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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망친 곳의 낙원 Jan 03. 2024

15. 영국석사 논문주제 정하기

어떻게 하면 가장 쉽게 석사를 딸 수 있을까? 

1학기가 지나면 슬슬 학교에서 논문과 관련된 메일들이 날아오기 시작한다. 학교마다 그리고 전공마다 조금 다르지만 LSE Media and Communications 학부 같은 경우에는 2학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논문주제, 그리고 본인이 원하는 지도교수(Supervisor) 우선순위를 정하라는 메일이 날아온다. 학생 입장에서야 '이제 겨우 1학기가 지났는데 벌써?'라고 생각될 수 있겠지만 1년 안에 석사과정을 모두 이수해야하는 영국 대학원 스케줄을 생각하면 사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독촉이다. 


오늘은 남들보다 몇 배는 고생하며 논문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Merit로 졸업한 나의 시행착오들을 반추하며, 무엇이 날 그토록 힘들게 만들었으며, 어떤 주제를 정해야 논문을 좀 더 수월하게 쓸 수 있었을까에 대한 경험적 감상들을 써보도록 하겠다. (이 글은 터미널 석사를 준비하고 계신 직장인 출신 석사생들에게 가장 적합한 콘텐츠입니다 ㅋㅋㅋ 사실관계에 대한 지적 언제든지 환영!) 



1. 입학 전 미리 논문 주제 정해놓기 

따지고보면 애초부터 연구하고 싶은 주제가 있기 때문에 석사과정을 신청하는 것이 올바른 프로세스일 것이다. 하지만 유학을 일종의 멋과 낭만 정도로 생각했던 나란 놈에게는 이 같은 "당연한 연구 주제"라는 것이 없었다. 이후에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다보면 흥미로운 주제가 생기겠지' 따위의 지나치게 나태한 마인드 + 쏟아지는 에세이와 세미나로 인해 논문주제를 정확히 정하지 못한 채 3학기를 맞이해버린 것이다. 


아직 눈문까지 시간이 많이 남은 것만 같다. 하지만? 

때문에 영국 석사의 경우 무조건 논문주제를 미리 정해서 오길 강력히 권한다. 물론 완벽한 타이틀과 완벽한 방법론까지 설계해올 필요는 없지만(물론 할 수 있으면 당연히 좋음), 적어도 어떤 토픽을 다루고 싶다는 정도는 확실히 정하고 오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나처럼 매우 광범위한 선행연구 논문들을 뒤지느라고 시간만 허비하고 스트레스만 쌓여 술값까지 추가로 지출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 


2. 거창한 것을 쓰려고 하지 말기 

내가 논문 주제를 쉽게 정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다. 뭘 쓰고 싶은지도 정확히 모르는 주제에 학사에서 석사로 바로 올라온 애송이들(인줄 알았지만 알고보면 가장 총명한 고인물)보다는 훨씬 실용적이면서도 파격적인 논문 주제를 정해서 교수님들로부터 "역시 자네야!" 소리를 듣고 싶었던 그 그릇된 욕망.......그것이 나의 시간을 얼마나 많이 잡아먹었던가. 

내가 상상한 내 논문 주제를 들은 교수님의 표정. 현실은? 

결과적으로 새로운 (석사)논문을 쓴다는 건 새로운 예능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이 아니었다. 전에 없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찬사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의 연구들을 잘 정리하고 거기에 내 생각을 한 스푼 조심스레 더하는 것이 가장 찬사받는 논문인 것이다. 그러니 오히려 거창하고 새로운 것보다는 가장 많이 다뤄진 주제를 활용하는 것이 학계에서 가장 크게 인정받으면서도 동시에 논문을 편하게 쓸 수 있는 길이 아닌가 싶다. (인용할 기존 연구들이 많으니까). 


3. 업무 경력 활용하기 

이미 누군가 다룬 주제를 연구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 논문을 그것과 구별시켜주는 단 한 가지 포인트는 나만의 유니크한 업무 경험을 활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직장 내의 남녀불평등에 대한 주제(a.k.a 페미니즘)의 논문들은 넘쳐나지만 그 대상이 내가 속했던 특정한 집단이 된다면, 그리고 그 집단이 가진 특수한 문화에 대해 내가 잘 알고 있다면 바로 그것이 내 논문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실제로 교수님이 나한테 해준 말). 


예컨대 나같은 경우 한국의 예능프로그램이 외국인을 어떻게 묘사하느냐에 대한 것을 석사 논문 주제로 다뤘는데, 비슷한 주제의 논문들이 이미 한국에도 몇 편 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연구 대상을 내가 연출했던 <신비한TV 서프라이즈>로 잡았던 것이 결과적으로 내 논문을 특별하게 해준 포인트가 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잘썼다는 건 아님). 


하지만 이런 쉬운 길은 놔두고 한때 나란 놈은 나의 경험과 전혀 관계가 없는 "한국의 성인웹툰의 생산구조"에 대한 연구를 해보겠다고 선언하며 지도교수를 아연실색하게 만들고 시간은 시간대로 잡아먹었더랬다. 그 주제를 가지고 실제 논문을 썼다면 어땠을 지 생각만 해도 아찔. 

성인 웹툰 연구주제를 들은 지도교수의 표정.jhd

4. 지도교수 빨리 정하기 

만약 대략적인 논문 주제나 연구 방향을 이미 정해둔 상황이라면 지도교수를 최대한 빨리 정하는 것이 좋다. 물론 지도교수는 학교가 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학교가 정한 날짜에 그 배정이 발표되겠지만, 그딴것과 관계없이 내 혼자 내 맘속 지도교수 1Pick을 찜해두면 미리 그 교수님과 (비공식적으로) 논문 주제에 대해 면담을 할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이 생긴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논문 자체가 처음인 나 같은 뉴비들은 무엇이 좋은 논문 주제인지에 대한 판단조차 제대로 안 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주변에서 지켜본 대부분의 경우 논문 주제가 석사과정에서 다루기에는 지나치게 광범위해서 문제가 되었는데, 이 경우 지도교수만큼 그것을 전문적으로 좁혀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실제 나도 논문 지도 과정에서 Narrow down이라는 표현을 정말 귀에 박힐 정도로 들었음). 


영국 석사의 경우 지도교수와의 면담시간이 제한적인데다가 정작 교수님이 만나준다고 해도 내가 준비가 안 되어 있어서 면담시간 내내 어버버 하다가 나오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미리 내 논문 주제와 가장 비슷한 연구를 하고 계시는 교수님을 내 마음속 1Pick으로 찜콩해서 1학기부터 자주 면담을 요청해 이것저것 물어보고 조언을 받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내 경험으로 미뤄봤을 때 교수님들이 그런 학생들을 귀찮아한다기보다는 매우 예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내가 그런 학생이었다는 것은 절대로 아님). 


5. 명확한 데드라인 설정 

방송국엔 "모든 걸작은 '마감'이 만든다"는 격언이 있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선 고민의 총량을 늘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해진 시간 안에서 가장 최선의 것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특히 논문처럼 모든 일정을 학생의 자율에 맡기는 장기프로젝트일수록 자신이 정한 마감시간을 얼마나 잘 지켜내느냐가 논문의 퀄리티와 결정한다. 


특히 논문 주제의 경우 가장 엄격하게 데드라인을 설정해야만 하는 게, 그것이 모든 논문 일정의 가장 첫 단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시간을 허비하면 정작 중요한 뒤의 일정들에 큰 차질이 생긴다. 비록 1만2천 단어 정도의 짧은 석사논문이라 할지라도 생각보다 해야할 거리들이 많다. 논문 주제는 최대한 빠르게 결정하고 추후에 그 주제가 가진 결함들을 수정해나가는 편이 훨씬 더 유리하다. (내가 그러지 못해서 고생을 많이 했다). 



나가며 

안다. 말이 쉽지 논문 주제를 정하는 게 얼마나 스트레스 쌓이는 일인지를. 아무리 힘을 빼라고 조언해도 당신은 누구보다 멋진 논문을 써내고 싶은 욕심을 버리기 힘들 것이라는 것도. 


하지만 우수한 논문으로 선정된 것들을 읽어본 바로는 논문 주제(또는 논문의 제목)를 신박하게 결정하는 것에 시간을 투자하기 보다는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논문 주제라도 그것을 치밀하게 파는데 시간을 투자한 학생이 결과적으로 훨씬 더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정설로 보인다. 


그러니까 개인적으로 가급적 빨리 논문 주제를 정하시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시길 다시금 권한다. 물론 그게 쉽겠냐만...ㅎㅎ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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