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학생에서 한국어 선생님이 되었을 때
호주에는 한국어를 배우는 것을 업으로 하는 군인들이 있다.
DFSL(Defence Force School of Languages)이라는 군인 대상의 언어 학교를 다니는 이들이 그 주인공이다. 이 학교에는 총 18개 언어에 대한 과정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한국어라는 사실! 나는 운이 좋게도 이 과정의 일부로서 진행되는 언어 파트너 프로그램의 파트너로 선정되어 그들을 만나게 되었다.
외국 군인에게 우리말을 가르친다니 재미도 의미도 큰 일일 것 같아 선정되었다는 메일을 받고 정말 기뻤다.
호주 군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고 하면 주변에서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가 뭐래?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물어본 결과 첫 번째는 역시나 K-문화! 한국 드라마를 챙겨보는 편이 아니어서 오히려 한국인인 내가 모르는 게 많았다. 학생 덕분에 인기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영어 제목이 'Lovely runner'라는 걸 알게 되기도 했다.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학생도 있었다. 한국인으로서는 좀 슬프지만 경쟁률 낮은 언어를 선택하고 싶었다거나 하는. 지금은 잘한 선택이라고, 재미있게 공부한다는 얘기도 덧붙여서. 이유는 제각각이었지만 모두 학구열이 불타는 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은 언어뿐 아니라 한국 문화에도 관심이 많아 당연한 것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왜 한국 사람들은 술을 마실 때 고개를 돌리나요? 차나 커피를 마실 때도 고개를 돌려야 하나요?
'-구만.'이라는 어미는 언제 사용하는 거예요?
순발력으로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들이었다. 질문을 받기 전까지 주도는 어른들이 그러라고 하니 따라한 게 다였고, 어미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썼다. 다소 이상한 예절이나 기깔나는 말맛 같은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깨나 진땀 뺐지만 덕분에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언어는 자신감이다'라는 뻔한 문장을 마음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와서 부족한 영어 때문에 많이도 괴로웠는데 원어민 입장이 되어보니 단어 몇 개만 멀쩡하게 말하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유추할 수 있었다. 이들은 한국어를 배운 지 고작 반년 된 한국어 새내기인데도! 이런 내 생각과는 무관하게 학생들은 한 문장 한 문장 만들 때마다 고통스러워 보였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미간을 찌푸리고… 영어 할 때의 내 모습과 똑같았다.
그 고통을 알기에 수업 내내 '잘하고 있어요. 무슨 말씀하시는지 다 이해했어요!' 하며 최선을 다해 응원했다. 지금까지 만나온 전화영어, 화상영어 선생님들도 내게 이렇게 응원해주셨는데. 그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만년 학생이던 내가 그들의 기분을 이해하는 날이 오다니. 선생님들, 진심이셨군요. 늦었지만 감동입니다.
돌아보면 한국어를 가르치는 시간이었지만 오히려 배우고 느낀 게 많은 것 같다. 이제 아마도 배운 것을 실전에 적용할 차례겠지.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입을 떼어보기로, 한 번 더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