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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축적과 발산 Aug 08. 2022

투기는 비도덕적인 행위가 아니다.

인생은 내로남불

사람들은 투기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즉각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도덕적 판단에 있어서 직관이 추론보다 앞서기 때문에 부정적인 단어를 듣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게 된다.


투기의 사전적 정의는 아래와 같다.

1. 기회를 틈타 큰 이익을 보려고 함. 또는 그 일.

2. 시세 변동을 예상하여 차익을 얻기 위하여 하는 매매 거래


시세차익의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잡는 행동이 투기란 것이다.

과연 이 행동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비도덕 한 행위라고 보는 것이 정당 한 것일까?(비도덕과 위법을 혼동하지 말도록 하자.)


주가에 대한 사람의 견해는 [주식을 보유 중일 때와 보유하고 있지 않을 때], [보유한 주식의 주가가 상승일 때와 하락일 때]에 따라 달라진다.

코인과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보유한 주식의 주가가 상승하면 본인의 투자 실행을 혁혁한 공으로 여긴다.

하지만 [주가가 상승 중인데 본인은 미보유], [보유 중인 주식이 하락]하는 경우, 그에 대한 화살은 본인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해 날아간다.(정부, 경영인, 투기꾼 등)

때문에  특정 사건이 개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 도덕적 견해는 확연히 대조를 이룬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의 투자 결과에 대한 해석은 자신에 대한 해석과 정반대를 보인다.

[타인이 주식으로 돈을 벌면 운이 좋거나, 비도덕적이기 때문], [타인이 투자로 손실을 보면 무지함 때문]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내리는 도덕적 판단은 모순적이라 볼 수 있다.


투자든 투기든 이 행동에 대한 결과는 행위자가 떠안는 것이다.

행위의 결과가 긍정 일지, 부정 일지 모르는 상태에서 리스크를 짊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합법적으로 얻은 돈일지라도 깨끗한 돈과 더러운 돈으로 구분해서 바라본다.

때문에 워런 버핏은 투자의 귀재라 불리는 반면에 조지 소로스는 투기꾼으로 폄하된다.

(조지 소로스의 기부금은 세계 5위이지만 자산 대비 기부금으로 따진다면 더 높은 순위를 보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워런 버핏은 알고 있지만 조지 소로스에 대해선 모르거나, 알더라도 투기꾼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 영국 파운드화, 동아시아 주요 국가의 화폐가치 하락을 예상하여 공매도를 통해 큰 이익을 취했다는 것을 이유로 말이다.

그로 인해 해당 국가들은 심각한 침체를 겪었기에 소로스는 비도덕 한 사람으로 치부한다. (자본주의 테러리스트라고 불릴 정도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투기라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투자를 함에 있어서 가격은 가격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함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가격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왜곡된 시선을 가지고 사건을 해석하게 된다.


자본주의를 법의 관점이 아닌 도덕적인 관점에서 판단하는 것은 게임의 룰을 잘못 이해한 채로 스포츠 경기에 뛰어든 것과 같다.

그런데 이 경기가 본인의 경제적 안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면?

판단은 개개인의 몫이다. 물론 결과에 대한 대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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