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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Oct 20. 2023

3. 사업, 열정으로 되는 줄 알았지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한다는 것은

호기롭게 퇴사를 하고 나는 내 사업을  꾸려나갈 희망찬 미래에 들떠 있었다. 상호명을 정하고 사업자 신청을 하는 모든 과정이 마냥 즐거웠다. 누구나 처음에 그렇듯 탄탄대로가 펼쳐지는 앞날만을 꿈꿨다. 


그렇다. 나는 열정이 모든 것을
가능캐 할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사업은 어느 특정 직업군에 속해있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내 사업을 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해서 나의 아이덴티티가 '사업가'그 자체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강사나 교육자가 되고 싶은 것도, 상담사나 컨설턴트가 되고싶은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20대부터 늘 생각해오던 '창직'의 꿈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 직업을 만들고 싶었다. 사업은 단지 그것을 실현시키키 위해 거쳐야할 하나의 과정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라이프 아티스트(삶의 예술가)'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것은  내 삶의 가치관과 사업의 방향성이 담긴 이름이었다. 내가 궁긍적으로 하고자 했던 일은 교육에 가까웠지만 단순히 지식이나 개념을 가르치는 교육은 아니었다.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교육과도 거리가 멀었다. 굳이 택하자면 '안내자' 또는 '멘토'의 역할과 가장 맞닿아있었다.


삶과 일에 대해 고민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인문학을 기반으로한 자기 인식 교육이 가장 주된 컨텐츠였다. 교육이라고 한정 짓는 것 자체가 너무 애매하지만 가장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워딩이 아닐까 싶다. 이런 컨텐츠는 그동안 내가 경험하고 배워왔던 것들의 총 집합체였다. 그 안에 들어가는 디테일하고 구체적인 내용과 캐치프라이즈, 마케팅적 요소 등 사업적으로 필요한 것들에 대한 정리는 필요했지만, 내가 가지고있는 컨텐츠에 대한 확신은 있었다. 이런 사업 아이템을 이유없이 택한것은 분명 아니었다. 프리랜서 시절 사람들을 만나면서 해왔던 일회성 강의들과, 크고작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데이터 베이스를 통한 결과물이었다고나 할까. 회사를 입사하기 전과 퇴사 후,  시간이 꽤 지났지만 사업 방향에는 변함이 없었다. 결국 내가 가장 잘할 수 있고, 가장 가슴 뛰는 것으로 아이템을 정해야 그나마 승산이 있을거란 생각도 한 몫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런 확신이라도 있었기에 회사를 때려치우고 사업을 하겠다고 뛰어든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확신이 마저 없었다면 버텨내지 못했을테니까. 


이런 분야로 사업을 택했던 또다른 이유는 현실적인 이유로는 당연히 돈을 벌기 위함도 있었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나는 혼자 일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바라는 바, 혹은 이루고자하는 것, 더 나아가서 삶의 의미를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싶은 마음이 컸다. 프리랜서 삶에 만족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나름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사업을 택했고, 당연히 열정이 넘칠 수 밖에 없덨다. 


나의 정체성을 담기 위해 '회사'보다는 '연구소'라는 단어를 가져와 '자기다움 성장 연구소(청춘도담 캠퍼스)'라고 이름을 지었다. 사업자를 내고 해야할 일은 사무실을 알아보는 일이었다. 요즘 많이 활용하는 공유오피스를 이용해 볼까도 했지만, 계획 중인 교육 내용상 독립적인 공간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나는 공간의 힘을 믿었다. 사람들이 우리 공간에 왔을 때 받을 첫 인상과 신뢰도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무실을 알아보는 과정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물론 그렇다고 한 번에 모든 것이 오케이 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모두가 그렇듯 재정상황을 고려할 수 밖에 없었기에 100% 마음에 드는 곳을 계약할 수는 없었다. 공간이 괜찮다 싶으면 너무 비싸고 그렇다고 비용에 맞추기엔 공간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부동산을 2-3군데 들리고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방문했던 곳에서 운명과 같이 좋은 공간을 찾았다. 바로 '편안하고 안락한, 도시와 자연의 적당히 어우러진 공간' 내가 상상하던 곳에 딱 맞는 공간을 찾자 별 다른 고민 하지 않고 계약했다. (이때만해도 몰랐다. 월세이 압박이 얼마나 무서운줄을) 


사무실을 계약하고 셀프인테리어를 하기로 했다. 초기 비용을 가장 아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때부터 인터넷을 뒤져가며 온갖 자재들을 구매했다. 가장 큰 인력은 단연 가족.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밤낮을 쉬지 않고 사무실 인테리어에 힘을 쏟았다. 바닥을 깔고 가벽을 세우고 가구를 배치고, 간단한 실내인테리어를 하면서 나는 내 사업에 대한, 이 공간에 대한 애착이 더욱 커져갔다. (애정의 크기와는 다르게 인테리어를 하며 너무 고생한 탓에 '나중에는 반드시 돈을 많이 벌어서 업체를 부르리라!' 다짐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사업의 첫 출발점에 크고 작은 일들을 하면서 나는 행복했다. 왜인지 일이 잘풀릴 것만 같은 기대감도 생겼다. 그러나 첫 사업이 뜻대로 되는 법이란 없다. 눈 앞에 놓여진 산들은 생각보다 많았으며, 그 산들은 버거울 정도로 높았다. 첫 번째로 마주한 산은 A-Z까지 모든 것을 내가 직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육, 마케팅, 세무, 회계 등등 직원으로 있었을 때는 몰랐던 아주 작은 실무까지 전부 내 손으로 처리해야한다는 점이었다. 물론 함께 사업을 시작한 어머니의 도움이 있었지만, 대표자의 이름이 나로 되어있는 한 어쨌거나 모든 실질적 행정 처리는 내가 할 수 밖에 없었다. 컨텐츠를 구상하고 교육을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마당에 컴퓨터 앞에 앉아 해 본적도 없던 세무 공부를 하고, 마케팅 영상을 찾아보고, 매일 같이 은행에 드나들며 친하지도 않은 숫자와 씨름을 하는 일. 몸은 하나인데 해야할 일은 최소 2~3명의 몫이었다. 그렇게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있을거라 생각 했던 나의 오만은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와장창 무너지고 말았다. 어느새 영혼이 나간듯 기계적으로 일을 했다. 몇 달을 그런 생활을 반복하다보니 조금씩 지쳐갔다. 생각보다 빨리 몸과 마음이 망가져가고있음을 느꼈고, 자연스럽게 '과연 이게 맞는걸까?'라는 생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처음의 열정은 어디로 갔는지 매달 나가는 월세와 관리비,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세금과 그외 부자재 비용들에 허덕이며, 그때부터는 '어떻게하면 나의 가치를 조금 더 잘 전달 할 수 있을까?, 어떻게하면 교육의 질을 높힐 수 있지?'와 같은 고민보다는 '어떻게하면 이 연구소를 잘 운영해 갈 수 있을까?' 정확히는 '이번 달은 또 어떻게 버텨야하지?'와 같은 숨막히는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날들이 이어졌다. 


잠깐, 뭔가 잘못됐다. 분명 나는 무턱대고 뛰어든 것도 아니었고 나름의 계획도 세웠는데,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걸까. 나의 열정이 부족했는가. 그것도 아닐텐데. 



사업, 열정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던 나는
현실에게 아주 세게,
그것도 재대로 한 방 먹은 셈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그래 이래야 삶이 재미있지. 그냥 순탄하게 가면 사업이 아니지.'"라는 생각이 스쳤다고나 할까. 


앞으로 내 앞에 어떤 일이 또 벌어질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택하는 것. 나라고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그러니 일단 부딪혀보는 것. 이 또한 내가 택한 길이니 기꺼이 책임지고 가보는 것. 그리고 그 치열함 속에서 결코 무너지지 않는 것.


이제야 비로소 청년 사업가의 고군분투하는 여정이 시작된다. 

이것은 열정의 또다른 이름이었으며, 또 다른 모험의 문이 열린 신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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