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씌여진 시들
#1
누가 버린 담배가 향처럼 피어오른다.
손톱 만한 불길이 조금 남은 담뱃잎이라도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원수라도 되는냥 태우려 달려든다.
큰 우주에 아주 작은 불꽃들도
저마다의 복수를 꿈꾸며 무언가 태운다.
자신이 생이 다할때까지 남을 갉아내며 말이다.
쓸모 없어진 것들의 작은 전쟁이 안쓰럽다.
사람만치 큰 것들도 향내만 남기며 사라지는 것이 안쓰럽다.
#2
마냥 행복할 순 없는 걸까
복어 삼킨 돌고래처럼
하루종일 재잘대는 산새들처럼
그렇게 살 수는 없는 걸까
봄이 되면 냉이 캐먹고, 밥짓고 찬차려 먹고
여름 되면 참외고 수박이고 잔뜩 가져다 놓고
오두막을 만들어 잠도 자고
가을엔 은행 주워 안주삼아 술도 마시고
겨울되면 눈사람 만들어 두고 옷도 입히고
그리 살면, 마냥 행복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나는 무엇이 하고 싶어
숱한 계절을 설움에 보냈나.
#3
먼지 쌓인 책을 뒤로하고
두뼘짜리 화면에 눈을 묻는다.
나의 책이 매일이 새것으로 낡아가는만큼
스승의 명찰은 부끄러워질 수 밖에 없다.
그토록 바라던 웃음은 창밖에 있고
헝크러진 책상에 다시 피곤을 쏟고 있자니
보내온 세월을 동정하려 냉소를 지을 뿐이다.
아이들 뛰노는 하늘이 푸르고
동무들 재잘되는 소리 가끔가다 들려는데
눈아픈 백열등도 요란한 전화기도 스승의 탓이다.
배움과 멀어진 스승은 그림자 밟힐까 두려워
냉정한 얼굴로 불길에 쫓긴 산짐승마냥 뛰어간다.
자기들 굴에 숨는다. 서글픈 사람들 많은 굴에 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