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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Sep 22. 2023

1. 처음, 그 시작에 대하여

자유로운 영혼, '직장인'이 되다?

'직장인'이나 '회사원'과 같은 수식어는
내 인생에는 없을 줄 알았다.

'직장인'이나 '회사원'과 같은 수식어는 내 인생에는 없을 줄 알았다. 어릴 때부터 자유롭게 살고 싶었고, 얽매이고 싶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나는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었으니까. 그러나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그저 꿈이 아닌 현실로 만드는 것은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왜냐하면 '현실'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삶의 영위' 함께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나의 '이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나는 어릴 때부터 꿈이 확실했다. 무대에 서는 공연자가 되고 싶었다. 무대 위에서 가장 살아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찍이 공연단에 들어가 활동을 했고 대학도 관련된 과로 진학했다. 나는 이 꿈이 영원할 줄 알았다. 그것이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연판에 몸을 담았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스스로 알아차린 것은 나는 단순히 공연자의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 말고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일'이나 '직업'말고 그 이상의 '무엇'. '진정으로 나답게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삶' 말이다. 그래서 그것을 찾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기로 했다. 물론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것에 대해 당연히 두려울 수 밖에 없었다. 그때 내 나이는 25살이었고, 대부분 취업을 준비하거나 혹은 이미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더 많았으니까. 그러나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나 두려움보다는 내 앞에 새롭게 펼쳐질 삶에 대한 기대가 더 컸다. 그래서 고민 끝에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것을 뒤로한 채 과감히 새 길에 발을 들여보기로 했다.


내가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것은 다양한 경험과 배움을 쌓는 일이었다. 그래서 미친 듯이 돈을 벌어 세계 여행을 다니고,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그때의 희열을 이루 말할 수 없다. 매일 매일이 새로웠고, 매일 매일이 성장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러나 그 속에서도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언인가에 대한 답은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다행이었던 것은 그 와중에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하면서 살기'에 대한 꿈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래의 삶과 일로 다시 돌아갈까?'라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딘가에 소속되거나 혹은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일'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때 부터 '진짜 나의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하고 고민했다. 그 답은 '사업'이었다.


"그래! 나는 '사업'을 해야겠어! 근데 사업이 뭐지?"

[사업(事業), 영어로 business : 어떤 일을 일정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짜임새 있게 지속적으로 경영함. 또는 그 일.]


잠깐, 생각해 보자. 나에게 목적과 계획이 있었나? 그리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가? 그에 대한 답은 'No'였다. 목적과 계획은 물론이고 '나의 일(사업)'으로 만들 수 있는 '나만의 것(콘텐츠)' 또한 없었다. 그러니 지속적으로 경영 또한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그저 '이상'만 있었을 뿐.


우선 '나만의 것'을 찾아야 했다. 그 생각에 미치자 그동안의 경험들을 토대 삼아 여러 크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열었고, 강의를 만들어서 진행했다. 과연 어떤 것이 사업 가능성이 있는가를 직접 테스트 해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포트폴리오들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하니 그렇게 원하던 '나만의 콘텐츠'가 조금은 생긴 기분도 들었다. 나름의 메시지와 목적도 생겼다. '이렇게 해보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라는 작은 계획들도 머리에 그려졌다. 그러나 그것이 '사업'은 아니었다. 물론 큰 범주 안에서 프리랜서로서 '수익'을 냈다는 점에서는 '사업'일 수 있지만, '그것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에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왜냐하면 1인 프리랜서의 형태로 반복적 경제 활동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며 지속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짜 '사업'을 해보기로 했다. 즉,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시스템)를 만드는 것이다. 처음 생각한 것은 지속 가능한 참여형 테마 토크콘서트를 만드는 거였다. 감사하게도 일찍이 공연단 활동을 통해 사회생활을 시작한 터라 콘서트를 기획하고 만드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이왕이면 내가 잘할 수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해보자는 마음이었다. 공연을 만드는 일이야 늘 해오던 일이었으니까. 고민은 시작만 늦출 뿐, 일단 해보기로 했다. 해봐야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몇 달의 준비 끝에 꽤나 괜찮은 퀄리티로 토크 콘서트 2회나 진행했고, 콘서트는 생각보다 성공적이었다. 여기서 '성공적'이란, 관객들의 반응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업적으로 봤을 때 성공적이었는가?'라고 묻는다면 이번에도 역시나 'No'였다. '사업화' 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오히려 대 실패였다. 큰 비용을 투자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적자였으니까. 오히려 사업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꼬여갔다. 계속해서 아주 큰 벽에 가로막힌 기분이었다.


그때 생각했다. '나는 비즈니스를 정말 모르는구나.' 그렇다면 알기 위해 배우는 수밖에 없다. 단, 지식적으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보고 들으며 몸으로 경험해 보고싶었다. 처음으로 아주 잠시, '회사에 들어가 볼까?'하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이미 비즈니스가 돌아가고 있는 곳이자,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는 곳. 바로 회사. 회사에 그 안에서 어떻게 사업이 운영되는지를 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 말이다. 그러나 그저 스쳐지나가는 생각이었을 뿐 아무리 생각해도 '직장인'으로서의 삶은 상상이 되질 않았다. 나와는 맞지 않은 옷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 당시 나는 한국보다는 해외에서 '무언가'를 해볼 계획을 세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러나 인생은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러고보면 인생은 참으로 신기하다. 언제나 알맞은 타이밍에 기대하지도 않았던 기회들을 던져준다. 물론 내가 감히 예상할 수도 없는 것들을.


2019년, 정말 우연인듯 우연이 아닌 일이 벌어졌다. 코로나가 터졌고 나는 타의에 의해 한국에 발이 묵였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자체로 자유를 박탈 당했다 느껴졌다. 무엇보다 내가 세워둔 모든 인생의 계획(워홀, 해외 살이 등등)이 싸그리 물거품이 되었다는 절망감이 너무나도 강하게 삶을 덮쳤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어느날 전화가 울렸고, 그 전화는 인생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평소에 나를 좋게 보았던 한 지인으로부터 자신의 회사에서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는 스카웃 제의를 받은 것이다.


인생은, 정말 한치 앞을 알 수 없다.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나는 '기꺼이' 회사에 들어갔다.

전이라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그 제안을 내 손으로 택한 채, 순전히 나의 발로.


그렇게 처음으로 내 앞에 '직장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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