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인해 초급자를 위한 코딩 학원 시장이 박살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생성형 AI의 획기적인 프로그래밍 능력으로 인해 초급 프로그래머를 키우던 학원들이 이제는 용접을 가르치고 있다는 우스갯소리 같은 뉴스도 나오고 있다.
https://v.daum.net/v/1LREI4nb4J
바이브 코딩이 조금만 더 발전하면, 이제는 누구나 프로그래머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 올 가능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진 것이다. (물론 그때가 되더라도 누구나 프로그램을 '잘'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https://namu.wiki/w/%EB%B0%94%EC%9D%B4%EB%B8%8C%20%EC%BD%94%EB%94%A9
이는 10년 전 딥러닝과 AI가 뜨기 시작할 때 예측했던 상황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라 할 수 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AI가 잠식할 것으로 예상했던 직업들은 단순하고, 반복적이며, 문과생들이 수행하는 업무가 될 것으로 예상을 했다.
콜센터 상담원이나 회계, 재무, 법률 관련 직군, 단순 사무직들이 바로 그것들이었다.
그리고 AI 시대에 가장 마지막가지 살아남을 직업으로 꼽히던 것들은 예술이나 창작 관련 직업들, 이공계 영역의 직업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듯 가장 빠르게 AI가 침투하고 있는 시장은 창작 관련 업무와 프로그래밍 관련 업무들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왜 이렇게 전문가들의 전망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소위 전문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AI에 대한 고민은 열심히 했을지 몰라도, 오히려 사람들이 수행하는 업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람들의 지식의 총합이라 할 수 있는 생성형 AI의 답변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생성형 AI에게 AI가 대체하기 쉬운 직업의 특징에 대해 물어보면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한다.
1.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
- 규칙이 고정되어 있고, 입력-출력 구조가 명확함
- 데이터 입력, 회계 전표 처리, 은행 창구 업무
2. 대량의 데이터 속에서 패턴을 추출하는 업무
- 인간보다 빠르게 통계적 추론 가능
- 신용평가, 보험 리스크 평가, 이상탐지(보안)
3. 텍스트·음성·이미지를 정해진 규칙대로 처리
- 언어·영상 인식 기술 기반
- 고객 응대, 콜센터 상담, OCR, 법률 문서 분석
4. 예측 기반 판단 업무
- 과거 데이터로부터 예측 가능성 높은 업무
- 수요예측, 주가 예측, 날씨 예보 보조
5. 창의성은 낮지만 일정 수준의 생성이 필요한 업무
- 반복적인 콘텐츠 생성, 번역, 요약
- 기사 작성 초안, 이메일 자동 작성, 광고 문구 생성
6. 물리적 동작이 정해진 경로/형태인 업무
- 로봇 자동화(RPA, RPA+)로 대체 가능
- 공장 조립, 창고 분류, 배달 로봇
7. 감정적 공감이나 인간성과 무관한 대면 서비스
- 기계 대응이 오히려 안정적일 수 있음
- 무인 키오스크, 호텔 셀프체크인, 무인편의점
AI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위의 설명은 그럴듯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위의 설명으로는 가장 빠르게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사람들이 왜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터들인가? 라는 사실은 설명할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내가 판단한 AI로 인해 대체 가능한 직업/업무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Trial and Error 방식 (하나의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차례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 이용이 가능한가?
현재 AI가 대체하고 있는 영역은 AI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을 한번 시도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보는 방식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영역이다.
'한번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시 해보면 된다.'는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AI를 이용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진다.
2. 인간의 선택(의도) 개입이 반드시 필요한 영역인가?
예를 들면, 이런 상황이다. A라는 방법을 선택하면 100만원 정도의 금전적 이득을 얻는 대신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 부끄러운 입장이 될 수도 있고, B라는 방법을 선택할 경우 100만원의 이득을 얻지 못하는 대신 사람들 사이에서 칭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A와 B 모두 잘못되거나 불법적인 행동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때 A를 선택해야 될까? B를 선택해야 될까? 당연히 사람마다 가치와 기준에 따라 선택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인간의 선택(의도) 개입이 적극적으로 필요하다.
만약 선택지가 100만원이냐 아니냐 같은 단순한 이분법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80만원이 될 수도 있고, 50만원이 될 수도 있고, 30만원이 될 수도 있다면 AI를 통한 자동화는 더욱 어려워진다.
3. AI가 내놓는 결과물을 사람들이 즉시 이해/판단 할 수 있는가?
예술적 창작물은 보는 즉시 좋다 나쁘다가 직관적으로 판단 가능하다. 프로그램 소스 코드도 실행을 시켜보면 문제점을 바로 알 수 있다.
하지만, 복잡한 법률 문서를 만들어낼 경우 전문가도 그것을 한번만 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 경우 전문가가 아닌 사람은 AI를 제대로 쓸 수 없다.
위와 같은 조건으로 바라보면 AI가 대체 가능한 직업/업무는 지금까지의 예측과는 크게 다르게 된다.
우선, 법과 회계 관련된 영역들은 AI에 의해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전문가들을 대체할 수가 없다. 법이라는 것이 일견 논리적이고, 촘촘해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논리적이고 촘촘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판결 하나만으로도 전문가 A와 B, C, D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일이 종종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A, B, C, D는 미세하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회계처리를 하거나 세무신고를 하는 일은 어떨까? 이것도 역시 마찬가지로 큰 규칙은 정해져 있지만, 세부적인 사항은 명명백백하지 않다. 사람이 원할 경우 특정 의도를 가진 결과를 유도해낼 수도 있다. 분식회계나 불법 탈세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분식회계나 불법 탈세는 아니기도 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유이다.
반대로, 의료 행위는 기본적으로 규칙 기반의 확률적 추론을 하는 업무이다. 의사들은 자신이 검사한 결과에 따라 어떤 질병이며 어떤 조치를 해야 될지 확률적으로 추론을 하고, 그것을 시행해본 후 피드백을 받아 치료를 수정하거나 같은 치료 방법을 계속한다.
나는 10년 전 발에서 피부가 벗겨지고 피가 나는 현상 때문에 병원을 방문한적 있다. 그때 대부분의 피부과 의사들은 이 증상이 무좀의 증상이라며 무좀 치료약을 처방했었다. 하지만 효과는 없었고, 나는 몇번의 병원을 옮겨본 끝에 내가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인 아토피 피부염이 발생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다양한 검사를 통해 어려운 진단을 내리고, 복잡한 수술을 수행해야 되는 대형 병원은 AI가 쉽게 대체할 수 없다. 하지만, 쉽고 단순한 병만을 다루는 동네 병원 의사들은 AI를 통해 쉽게 대체할 수 있다. (+ 약사) 물론 검사 도구들이나 물리치료 도구들은 AI로 대체할 수 없으므로 당장 동네병원들이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병원을 동네 사랑방처럼 이용하고자 하는 수요도 있다) 하지만 AI를 통한 진단 + 간호사 또는 전문 치료사를 통한 치료의 형태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해 보이진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부추기는 것은 의사들의 집단 이기주의가 될 것이다. 무언가를 막고자 하는 집단 행동이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의 필요성을 더 느끼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달이 차면 기울 수 밖에 없다.)
물론 AI가 모두 다 대체할 수는 없다.
인문계건 이공계건 모든 영역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1. 최고 수준의 전문가는 대체하기 어렵다. 최고 수준의 진단 능력이나 수술 기술을 가진 의사보다 더 수술을 잘하는 로봇을 만드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일 것이다.
2. AI의 결과물을 판단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AI가 직접 소설을 써준다고 해도 그것이 좋은 소설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전문가는 살아남을 수 있다.
3. 모든 개인들의 1인 기업화가 가속화된다. 지금은 조직 형태의 진화와 경쟁이 발생하고 있는 과정이다. 대규모 공채 모델은 점차 사라지고 넷플릭스/토스 모델이 그 자리를 대체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개인들은 조직에 대한 소속이 무언가를 증명하는 시대에서 개인 스스로가 브랜드가 되고 1인 기업이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그리고 AI는 개인들을 1인 기업이 되도록 만들어줄 수 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올바른 질문을 해야 올바른 답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올바른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AI에 대한 집중보다 우리 자신에 대한 집중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