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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Apr 09. 2024

곧 등장할 계급 사회

[책을 읽고] 유발 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3)

이미 계급 사회라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다면, 나도 동의한다. 의미의 어떤 층위에서든, 평등이란 것이 실현된 적은 인류 역사에 없다. 그러나 거시적인 관점에서 인간 사회는 조금씩 "더" 평등해져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곧 역전될 위기에 처했다.


닉 보스트롬은 인류에게 크나큰 재앙이 될 기술 영역으로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을 꼽았다. 하라리도 이 두 영역이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영역을 제외한다면, 나도 이 두 영역이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문제는 아마도, 죽음이 극복되었을 때 발생할 것이다. 그 기술이 개발된 초기에는,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이 그 혜택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부의 불평등은 필멸자와 불멸자를 나누게 된다. 죽음만은 평등하다고 믿어 온 모두의 신념이 깨지는 순간이다.


AI의 부상과 생명공학이 결합되면 인류는 소규모의 슈퍼휴먼 계층과 쓸모없는 호모 사피엔스 대중의 하위 계층으로 양분될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대중이 경제적 중요성과 정치적 힘을 잃으면서 국가는 이들의 건강과 교육, 복지에 투자할 동기를 적어도 일부는 잃을 수 있다. 쓸모없어지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그럴 경우 대중의 미래는 소수 엘리트의 선의에 좌우될 것이다. (101쪽)



<호모 데우스>의 연장인 건지, 하라리는 대단히 쉽게 해결책을 제시한다. 


만약 모든 부와 권력이 소수 엘리트의 수중에 집중되는 것을 막고 싶다면, 그 열쇠는 데이터 소유를 규제하는 것이다. (103쪽)


재미있는 얘기다. 


맑스는 매우 선명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하부구조, 즉 생산시설의 독점을 규제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공산주의 유토피아가 도래했는가?


살을 빼려면 적게 먹으면 된다. 대단히 쉽고 분명한 해결책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비만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넘쳐 난다. 기후변화를 막으려면 온실가스를 줄이면 된다. 전쟁을 막으려면 서로 양보하고 인내심을 발휘하면 된다. 이상적인 해결책은 언제나 존재한다. 다만 실천하기 어려울 뿐이다.



자본가들의 착취를 막기 위해, 노동자들은 투쟁을 해왔다.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을 보면, 당시 노동자들이 얼마나 힘겨운 투쟁을 했는지가 실감 나게 그려진다. 노동자들은 저축했던 돈, 그리고 다른 지역의 노동자들이 보내준 지원금으로 파업 기간 중 생활비를 충당하지만, 이런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돈이 떨어지고 굶게 된 노동자들은 하나둘 파업 대열을 이탈한다.


메타와 구글에 데이터를 넘겨주지 말자는 구호를 외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쉽게 "공짜"라는 유혹에 넘어간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개인 정보를 500원에 팔라고 하면 코웃음을 치며 거절하겠지만, 개인 정보를 대가로 공짜 서비스를 제시하겠다고 하면 우리는 냉큼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온라인 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서비스"들이 그 증거다.


알다시피, 노동자들의 삶은 질 개선은 노동자 운동이 아니라 포드 사의 임금 인상과 같은 경제 논리에 의해 더 효과적으로 이루어졌다. 


또 하나의 효과적인 방법은 강제하는 것이다. 세계 최초의 연금 제도를 도입한 것은 비스마르크였다. 경제 논리가 하지 않겠다면, 정치 논리가 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다음 파트에서 정치 체계를 논의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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