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마치면 상像이 맺힌다. 그 이미지를 글로 적어 분명하게 나타내면 비로소 책 한 권 읽기가 끝난다. 그리고 나는 항상 미완성된 독서를 해왔다. 다독가는 아니어도 손에서 놓지는 말자는 생각으로 책을 읽어왔고 덕분에 일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간간히 얻어왔지만, 아주 가끔 떠오르는 영감과 더욱 드물게 얻어내는 갖가지 문제들에 대한 해결 방법들의 출처를 모른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왜 이런 생각을 갑자기 하게 되었을까.‘를 알아내는 과정은 중요하다. 왜냐면 나는 맥락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과 행동이 어떤 위치에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있다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도, 답습하지 말아야 할 전례도, 나름의 근거를 들어가며 고를 수 있다. 서평은 그래서 내가 하는 사유의 이력을 남기기 위한 최소한의 근면함이다. 꾸준히 독서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읽어낸 책들에게 미련을 두고 질척거리려고 한다.
"인구가 줄어들면 국가의 성장 동력이 떨어진다."는 걱정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문장의 의미가"번식하려 하지 않는 인간들이 모여있는 집단은 혁신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대교체보다 생존에 몰두하면 인구 구조가 역삼각형이 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진작에 생겨났고 그 나라의 대표 지식인들이 책을 엮었다. [인구 감소 사회가 위험하다는 착각]은 우치다 다쓰루라는 일본 작가와 그가 모은 여러 인구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 쓴 책이다. 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 문제를 고민했다. 신기한 에세이 책 제목들에 끌려 관심을 갖게 된 우치다 다쓰루라는 작가가 다루는 주제는 넓다.그중 이 책은 인구 감소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서문으로 풀어내고, 그렇게 둘러놓은 논의의 범위 안에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여러 작가들의 글로 채워 넣었다.그래서 생각의 밀도가 높다.
인구 감소 사회를 맞이하는 우리의 기조는 아직 미정이다. 저출산 대응책이 만연하지만 모두에게 미치지 못한다. 아이들 목소리가 왁자지껄한 동네가 있는 반면, 텅텅 비어있는 주택들로 스산해진 지역에서는 어린 사람들의 목소리는 금시초문이다. 치솟은 아파트 매매가를 올려다보며 그들만의 폭탄 돌리기라며 마음을 다스리지만, 그 러시안룰렛에참여하기 위한 마지막 티켓인 50년 주담대 정책은 두 팔 벌려 환영한다. 한국인은 저마다의 인구 시계로 미래를 계획하고 배팅한다. 비관론과 낙관론 중 무엇이 맞고 틀린지에 서로를 긁기만 할 뿐, 우리는 함께 가기 위해 필요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 각자도생이다.
옆나라의 지식인들이같은 주제를 같은 방향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담긴 이 책은 그래서 손이 갔다. 적어도 그들은 "인구 감소는 피할 길이 없다."라는 같은 전제를 공유한다. 그래서 제시하는 견해와 해법은다양하지만 추세를 역행하지 않는다. "인구 감소는 위험하다."는 착각을 진작에 해봤기에 나오는 바이브다. 내수 소비자 1억 명을 지키기 위한 일본 정부의 노력은 이력이 길다. 그리고 그 역사의 초입은 놀랍게도 한국의 지금과 닮았다. 일본에서도 인구 감소는 극복 대상이었고, 각종 부양책이 등장했다. 결과는 지금의 일본이다. 고요하고 가라앉은 섬나라의 내수는 이제 값싼 엔화에 환호하며 찾아오는 외국인들에게 활짝 열려있다. 아마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겠지.
"그러니까 한국도 같을 거야."라던가 "그래도 한국은 달라."라는 목소리들 중 하나를 고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같은 고민을 미리 해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건 의미 있다. [인구 감소 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에는 '어떻게든 다시 인구를 늘려야 한다.'는 고집이 없다. 그래서 읽고 나서도 속이 더부룩하지 않다. 대세에 순응하려는 그들의 마음가짐은 적어도 현실을 뒤틀지 않는다. 일본의 부동산은 오래된 만큼 저렴해지고, 중소도시는 각자의 매력을 찾아 다양해지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결혼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관광객들은 도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현실을 직시했기 때문에 얻은 자연스러움 아닐까. 아직도, 여전히, 두 눈 질끈 감고 '서울의 아파트'에 몰두하는 우리의 착각도 이제는 끝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