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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Oct 21. 2015

런던에서 파리까지

런던, 도버해협, 그리고 파리까지 여정 속 순간


영국 런던에서 메가버스를 타고 프랑스 파리로 떠나는 길. 섬나라 영국에서 어떻게 버스를 타고 바다 건너 프랑스로 넘어가느냐 하면, 바로 위의 영상에서 처럼 배를 이용한다. 버스가 배에 실린 채 도버해협을 건넌다. 버스를 비롯해 여러 차량들을 거뜬히 싣는 걸 보니 배의 규모가 상당해 보인다.

위의 영상은 버스가 배로 들어갈 때 잠깐 촬영한 것인데, 조금 자세히 보면 영상을 찍고 있는 곳이 버스의 맨 앞좌석이라는 걸 눈치챌 수 있을 거다. 그것도 일층 맨 앞 자리.

메가버스에 대해 조금 설명하자면, 이 버스는 이 층 버스이고 앞자리, 그러니깐 내가 앉은 저 자리는 기사 아저씨 바로 옆자리로 원래 승객들이 타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파리까지 가는 내내 저 자리에 앉았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저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 이야기를 위해 시간을 조금 되돌려 파리행 버스를 타기 전으로 잠시 돌아가봐야할 것 같다.


정류장에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랑스 파리행 버스의 탑승이 시작되었고,  줄을 서 있던 사람들도 차례로 짐을 싣고 버스에 탑승했다. 나는 대기 줄의 거의 맨 뒤편에 있던 터라 승객들이 짐을 싣는걸 바라보며 조금씩 줄어드는 대기 줄 가운데 나의 차례를 기다렸다. 생각보다 질서 정연하고 신속하게 줄은 금방 줄어들었고, 드디어 나도 짐짝 같은 내 캐리어를 짐칸에 싣고 버스에 올랐다.

이 층으로 올라가 빈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며 버스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이미 좌석이 거의 다 차있었다. 결국 버스의 맨 끝까지 갔지만 내가 앉을 빈 자리는 없었다. 내 뒤로 같이 따라 들어온 사람들에게 자리가 없다고 알리고 버스에서 잠시 내렸다. 내리고 보니 나처럼 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세 명이 더 있었다. 승객들을 체크하는 직원과 버스기사 및 관련 직원들은 좌석이 없어 탑승하지 못한 우리를 보고 무언가 잘못된 거 같다는 표정을 내비쳤고 한동안 그들 사이에 대화가 오고 갔다.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불어였지만, 그들의 표정과 제스처는 확실히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말하고 있었다. 직원 중 한 명이 다시 예약 목록을 들고 탑승 승객들을 체크했다. 아무래도 예약 과정에서 무언가 혼선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파리행 버스를 대체할 버스가 있다거나 하는 다른 방도는 없어 보였다. 결국 직원들은 우리에게 사과를 하며 원래 승객들이 탑승하는 좌석이 아닌 기사 아저씨 바로 뒷좌석에 우리의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그 마저도 딱 세 명이 착석할 수 있는 자리였는데, 어쩌다 보니 내가 또 타지 못했다. 이러다 파리에 못 가고 정류장에서 노숙하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다행히도 기사 아저씨가 자신의 옆자리에 놓여 있던 가방을 치우고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이렇게 작은 에피소드 끝에 모든 승객들이 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자리에 앉으니 기사 아저씨가 나에게 "I apologize to you."라며 사과를 했다. sorry도 아니고 apologize라니. 사실 엄연히 따지면 기사 아저씨의 잘못은 아닐터인데 그럼에도 메가버스 회사의 직원 중 한 명으로써 정중히 사과하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날 만큼 인상 깊었다. 사실 나는 자리가 없어 짜증이 난다거나 화가 나기 보다 이대로 파리에 가지 못하는 건 아닌지, 여행 일정이 꼬일까봐, 긴 밤을 정류장에서 지새우게 되면 어쩌지 같은 고민뿐이었다.

막상 자리에 앉아 앞을 바라보니 이 층 버스의 커다란 뷰가 눈에 들어왔다. 오히려 더 잘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사 아저씨는 앞에 서랍을 열어보라며 그곳에 핸드폰을 충전하라고 알려주었다. 안 그래도 바닥난 핸드폰 배터리가 걱정이었는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랍을 열고 보니 조그만한 콘센트 구멍이 있었는데, 영국에서 사용하는 3구 콘센트였다. 다행히 가방에 멀티탭이 있어 연결하려 하는데, 서랍크기보다 내 멀티탭이 훨씬 커서 연결할 수가 없었다. 멀티탭을 이리저리 돌려 시도해봤지만, 도저히 불가능했다. 결국 포기하고 멀티탭을 들고 멍- 하니 있었다. 그러자 운전을 하고 있던 기사 아저씨가 내가 낑낑대는걸 봤는지, 자신의 가방에서 무언가를 뒤적이더니 이내 나에게 건네주었다. 멀티탭이었다. 내 것보다 조금 더 작은, 하얀색 Samsung 멀티탭이었다.


메가버스 캐릭터. 파리까지 안전히 운전해 주었던 친절한 기사 아저씨와 매우 닮았다.  


그렇게 기사 아저씨의 친절한 배려 덕분에 핸드폰도 충전하고 비교적 편하게 파리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중간에 한 차례 내려 여권 검사를 받고, 도버해협이라 적힌 프랑스 입국 승인 도장을 쾅 받은 후  또다시 버스를 타고 달렸다.


한참을 졸다가 깨다가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눈을 떴을 때, 표지판의 언어도, 거리의 모습도, 건물도 모두 다른 곳이었다. 드디어 프랑스에 도착한 것이다. 아직 해가 뜨기 전 새벽이라 적막한 어둠 속에 간간이 가로등 불빛만 비추고 있었고, 거리도 휑했다. 영국에 비해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도, 거리도, 건물도 모든 게 다 크고 널찍하였다. 그것이 프랑스의  첫인상이었다. 새벽 무렵의 휑한, 모든 게 너무 큼직해서 쉽게 정감이 가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곳. 그렇게 나는 내 생애 처음 프랑스를 만났다.





2015년 2월 27일 메모장
내가 언제 런던 고속도로를 달려보겠냐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한국에 있을 때 적었던 메모장들을 보니 지금 이 순간이 더 귀하고 즐거워지네.
나 지금 런던에서 파리로 가고 있다!!!!
-파리행 메가버스 안에서



친절한 기사 아저씨의 옆 자리에 앉아 프랑스 파리로 향하는 길. 영상에는 제대로 담기지 않아 아쉽지만, 이층버스의 맨 앞자리는 항상 신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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