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말 Apr 15. 2024

그렇게 구원자가 된다 ep 52. 명백한 운명

소현배는 경악했다.

승자의 특권으로 두 번째 미션을 선택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갑자기 뜨는 알림 메시지에 놀란 나머지 얼굴에 열이 올랐다.


소현배가 살인자라는 메시지를 모든 공격대원이 받은 것이다.

공공의 적이 되고 말았다.


되돌릴 방법은 없다.

사냥당하기 전에 사냥하는 수밖에.


소현배는 빠른 속도로 뽑기 아이템을 뽑고, 비교적 튼튼해 보이는 나무를 찾아 등을 맡겼다.

첫 번째 미션 클리어 보상 상자를 열었다.

상자 뚜껑 사이로 에메랄드 색깔이 새어 나왔다.


- 백혼검.

- 롱소드. 에픽 등급.


- 아이템 설명: 백 개의 영혼을 가두는 검. 백 명의 구원자를 살해하면 이 검은 전설 등급으로 깨어납니다.

- 대미지 등급 C-. 공격 속도 3초.

- 이 무기의 대미지 등급은 흡수하는 영혼이 늘어남에 따라 상승합니다.


- 발동 효과: 일정 확률로 적을 1초 동안 얼어붙게 만듭니다.

- 발동 효과: 일정 확률로 적에게 두 배의 대미지를 입힙니다. 이 경우, 다음 타격이 무조건 치명타로 적중합니다.

- 발동 효과: 일정 확률로 입힌 대미지만큼 사용자의 체력을 회복시킵니다.

- 발동 효과: 일정 확률로 3미터 이내에 있는 적의 아군에게 동일한 대미지를 입힙니다.

- 발동 효과: 일정 확률로 적의 버프를 빼앗아 사용자에게 옮겨옵니다.

- 주의 사항: 제한 시간 내에 100개의 영혼을 모으지 못하거나, 주인이 바뀌면 이 검은 저절로 파괴됩니다. 제한 시간이 앞으로 2,400시간 남았습니다.


계속해서 쏟아지는 아이템 설명에 소현배는 압도되었다.


‘도대체 이 검은 뭐지? 여기에서 더 좋아질 거라고?’


2,400시간이라면 100일. 하루에 한 명씩만 죽이면 된다.

소현배는 상태창을 확인했다.


- 성흔: 그래엄의 축복.

- 구원자에 대한 공격 시 100% 추가 대미지를 가합니다. 또한 구원자를 죽일 때 얻는 경험치가 400% 증가합니다.


조금 전에 죽인 마상욱까지 해서, 지금까지 모두 다섯 명의 구원자를 죽였다.

처음에는 박충기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고, 사람을 죽였다는 자책감도 컸다.


그런데 20레벨이 되자,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불길한 성흔이 개방되었다.

그래엄의 축복.

구원자에 대해 공격력이 증가하고, 구원자를 죽이면 많은 경험치를 얻는 특성.

구원자 처단이 마다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리고 이제 나타난 이 신비한 무기.

이것이야말로 운명이 스스로 드러난 것 아닐까.


‘이 던전을 나가기 전에, 백혼검에 네놈들의 영혼을 모조리 봉인해 주마.’


소현배는 아이템 뽑기로 얻은 ‘게스 후’를 사용했다.

특정 인물의 위치를 1시간 동안 맵에 표시하는 아이템.


- 추적 대상을 정해주세요.


소현배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이준기.”


그리고 소현배는 죽은 마상욱의 몫으로 뽑은 아이템도 클릭했다.


- 은신 망토.

- 사용 효과: 최대 2시간 동안 은신 상태가 됩니다. 투명 인간이 된다는 말이죠! 다른 아이템을 사용하거나 공격을 개시하면 은신이 풀립니다. 설마 선빵을 친 다음에도 투명 상태로 있겠다는 도둑놈 심보는 아니겠죠?

- 주의 사항: 은신 상태는 눈에 안 보이는 것일 뿐, 소리도 들리고 냄새도 납니다. 그러니까 노래를 부르거나 방귀를 뀌는 것은 삼가 주세요. 또 한 가지. 던전을 나가거나 미션이 클리어되면 이 아이템은 우주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 영원히 사라집니다. 그러니까 당장 쓰세요!


소현배는 지도 화면에서 이준기의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은신 망토를 뒤집어쓰고, 지도에 표시된 위치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


한택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한참 동안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한참 전에, 웬일인지 공중에 떠 있는 주석을 활로 쏘아 떨어뜨렸다.


그렇게 공중에 떠 있는 목표물을 본 사람이 자신뿐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래서 신중하게, 천천히 목표물을 향해 다가갔다.

그래서 그런지, 도착해서 보니 주석은 이미 달아나고 없었다.

첫 번째 미션을 깼다는 메시지와 다음 미션이 시작되었다는 메시지가 요란하게 뜬 것은 그다음이다.


한택수. 충무공 길드의 3인자였고, 길드 마스터 권영호가 죽은 이후로는 넘버 투다.

언제나 충무공 길드 부동의 에이스 탱커였다.


그런데 이제 2탱으로 밀려나게 생겼다.

탑픽 길드와 합병하는 바람에, 탑픽 길드의 마스터이자 메인 탱커인 오대영에게 밀리게 된 것.

이도협 부길마와 이상덕 협회장의 농간이다.


‘이래서 길마는 탱커가 해야 하는 건데 말야. 길드 운영진이 죄다 딜러니까 탱커 귀한 걸 모르고…’


아무도 못 본 지 이미 두 시간째.

두 번째 미션이 시작된 지도 한 시간이 된 것 같다.

다섯 시간 내에 누군가가 죽지 않으면 아무나 한 사람이 무작위로 죽는다.


‘그건 안 되지. 주석이든 소현배든, 아니 같은 길드 이준기라도 죽어야 한다. 나만 아니면 되니까.’


랜덤 아이템 뽑기에서는 다시 ‘맵핵’이 나왔다.

지도에 적의 위치를 표시해 주는 아이템.

그러나 이름처럼 성능이 대단하지는 않다.

반경 약 100미터 정도가 표시되는 상태창의 지도, 그 범위 내에 있는 적의 위치만이 표시된다.


‘지도 전체가 표시된다면 좋았을 텐데.’


아까부터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엄폐 상태를 유지하며 움직이고 있지만, 수확이 없다.

섬의 남서쪽은 샅샅이 조사한 것 같은데, 사람은커녕 오크 한 마리도 없다.


‘이 던전은 몬스터가 아예 없는 건가?’


동쪽으로 조금씩 움직이던 한택수의 맵에 적 표시가 깜빡였다.


‘뭐지?’


위치는 섬 중앙에 자리한 거대한 나무다.

아마도 나무 위의 그 통나무집, 그 안에 있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사람은 아니고 몬스터일 수밖에.

피해야 하나?


각자도생하는 스타일의 던전이기는 해도, 몬스터는 강할 것이다.

한국에는 처음 등장한 무려 B급의 던전이니까.


어쩐지 이쪽으로 오는 것 같기도 하고.

지도상의 표시에 따르면 아직 나무 위에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멀어지는 게 상책이다. 지금 몬스터와 엉켰다가는 다른 사람의 사냥감이 될 뿐이지.’


한택수는 최대한 기척을 숨기고 조금씩 서쪽으로 발을 옮겼다.


핏, 핏, 핏!


갑자기, 나무 쪽에 있던 빨간 점이 무서운 기세로 이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무 위 통나무집에 있던 오크가 뛰어내려 쫓아오는 건가? 너무 빠르다.’


한택수는 뒤를 돌아보았다.

마치 시야에 잔상이라도 남길 것처럼 빠르게 뭔가가 날아왔다.


퍽!


“끄억!”


한택수는 배에 칼을 맞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주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풍림화산.”

“뭐?”

“나아가지 않을 때는 숲처럼 고요하게, 그러나 움직일 때는 바람처럼 빠르게! 멋지지 않아요, 한택수 선배?”

“으으… 뭐라는 거냐?”


파팟!


주석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런, 썩을.”


한택수는 허겁지겁, 인벤토리에서 힐링 포션을 꺼내 들이켰다.

왼손에 든 방패에 몸을 구겨 넣기라도 할 것처럼 몸을 잔뜩 움츠린 한택수.

힐링 포션을 입에 댄 채로, 핏발이 잔뜩 선 눈은 보이지도 않는 상대를 쫓고 있다.


***


“소현배보다는 문아린을 찾는 쪽이 더 좋다는 말씀이죠?”

“네.” 이준기의 확인 질문에, 하민서는 냉큼 대답했다.


“먼저 문아린을 찾고, 힘을 합쳐서 소현배를 치자는 말씀이죠?”

“네. 소현배는 죽어 마땅한 살인자니까요.”

"알겠습니다."


이준기는 아이템 ‘게스 후’를 발동했다.

특정 인물의 위치를 1시간 동안 지도에 표시해 주는 아이템.


- 추적 대상을 정해주세요.


“문아린.”


문아린의 위치가 지도에 표시되었다.

이준기와 하민서의 현재 위치에서 동쪽으로 많이, 남쪽으로 조금 가면 된다.


“이동하는 것도 보이나요?”

“네. 북서쪽으로 이동 중입니다. 아린이도 저랑 약속한 대로 북쪽 끝으로 오고 있었네요.”


이준기가 문아린을 친근하게 부르는 걸 듣자, 하민서는 살짝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서로 죽여야 하는 상황에서, 두 사람이 서로 신뢰하는 것을 보니 부러울 수밖에 없다.

아니, 이 사람의 외모나 분위기 때문일까?


“아린 씨와는 친해요? 어떻게 알게 된 사이예요?”

하민서는 대담한 질문을 던진 자신에 대해 놀랐다.

“별로 친하진 않아요. 지난번, 부산에서 같은 공격대를 뛴 사이죠.”


“아, 해운대요?”

해운대 같은 위험한 전장을 함께했다면, 전우애일까.

친하지 않다는 말이 냉큼 나오는 걸 보니 왠지 안심이 되었다.


“네. 해운대.” 이준기가 대답했다.

“거기서 준기 씨 활약이 대단했다고 들었어요. 하필 우리 길드 나린이가 사망자 명단에 들어가서 우울하긴 했지만.”

“아, 나린 씨. 정말 좋은 탱커셨는데.”

진심이었다. 성나린이 살아남았다면 미래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전방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서, 둘의 대화가 잠시 중단되었다.

수풀 사이에서 나타난 땅쥐가 그들의 눈앞을 또르르 달려서 땅 위에 난 구멍으로 들어갔다.


“휴.”

“긴장했네요.”

“아린 씨는 뭐 하던 사람이에요?”

“글쎄요. 뭐라고 했었더라. 아, 카페 하신다고 했던 것 같은데.”


“카페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 카페를 운영하신다고요? 금수저네요.”

“그런가요? 임대 건물 아니겠어요?”

“그래도 카페 사장이면, 금수저 아닌가요? 저는 전에 보육교사였어요. 어린이집에서 하루에 열 시간씩 일해서 간신히 먹고살았죠. 결혼은커녕 데이트할 생각도 못 해보고.”

“쉿!”


이준기의 신호에 따라 둘은 자세를 낮추고 동시에 다른 방향으로 산개했다.

뒤쪽에서 누군가가 빠른 속도로 쫓아오고 있었다.


이준기는 수풀 사이에 몸을 숨기고 소리가 나는 쪽을 응시했다.

회귀 전에 익혔던 탱커의 기본 소양이 저절로 발휘되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소리가 나는데.

그것도 발걸음 소리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남서쪽을 응시하는 이준기.

발걸음 소리가 멈췄다.


끼이익.


활시위에 화살 거는 소리다.


핑!


화살이 활시위를 떠났다.

이준기는 이미 사선 방향으로 뛰고 있었다.


활시위에서 손을 뗀 소현배의 은신이 풀렸다.

그의 모습이 드러남과 동시에, 이준기가 90도로 방향을 꺾어 소현배를 향해 달려들었다.

원거리 공격자가 가장 위태로워지는 시점이다.


“이준기!”

소현배는 달려드는 적을 향해 고함치며 인벤토리에서 근접 무기를 꺼내 쥐었다.

그의 손아귀에 무기의 형상이 드러나기도 전에, 이준기는 이미 바로 앞에 와 있었다.


이준기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그렇게 구원자가 된다 ep 51. 이합집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