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후회는 없어
호주행을 결정하자마자 나는 사흘 만에 돌아올지도, 오래 버티면 일주일 만에 돌아올 수도 있다고 주변에 떠들어댔다. 오랜만의 해외 생활이 무섭기도 하고 워킹홀리데이 비자의 막차를 탄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해서. 결국은 남보다 내게 하는 말에 가까웠다. 금방 와도 되니까 마음의 무게를 좀 내려놓고 떠나자는 자기 설득.
그게 너무 잘 먹혔는지 나는 결국 일 년짜리 비자를 받은 지 반년도 안 돼서 한국에 돌아왔다.
워킹홀리데이를 간 결정에 후회는 없다.
운 좋게도 호주에서 보낸 대부분의 시간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난 여전히 호주의 햇살과 공원, 해변, 알록달록 랩핑된 트램과 어딜 가든 웃으며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떠날 때 눈물까지 흘려준 친구들이 무척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첫 도시 멜번에서 시드니로 이동했을 때 어쩐지 '이제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지역 이동을 해서 새롭게 적응해 볼 생각이었지만 그 생각이 든 뒤 바로 한국행 항공권을 끊었다.
이제 됐다는 마음을 아이유의 <에필로그>라는 노래 가사보다 잘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내 맘에 아무 의문이 없어 난
이다음으로 가요
툭툭 살다 보면은 또 만나게 될 거예요
그러리라고 믿어요
마치 무슨 성불이라도 한 거 같은 이 마음은 어디서 나온 걸까? 내 첫 해외살이였던 교환학생 시절, 그 이후로 줄곧 죽기 전에 한 번은 더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호주로 떠나기 전에는 즐거웠던 때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거기엔 아쉬움이 있었다. 교환학생 때를 떠올려 보면 영어실력도 부족했지만 자신감이 지하를 뚫었다. 입을 못 떼니 외국인 친구들은 어렵기만 하고 주로 한국인들과 시간을 보냈다. 재밌었지만, 해외에서 살았어도 온전히 그곳을 겪진 못했다는 생각에 외국살이에 대한 성불이 안 됐던 것이다. 다시 바다 건너 나가고 싶을 수밖에.
이젠 나이도 먹었고, 근 몇 년 영어 공부도 꾸준히 했으며, 직장에서 외국인들과 일도 해봤으니까 나름 근거 있는 자신감을 가져도 될 것 같았다. 외국인이랑 사는 걸 고집하고, 쇼핑몰 외판원에게 잡혀 관심도 없는 화장품의 영업을 한참 듣고 앉아있고, 뭔가 주문할 때 날씨 얘기라도 꼭 덧붙여 스몰톡을 시도하며 그 자신감의 기반을 더 다지려고 노력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나는 내가 원하는 형태로 호주를 겪었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의 사람들과 어울렸고 완벽한 영어가 아니라도 차분하게 뱉는 법을 배웠다. 그러고 나니 아이유의 가사처럼 '내 맘에 아무 의문이 없'어졌다. 이것이 내 워킹홀리데이 귀국의 전말이다.
어느 것이든 무슨 일이든 에필로그의 시간은 찾아온다. 그것에 내 의지가 어떻게 개입할 수 있는지를 호주에서의 시간으로 배웠다. 나의 마음이 진정으로 다했을 때, 그래서 이제 됐다는 마음이 들 때에서야 진짜 미련 없는 마무리가 가능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