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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하민 Jan 17. 2024

이태원 클럽 골목으로 이사하는 자의 변명

야금(1)

이쯤 되면 정면 승부다. 난 클럽 가는 걸 좋아한다. 일렉은 별로고 하우스나 테크노는 나쁘지 않고 힙합이 좋다. 클럽에 가면 춤을 격하게 춘다. 땀이 별로 없는 체질인데도 콧잔등에 가볍게 땀이 벨 정도로, 다음날 발바닥이 뻐근하게 당길 정도로 춘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 보는 여자와 귓속말을 한 적도 몇 차례 있다. 그게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클럽에 자주 가는 것은 아니다. 내 기억에 23년에는 한 번이다. 아버지의 환갑을 3년 늦게 기념하며 부모님과 나, 여동생과 그녀의 남편, 이렇게 다섯이서 떠난 괌 여행이었다. 며칠간 빡빡한 투어 스케줄을 소화하고 난 뒤, 마지막 날 밤과 그다음 날 오전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동행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숙소 근처에 춤출만한 곳을 찾아 나섰다. 걸어서 오갈 수 있는 거리에 두 군데가 있었다. 먼저 갔던 곳은 전형적인 일렉 클럽에 사람도 별로 없었다. 대충 칵테일을 시켜놓고 홀짝이면서 민망하게 서있었다. 아직 어색했고, 그다지 춤추고 싶은 음악도 아니었다. 슬그머니 빠져나와 길 건너편에 있는 펍에 갔다. 거긴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가게는 텐션이 극에 달한 백인 남성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동양인이라고는 서너 명뿐이었다. 맥주를 한 병 시켜 빠르게 비우면서 억지로 텐션을 따라 올리려고 노력했다. 처음엔 잘 되지 않다가 ABBA의 노래가 나오자 진짜로 신이 나서, 결국 근처에 있던 양인들과 어깨동무까지 해가면서 제법 신나게 놀았다. 그중 한 명이 여기보다 더 멋진 곳이 있으니 같이 가자는 제안을 했다. 잠시 고민했다. 결국 거절하고 그냥 숙소로 돌아갔다. 난 돌아온 탕아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조용히 숙소 문을 열었다. 어머니는 아직 여행 짐을 정리하고 계셨다. 새벽 두시였다. 해가 저문지 한참이 되었는데도 아직 열기를 간직한 베란다에서 혼자 맥주를 한 캔을 더 마시며, 문득 서글픈 평화를 느꼈다.

그래서 이태원 클럽 골목으로 이사하는 것은 클럽에 자주 가기 위해서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한다고 해도 믿어주는 사람은 몇 명 없을 것이다. 그게 당연하다. 아마 거기 사는 동안 클럽에 몇 번은 갈 것이고, 어느 날 새벽에는 온갖 음악과 불빛과 사람들이 한데 뒤섞인 혼란스러운 골목길에서 사람들이 택시를 잡느라 고생할 때 나는 5분 만에 총총걸음으로 집에 걸어갈 테니 말이다. 그때 이러려고 근처에 집을 얻은 거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거기에 딱히 해줄 말은 없다. 주저리주저리 내 사정을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영 할 말이 없다는 건 아니다. 나도 여러 가지를 따져본 다음 고심 끝에 결정한 것이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기는 싫어서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변명처럼 들려도 상관없다. 매일 퇴근하고 거실 소파에 앉아 야금야금 연재하듯 쓰려고 한다. 그리고 가능한 한 솔직하게 쓸 거라서, 어쩌면 이 글은 구차한 변명이 아니라 이태원 클럽 생생 체험기 같은 게 될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쓰려고 한다. 곧 부닥칠 새로운 환경에서 무언갈 해보고 싶다. 난 아직 변화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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