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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롱도로롱 Mar 12. 2024

예비군 훈련에 대하여


예비군 훈련이란 전역을 한 예비군들을 일 년에 한 번씩 불러, 수년 전 배웠던 이것저것들을 잘 기억하고 있는지 한 번씩 테스트해보는 자리이다.

학생의 경우 8시간, 학생이 아닌 경우 동원훈련이라 하여 2박 3일 합숙하여 부대에서 지내게 된다.

다음과 같은 예비군 제도는 정말이지 열이 안 받으래야 안 받을 수 없다. 필자는 보통 화가 많지 않은데 어쩐지 군인의 처우라든지 예비군이라든지에 대해서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작열감 같은 가슴통증, 편두통, 안면부 열감 등을 느끼는데 한번 들어보면 당신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예비군 훈련장은 군부대이다. 부대는 넓고, 보안이나 소음 등을 이유로 민가와 떨어져 있어야 한다. 때문에 예비군 훈련장까지의 교통편은 없다시피 하며, 그렇다고 차가 와서 데려다주느냐? 그것도 아니다. 꼭두새벽 일어나 지하철과 좁은 마을버스에 군복 입은 불쌍한 예비군들끼리 끼어 갈 수밖에 없다. 교육은 훌륭한가? 이건 경우에 따라 다르겠다. 하지만 대부분 강당에 모여 동영상 보기, 총 몇 번 쏴보기 등이기 때문에 별로 실효성도 없으며, 총 쏘는 법을 a to z 다시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한번 쏴보는 것이기 때문에 홍대 앞에 있는 사격장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게다가 총이 쏘기 어려운가? 한국의 남학생이라면 초등학생부터 사이버 세상에서 총을 쏜다.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움직이는 목표물을 쏘는 것도 아니라 엎드려서 쏘기 때문에 열 살짜리 조카, 훈련받은 침팬지 정도도 충분히 가능하다. 즉 20대 남성이 일 년에 한 번씩 산골짜기까지 가서 배울 필요는 더욱이 없다.


보통의 직장은 공가를 주지만 업무란 것은 적체되는 것이라 내가 공가 쓴다고 누가 내 일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자영업자의 경우는 영업에 큰 타격을 입는다. 게다가 더욱 기가 차는 것은 예비군에 대한 대우인데, 정말 딱 교통비 정도만 지급한다. 아마 무슨 임금을 주면 군인은 직업이 아니며 예비군 훈련은 노동이 아니라 훈련이기 때문에 지급이 안된다고 할 것이다. 군인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이유와 같다. 보통 꼭두새벽 나가서 저녁즈음 들어오면 입금되는 돈은 7-8000원 내외이다. 욕이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다. 예수여도 뺨을 칠 일이고 부처여도 욕을 할 일이다.


천인공노할 이 예비군 훈련의 클라이막스는 세 번째 "안 가면 범죄자"라는 말도 안 되는 법률이다. 예비군 훈련은 보통 일 년에 한 번 정도 가는데 안 가면 또 오라고 문자를 보낸다. 또 안 가면 또 오라고 전화가 오며 세 번째 안 가면 무슨무슨 법으로 무슨무슨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후기를 보니 보통 몇십만 원의 벌금을 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슬슬 뇌혈관의 팽창이 위험할 수준으로 머리가 뜨거워진다. "너넨 아무것도 못 받지만 알아서 산골짜기로 총쏘러 와. 안 오면 감옥 보낸다?" 이게 군대에서 2년 동안 고생하다 나온 예비군에 대한 국가의 부름이다. 예비군 제도가 간첩사건으로 생겼다고 들은 것 같은데, 더 지속하다가는 내가 간첩이 될 판이다. 교통편이라도 편리하게 마련해 주던지, 최저임금계산해서 와줘서 고맙다는 일당을 주든지, 총쏜지 오래돼서 전쟁 나면 총쏠줄 몰라 걱정되는 사람만 오라고 하든지 해야 할 것 같다.


법이 이래서 제도가 이래서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정말이지 주객이 전도된 말이다. 법이랑 제도가 왜 있는지부터 생각해 보자. 고등학교 수준의 정치와 법 교과만 배워도 과잉 금지원칙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는데, 슬쩍 생각해도 수단의 적절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 같은 조건들을 쌍끄리 무시했음을 알 수 있다.


위와 같은 글을 쓴 이유는 사실 예비군 훈련 신청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훈련에 신청은 또 뭐냐? 자기가 날짜나 장소를 고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근데 그게 무슨 임영웅 콘서트 마냥 늘 매진이다. 가고 싶어서 가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데 전석 매진인 것을 보니 기염을 토하게 된다. 가기도 싫은데 가고 싶어도 못 가. 물론 신청을 안 해도 자기들이 필요할 때 부른다. 그걸 기다리면 안 되냐? 그럼 그날 무슨 일이 생겨도 또 가야 한다. 당신의 생업, 일정, 등등 상관없다. 만약 그런 일로 못 가게 되면 그것을 또 SHOW&PROVE 해야 한다.


그런 것이다. 다들 체념한 것이다. 예비군 콘서트 티케팅에 성공한 사람들도 실패한 사람들도 분노와 탄식, 허망과 체념으로 가득 차서 한 톨도 남지 않은 애국심으로 그곳에 있는 것이다. 희미하게 남은 추억을 위로삼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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