 느긋하게 돌아보기로 했다. 우선 코로나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여러 가지 변수에 잘 대응하기 위해서는 말이 좀 통하거나 가본 적이 있는 익숙한 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지로 부인을 혼자 보내야 하는 남편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함이기도 했다. (물론 내가 남편보다 훨씬 여행 경험이 많기는 하다.)


처음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었던 때 후보지로 삼은 곳은 영국, 태국, 일본 이 세 나라였다.


혼자서 정리해 본 후보지 3개국의 장단점


한국에서 지내는 것과 비슷하게 몸 편하고 마음 편한 곳은 일본이라 추후 관광 입국이 가능하게 될 때까지 기다려볼 생각도 했지만 당시에는 기약이 없었다. 1년 중 가장 날씨가 좋다는 유럽의 초여름 시즌을 놓치는 것도 아쉬웠고, 혹시 일본 여행이 가능해져서 하반기에 출발하게 되면 여행을 하며 자꾸 내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될 것 같았다. 결국은 가장 부담스러운 예산을 감수하고 영국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일정은 5월 중순 집안 행사를 마치고 출발해서 총 10주를 보내고 8월 초에 귀국. 10주 내내 여행을 하면 내 체력이 괜찮을까 걱정되기도 했고, 여행 전 계획을 많이 세우는 편인데 10주 여행 일정을 한국에서 미리 짜기엔 너무 힘들 거 같았다. 그래서 초반 5주는 런던에서 어학원을 다니며 런던과 근교 지역을 즐기고 남은 5주는 영국 자유여행을 하기로 했다. 영국은 휴가로 가면 길어야 4~5일 정도로 머물렀던 게 다여서, 이번 기회에 런던과 영국을 구석구석 가보는 걸 1순위로!





항공권 준비하기


회사에서 휴가로 여행 갈 때는 출발/도착일이 너무나 명확해서(금토일 중에 출발해서 그 다음주 주말에 돌아와 월요일에 출근하기) 항공권 예약이 편했는데 오히려 아무 때나 출발해도 되는 상황이 되자 항공 스케쥴 경우의 수가 무한대로 늘어나서 일정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코로나 이후로 거의 매일 출발하던 국적기 직항은 주 2~3회 정도만 운항하고 있었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여파로 비행기가 우회하는 바람에 유럽으로 향하는 비행시간도 2~3시간 늘어난 경우도 많다고 했다.


나는 비행기 안에서 시간 보내는 걸 즐기는 편이라서 예전엔 가격이 저렴하기만 하면 공항 구경도 재밌다고 유럽에서 한국까지 2번 경유해서 오는 티켓도 사고 그랬는데 지금은 시간보단 체력이 중요하다 보니 2번 경유는 이제 옛 추억으로...


엑셀에 한가득 이런저런 비행 스케쥴 조합을 적다가 갑자기 머리에 과부하가 왔는지 덜컥 마일리지로 인천-런던행 직항 티켓을 결제해 버렸다. 출국 날짜라도 정해야 고민 거리가 좀 줄어들 거 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거 같다. 원래 머리 터지게 고민하다가 마지막엔 욱해서 막 정해버리는 타입... 마일리지는 나중에 남편이랑 여행 가려고 남겨뒀던 건데 혼자 낼름 써버려서 나중에 사과했다.


그 와중에 점점 관광객 입국 규제를 풀어가는 유럽 정세 때문인지 항공권 가격이 시시각각 오르기 시작했다. 항공료로 생각한 예산 한도가 있어서 귀국할 땐 경유 편을 타서라도 비용을 맞추려고 했는데, 출발 티켓을 먼저 끊고 (다시) 귀국일을 고민하는 동안 시시각각 좋은 스케줄의 저렴한 티켓들이 사라졌고 가격이 다시 내려갈 것 같진 않았다. 결국 다급하게 귀국용 편도 티켓까지 구입해서 떠났는데,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오랫동안 잠잠했던 피부병 재발을 알게 돼서 출발 전에 했던 수많은 고민들이 무색하게 귀국 일정을 당겼다. 역시 아무리 열심히 고민해도 인생은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다.


이미 7~8월 비행기 티켓은 내가 어느 곳을 가던 천정부지로 오른 상태였고, 원래 가지고 있던 티켓 일정을 변경하려면 내가 구입한 금액만큼 추가 금액을 더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결국 기존 직항 티켓을 아예 취소하고 취소 수수료까지 포함해도 더 저렴한 경유 티켓으로 새로 구입했다. 코로나로 닫혔던 국경들이 하나씩 열리면서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유럽으로 몰려왔고, 가파르게 상승한 티켓 가격 뿐만 아니라 2022년 여름 유럽 주요 공항들은 역대급 혼란을 겪어야 했다.


암튼 이제 항공권을 손에 쥐었다. 생각만 하던 여행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기분이 이상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