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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Oct 28. 2015

Bonjour Paris!

파리와의 첫 만남의 순간



드디어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다. 시간을 보니 6시가 조금 넘어가는, 아직 한산하다 못해 조금 으스스한 이른 아침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기사 아저씨가 짐칸에서 내려 주는 캐리어를 받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다행히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지난밤 버스 안에서 우연히 한국 분을 마주쳤고, 파리에 도착하면 함께 이동하기로 했다.

지하철을 함께 타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럽던지. 여행 전, 유럽의 소매치기, 집시 등과 관련된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다. 특히나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소매치기 소굴이라 할 만큼 극심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여행을 떠나오기 전, 자물쇠며 옷핀이며 단디 챙겨 만반의 준비를 했더랬다. 게다가 프랑스까지 야간 버스를 이용하는 터라 쉽사리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특히 지하철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소지품들이 없어지니 조심하라는 말은 나를 긴장감과 두려움이 뒤섞인 상태에 놓이게 만들었다. 이런 나에게 지하철을 함께 타는 동행을 만난 건 마치 한 줄기의 빛 혹은 동아줄이랄까. 감사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프랑스 교통 티켓.  나는 10장 묶음인 까르네를 구입했다. 한국 지하철의 교통카드 시스템이 보편화되기 전, 일회용 종이 티켓을 썼던 게 기억났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지하철 내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오랜만에 한국말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반갑던지. 나보다 몇 정거장 앞서 내려야 하는 동행분과 다시 만나기로 하고 메신저 아이디를 교환했다. 동행 분이 먼저 내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내려야 할 St. Paul역에 도착했다. 'Sortie'라는 단어를 쭉 따라 가니 출구가 나왔다.

미리 예약해 놓은 호스텔은 지하철 역에서 3분밖에 걸리지 않는, 그야말로 넘어지면 코 닿을 듯한 거리였다. 이 거리마저 gps를 켠 채로 헤맸지만. 이른 아침부터 이리저리 헤맨 거 치고는 비교적 금방 잘 도착했다.


호스텔 입구. 커다란 파란색 대문이 눈에 띤다.


'삐-'. 문 옆의 초인종을 누르니 잠시 후 덜컹 소리가 났다.  온몸을 이용해 조금 버겁다고 느낄만큼 커다란 문을 열고 들어가니 널따란 정원이 보였다. 정문 바로 옆 리셉션에는 이제 막 교대를 하는 직원 두 명이 있었다.


"Bonjour!"


리셉션에 들어가 예약 확인과 함께 체크인 수속을 밟고 방을 배정받았다. 밤새 이동한 탓에 얼른 방으로 들어가 따뜻한 물로 씻고 잠시 눈을 붙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 호스텔의 체크인 시간은 오후 3시부터였다. 고로 방은 배정받았지만, 아직 방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아침부터 일찌감치 도착한 탓에 오후 3시까지는 멀고도 먼 상태였다. 하는 수 없이 잠시 캐리어를 러기지룸에 맡긴 후, 호스텔 근처를 둘러보기로 했다.  


호스텔 정원. 이 호스텔의 첫인상은 매우 프랑스스러웠달까.
창문 밖으로 보이는 정원이 썩 마음에 들었다.
캐리어를 들고 이렇게 생긴 계단을 수십개나 오르내려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까마득해졌다.


이 호스텔은  오래 전, 한 귀족 가문의 자택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마주한 이 곳은 영화에서만 보던, 중세시대 느낌이 물씬 풍기는 건물이었다. 사진에서만 보던 호스텔의 정원도 마음에 쏙 들었고, 건물 자체가 정말 예뻤다. 내가 이런 곳에서 잠을 잘 수 있다니! 이때까지만 해도 이 호스텔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비록 무거운 캐리어와 짐을 들고 낑낑대며 3층까지 계단을 오르고 미로 같은 통로를 지나 방까지 겨우 도달해야 했어도 말이다. 이 호스텔을 예약한 나의 선견지명에 스스로 대견해하며,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호스텔을 나섰다.


마레지구 근처에 위치한 숙소 덕분에 조금만 걸으면 유명한 관광지에 쉽게 갈 수 있었지만 아직은 큼직큼직한 파리가 낯설게 느껴졌다. 마트에 가서 요기 거리나 살까 싶어 숙소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문을 연 곳이 없었다. 그렇게 마트를 찾아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영국에서 자주 가던 카페 Costa가 보였다. 몸도 녹이고 지친 다리에게도 쉼을 줄 겸 주저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상하다. 분명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빵인데, 파리에서 먹는 빵은 더 맛있다. 괜한 기분 탓일까, 아니면 정말 프랑스 빵이 더 맛있는걸까.


한참을 카페에서 쉬며 다이어리를 정리하고, 주변 지도를 찾아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한국말이 들렸다. 조금 전 들어온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이었다. 이렇게 우연히 듣는 한국어가 타지에서는 정말 반가울 수 있다는걸 처음 알게 되었다.


카페에서의 긴 휴식 끝에 다시 가방을 단단히 여미고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또다시 특별한 목적지 없이 발길이 닿는 대로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다. 런던에서도 그랬고, 파리에서도 한국에서 일주일 동안 걸을 걸음을 매일 하루에 다 걷는 것 같다.


노트르담 대 성당


한참을 걷다 보니 한 눈에 봐도 정교해 보이는 건축물이 눈에 띄었다. 몇몇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입구 근처에 가보니 '노트르담'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 이 건물이 노트르담 성당이구나! 어릴 적 디즈니 애니메이션 '노틀담의 곱추' 덕분에 익숙한 단어 '노트르담'. 실제로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되기도 한 이 성당에 꼭 한 번 와보고 싶었다. 정처 없는 발걸음 끝에 우연히 마주한 성당은 무척이나 정교하고 견고해 보였다.



유럽에는 크고 유명한 여러 성당들이 있다. 노트르담 성당은 유럽에 있는 동안 처음 방문한 성당이다. 그리고 여행을 하는 동안 봤던 수많은 성당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성당이기도 하다.


노트르담 성당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 보자면, 19세기 초만 해도 지금과는 사뭇 다른 평가를 받은 건축물이었다고 한다. 당시는 도시계획가들이 노트르담 성당의 철거까지 고려할 만큼 황폐한 모습이었다. 프랑스의 소설가인 빅토르 위고는 이 대성당의 찬미자로, 대성당의 전통을 일깨우기 위해 '파리의 노트르담(노틀담의 곱추)'를 썼는데, 이 소설은 대성당의 운명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노트르담 대성당을 보호하기 위한 기금을 모으는 운동이 이어졌고, 결국 1845년에 복원이 되었다고 한다.



노트르담의 내부에 들어선 느낌은 마치 웅장함과 경건함에 사로잡힌 기분이랄까. 왠지 모를 감동이 밀려왔다. 이상하게도 눈물이 찔끔 맺혔다. 알 수 없는 감동이었다. 알 수 없는 눈물이었다. 나도 무어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그런 감동, 그런 눈물이었다.



이렇게 파리를 만났다.

이렇게 파리에서의 첫 날이 흘러갔다.

Bonjur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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