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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도 못하는 바보

잠시 멈춰서 기다리기

나는 누군가의 ‘의견’을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첫 직장에서 점심으로 순댓국에 소주 한잔을 제안했던 상사가 기억난다. 불편했는데, 싫었는데 거절하지 못했다.


거절은 상대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배려로 내가 얻은 것은 가슴에 묵직하게 쌓이는 불편함 뿐이었다. 어느 날 나는 불필요한 배려로 점심시간에 반주해도 괜찮은 직원이 되어 있었다.


어려서부터 ‘누군가를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번, 두 번, 그렇게 여러 번 거절하지 못했다. 누군가 정말 필요해서 요청한 부탁도 아닌데, 그 작고 가벼운 제안들을 무리해서 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거절하는 법을 배우지도, 경험하지도 못한 채 살게 됐다.



나의 감정은, 어느새 나의 온몸을 통해 반응을 보이니, 이제는 온몸이 경직되기 시작하면서 내가 불안하다는 사실을 알아채요. 이 감정들이 켜켜이 쌓이고 학습되면 결국에는 몸 안팎으로 우울증, 불안 장애, 만성 통증 등의 스트레스성 질환이 생길 테죠.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불안한 감정에 의해 활성화된 편도체를 그때그때 안정시켜야 해요. 몸의 감각으로 그 감정을 다스릴 수 있어요.


곽지아 에디터, <아요가 5호>



내 시간이 없음에도 누군가의 제안을 들어주는 날들이 많아졌다. 가슴이 자주 답답했고, 머리가 지끈거리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너무 속상한 날에는 눈물을 그렁그렁 흘리며 일기에 감정을 토해내기도 했다.


마음이 힘들어서 심리 상담 선생님을 찾았다.

“선생님 상대방이 제게 계속 부탁을 하는데 거절하지 못하겠어요. 전 제 시간도 없어지고, 말하고 싶은데 말도 못 하겠어요. “


“거절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저를 싫어하게 될 것 같아요. 그리고 거절하려고 생각만 해도 심장이 빠르게 뛰고요. 숨도 잘 못 쉬겠어요. 그나마 카톡을 보내면 괜찮은데요. 전화나 얼굴을 보고 말한다고 상상하면 기절할 것 같은 기분이에요. “


“그럴 수 있죠. 꼭 거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하나요? “


“거절해 본 적이 없어요.”


“주변에서 거절하는 걸 본 적은 있나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기억나는 걸 떠올리면 너무 매몰차게 NO!라고 말했던 사람은 있어요. 근데 저는 그런 성격이 못 돼서요…. “


“우리 연습해 봅시다! 제가 제안을 할 거고요. 라희 씨가 거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선생님.. 저 못해요.”


“자 심호흡을 한 번 하고요. 연습이니까 틀려도 되고, 제게 거절해도 라희씨를 미워하지 않을 거예요. 너무 힘들면 글로 써서 그걸 읽어도 좋아요. 다시 해볼게요.

자 제가 직장 동료라고 생각하고요.

제가 외근으로 늦을 것 같은데 저 대신 퇴근하고 이 업무 1시간만 더 맡아서 도와줄 수 있어요? “


“먼저 글로 적어 볼게요..

죄송해요. 저도 퇴근해서 볼 일이 있어서 도와 드리기 어려워요. “


“잘했어요!!! 이제 동료가 다시 부탁을 하면 이렇게 해보는 거예요. “


- 몇 주 후


“선생님 저 거절했어요!!!”


“동료의 반응이 어땠나요?”


“제가 일 있는지 몰랐다면서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화내거나 이상하게 생각할 줄 알았는데 다행이었어요.”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셨고, 난 너무 기뻤다. 속이 뻥 뚫린 듯 시원했고 그 후로도 여러 번 손을 덜덜 떨며 내 의견 말하기를 연습했다.


시간이 흘러 처음 거절 했던 날 내게 어떤 일이 생긴 걸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 상황에서 생각에 빠져 불안한 마음을 갖기보다는 반 걸음 물러서서 상황을 정리했다. 그리고 메모에 글을 써서 내 의견을 전달했다. 떨리는 마음 사이사이 심호흡도 했다.


거절 후에 불편하고 미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나를 위해 잘 거절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편안했고 심장도 제 걸음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숨이 잘 쉬어졌다.



명상은 나의 정신을 몽롱하게 흐뜨러트리는 행위가 아니에요. 하나에 온전히 집중하면서, 호흡을 통해 내 몸의 변화를 알아채고, 그 흐름에서 보다 명료한 의식을 찾아내는 훈련입니다. 더불어 명상에는 마음보다 몸의 움직임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사실도 알아챘어요.


곽지아 에디터, <아요가 5호>



요가와 명상을 하며 지낸 일상에서 과거의 이 날이 떠올랐다. 최근에도 거절할 일이 꽤 많았는데, 편안하게 거절했다. 그때에 비해서 마음의 근육이 참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마주하는 일상에서 나는 종종 두 눈을 감고, 반 걸음 멀리 떨어져서 기다린다. 상황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보다 잠시 멈춰 선다.


명상을 통해 요가를 통해 지난 경험과 행동을 통해서, 그렇게 나의 몸과 마음은 조금씩 더 명료해진다.


저의 언어로 담지 못하던 것을, 글로 나누어주신 곽지아 에디터님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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