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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롱도로롱 Aug 31. 2023

경의선 밑 오키나와

슈퍼-블루문과 의식의 흐름

 

 오늘은 슈퍼-블루문이 뜬 날이다. 낭만이란 단어를 입에 붙여두고 사는 나는 이런 중요한 날을 놓칠 수 없어, 냉장고에 차갑게 식혀둔 '아사히'캔맥주를 들고 중랑천으로 향했다. 늘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달은 별거 없었는데 오늘의 달은 그래도 꽤나 밝고 컸다. 경의선 옆으로 컴컴한 골목을 지나면 중랑천이 펼쳐지는데 오늘은 어쩐지 그 골목에 파라솔과 의자도 놓여있었다. 원래 있었는데 못 보고 지나친 것일지도 모르지만 새로웠다. 귀여운 머그잔도 세 개가 놓여있었는데, 그 안엔 낙엽색이 된 담배꽁초가 있는 걸로 봐서 재떨이로 쓰는 듯하다. 어쩐지 보고 있자니 뭔가 불량하면서도 낭만 있는 '오키나와'라는 도시가 떠올랐다. 휴양지지만 머리를 탈색하고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마른 남자들이 잔뜩 있고, 오토바이를 타고 담배를 태우는 사람들이 해변가를 누비는 오키나와말이다.



  이런 생각을 대충 하며 노래를 들으며 걸었다. 노래는 최근에 찾은 '은하철도의 밤'이라는 일본노래였다. 제목이 무척이나 서정적이고 목소리도 청순하면서 절절하다. 자고로 락커는 노래를 잘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나는(잘 부르면 진정성을 해친다.) 후렴부를 듣자마자 저장했다. 나는 노래를 꽤 다양하게 듣는 편이다. 발라드, 락, 포크, 아이돌 심지어 동요나 민중가요도 종종 듣는다. 우연하게 듣다가 좋으면 저장하고 질릴 때까지 듣다가 새로운 우연을 만나기 위해 유튜브 뮤직을 떠돈다. 운치 있지만 그래도 나도 내 취향을 좀 더 확고하게 알면 남에게 추천을 받는다든지, 비슷한 음악을 찾는다든지 여러모로 편할 것 같아서 좋아하는 노래들의 공통점을 찾아봤다. 대부분 밴드음악이며, 가사가 서정적이며, 하모니카와 나팔 같은 소리를 좋아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억지로 짜 맞춘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것을 모두 충족하는 노래는 역시 '블루하츠'의 'TOO MUCH PAIN'. 이건 마치 ‘순정 양아치’, ‘락하는 김광석’. 그런 느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고 '이 녀석 이런 걸 좋아하네' 하고 끄덕여주면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다.



 중랑천을 내려가려 육교계단에 가니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난간에서 달 사진을 찍는다. 조그마한 카메라에는 잘 담기지 않지만 다들 자신의 눈으로 본 장엄함을 어떻게든 비슷하게나마 담아보려 화면을 이리저리 만져댄다. 늘 가장 멋진 것은 자연이 보여준다. 제아무리 잘 그린 그림, 잘 만든 영화라도 장엄한 자연의 경관 앞에서는 소꿉장난이 되어버린다. 그것을 공짜로, 모두가 볼 수 있다니 내가 가르치는 '공공재'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세상에 모든 것들이 공공재라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어떤 아버지는 자신의 딸을 세워두고 달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여자아이였는데 내 허리만 했던 거로 봐서 네다섯 살이지 싶다. 다음 슈퍼-블루문은 14년 후라는데 그때까지 저 아이가 아버지와 이렇게 다정하게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분명 그럴 테지만 아니더라도 오늘 찍은 사진을 다시 보며 14년 전 사이좋은 시절을 생각한다면 둘에게도 행복이 아닐까 싶다.



 중랑천을 얼마 걷지는 않았다. 운동을 하러 나온 게 아니라 그저 달이나 보고 맥주나 마시러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앉을 곳을 찾으려 조금 걸은 게 전부다. 혼자서 맥주를 먹으니 괜히 속이 더부룩했다. 소주는 혼자 마시면 금방 취하고, 맥주는 혼자 마시면 금방 질린다. 달을 뒤로하고 다시 집으로 들어간다. "14년 뒤에 또 보자."라고 인사하면 달은 "멍청이냐 난 내일도 떠"라고 말하겠지. 달을 쳐다보고 있으면 어쩐지 과묵한 친구라는 생각이 드니 인사 같은 건 필요 없다.


https://youtu.be/UIXq1CRwgsU?si=HLmMFU1JQCaeKM9c


https://youtu.be/qd64znL3o4U?si=U3y98koEPbxkVR5X

은하철도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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