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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리스마회사선배 Feb 26. 2024

벼락 맞듯.. 회사에서 잘리다

20년간 몸 바친 회사가 나를 차버렸다

[퇴임 통보받은 후 3일.. 그 생생한 아픔]


 임원의 끝은 초라한 퇴임이다. 후배들의 따뜻한 환송과 기념패 따위는 없다. 도망치듯 짐을 싸고, 급한 일이 있는 듯 집으로 달려간다. 한 번 힐끗 돌아본 회사는 을씨년스럽게 우뚝 서서 어서 꺼지라고 소리친다.


 회사에서 정년퇴임까지 가는 경우는 생산직, 기술직 일부 외에는 거의 없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회사를 위기에서 구해낼 정도로 고성과를 내도.. 이유도 모른 채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다.


 특히, 임원은 더하다. 퇴임통보를 받으면, 바로 다음 날부터 회사를 나갈 수 없다. 수십 년간 이른 시간에 익숙해진 몸뚱이로 어김없이 새벽에 번쩍 눈을 뜨지만, 긴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나 막막하다. 인생 젊은 날을 모두 불태워 회사를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쳤어도 직장인의 끝은 모두가 같다.  


 나도... 참 많이 아팠다... 20년간 근무한 나의 회사가.. 아무 준비도 안 된 나를 무참히 버렸다. 마치 어제까지 뜨겁게 사랑했인이 헤어지자고, 네가 싫어졌다고 차갑게 돌아선 것 같았다. 퇴임 통보를 받은 그날 이후 3일.. 생생한 심경변화를 적어 보았다.



2019년 12월 26일 14시 퇴임통보받은 첫째 날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


"안 좋은 일인데, 이번에 ㅇㅇ씨 퇴임시키기로 했어." 대표님의 말에 가슴이 '툭'하고 내려앉았다. 식도에 있던 무거운 쇳덩어리가 자이로 드롭을 탄 듯 순식간에 대장까지 쿵 떨어진다. 대표님의 말이 윙윙거린다. 높은 산에 오른 듯 귀가 먹먹해지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못 지켜줘 미안하다고.. 하지만 그의 표정은 한없이 편안해 보인다. 나쁜 새끼.. 이용만 했구나.. 남들이 다 욕해도 충성을 다 했건만, 그 어려운 신사업을 혼자서 악착같이 론칭해 냈건만.. 저 혼자 살고, 헌신짝처럼 날 버렸단 말인가.. 토사구팽


 갑자기 목구멍에 뜨거운 눈물이 차 오른다. 쿨하자. 멋있게 떠나자. 괜찮다고, 미안하실 필요 없다고, 그동안 많이 배웠고, 감사했다고도 했다. 다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분노와 배신감에 온몸이 떨렸다. 아..... 이런 거였구나. 평생을 바친 회사에서 잘렸을 때 느낌이 이런 거였어. 선배들이 겪었다던 퇴임통보, 나한테도 일어나는 거였구나..


일분일초도 회사에 있고 싶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쳐다보며 꼴 좋다고 비웃는 것 같았다. 비서에게 갑자기 일이 생겼다고 둘러대고, 도망치듯 회사를 빠져나왔다. 갈 데가 없다. 눈물도 나지 않는다. 집으로 향했다. 혼자 집 지키던 강아지는 철없이 뱅글뱅글 돌며 좋아한다.   막상 집에 오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미친 거 아냐? 나 같은 인재를 놓치고 잘 되나 보자.


첫날은 그렇게 흘러갔다......



2019년 12월 27일 퇴임통보 둘째 날 "참을 수 없는 슬픔, 분노, 배신감"


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꿈이 아니구나. 왈칵 눈물이 흐른다. 아프다. 가슴속에 피가 철철 흘러넘친다. 너무 아프고 또 아프다. 남편과 아이들이 슬슬 내 눈치를 살핀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아침을 먹었다.


정말 회사 나가기 싫은데, 신입사원들이 열심히 준비한 송년회 날이 하필 오늘이다. 그 가상한 노력을 알기에 차마 취소하지 못했다. 하루 새 전사에 소문이 다 보다. 여기저기서 위로 문자와 톡이 울린다. 울지 말자. 울지 말자. 울면 지는거야. 당당히 떠나자.


송년회 말미 마무리 멘트를 하면서 그 다짐은 와르르 무너졌다. 구성원 한 명 한 명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폭풍 같은 눈물이 쏟아졌다. "저는 대학교 졸업 후 하루도 쉬지않고 최선을 다했고, 20년을 이 회사를 위해 일했습니다. 그 마지막 3년을 여러분과 함께 해서 참으로 영광이었습니다" 이 간단한 멘트를 하는데 삼분이상 걸린 것 같다. 1층까지 배웅 나온 후배들을 보면서 또 울고, 집에 가는 길 운전하면서는 통곡하며 울었다. 회사에 기여한 게 얼만데. 통보 한 번으로 이렇게 끝나버리다니.... 나보다 무능하고, 나보다 일 안 하고, 정치만 하는 임원들이 얼마나 많은데.. 슬프고, 분하고, 억울하다.


2019년 12월 28일 퇴임통보 셋째 날 "자기 비하'


또 일찍 눈이 떠졌다. 수십 년간 새벽 5시부터 시작된 일상에 몸은 당연히 익숙해졌을 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분명히 최선을 다해 일했고, 성과도 냈고, 작년엔 승진까지 하지 않았던가? 1년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성과를 더 내야 했나? 골프를 잘 못 쳐서? 정치를 못 해서?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쁜 일은 손을 잡고 오나 보다. 오빠는 3개월 전에 폐암 말기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고, 노쇠한 엄마가 그런 오빠를 간병하기 위해 우리 집에 와 계신다. 요양원에 있는 오빠만 보고 오시면 쓰러지시는 연로한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막내딸마저 회사에서 잘렸다는 말을 도저히, 도저히.. 못 하겠다.


 출근하는 척 무작정 집을 나섰다. 어디서 하루를 보내야 하나? 엄마한테는 하루하루 뭐라고 둘러대야 하나? 어쩌다 내 신세가 이렇게 된 걸까? 또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아버지..아버지도 퇴임 때 이렇게 아프셨나요?" 공무원 생활 30년 하시고 퇴임하신 아버지가 혼자 방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 하늘나라에서 보고 계신가요? 너무 보고 싶어요.' 뭉툭한 손으로 등을 토닥여 주시며 괜찮다고, 그동안 고생했다고, 우리 막내딸 자랑스럽다고  말해 주실 것 같다. 올려다본 겨울 하늘이 을씨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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