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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Apr 12. 2024

그렇게 구원자가 된다 ep 51. 이합집산

하민서는 상태창에 출력되는 메시지를 열심히 읽었다.


- 첫 번째 미션을 클리어한 소현배 님이 두 번째 미션으로 ‘아름다운 사냥’을 선택했습니다.


- 두 번째 미션. ‘아름다운 사냥’.

- 미션 클리어 조건: 6시간 내에 공격대 멤버 1인 이상 사망.

- 보상: 레벨업.

- 미션 실패 시 페널티: 무작위 추첨에 의한 공격대원 1인 사망 후 미션 제한 시간 6시간 연장.


“소현배가 사람을 죽였군요!” 하민서가 말했다.

“자세한 정황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됐군요.” 이준기가 드라이하게 답했다.


소현배가 성흔 ‘그래엄의 축복’을 가진 이상, 다른 구원자에 비해 데스매치에 있어 유리한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변수가 많은 프리포올 데스매치에서 그런 점은 쉽게 다른 요소에 의해 압도될 수 있다.


당장 두 명이 한 팀으로만 덤벼도 소현배가 혼자 싸워서 이길 가능성은 크게 낮아진다.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알림창 메시지가 모든 공격대원에게 전달되었으니, 소현배는 화들짝 놀랐을 것이다.


“소현배가 다음 미션을 선택했다는 말은 또 무슨 뜻일까요?”


소현배가 공격대 전체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했다는 말이고, 던전 돌파라는 장기적인 이익보다 단기적인 보상을 선택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하민서의 질문은 그런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소현배가 첫 번째 미션을 클리어했기 때문에 두 번째 미션에 대한 선택권을 가져갔다는 말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승자독식이 정말 현실인지, 알고 싶은 것이다.


“민서 씨가 생각하는 게 맞을 겁니다.”

“미션을 클리어한 사람이 다음 미션을 선택한다는 건가요?”

“그렇게밖에는 생각이 안 드는군요.”

“다른 선택권은 뭐였을까요?”


선택지는 오직 소현배의 상태창에만 출력되었던 것이다.


“소현배가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기 위해서 저런 선택을 한 건 아닐 겁니다. 자기가 딱히 유리한 것도 아니니까요. 소현배는 자신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하고 선택한 걸 겁니다. 누구나 그렇게 했겠죠.”

“그러면 또 누군가가 여섯 시간 내에 사망해야 한다는 얘기군요. 이번에는 보상도 그저 레벨업 하나뿐인데.”


FFA 포맷에서 두 번째 미션은 보통 두 개의 선택지가 주어지는데, 둘 중 하나는 데스매치의 반복이고 다른 하나는 최종 목표로 한 단계 접근하는 것이다.

물론, 던전에서 나가는 선택지도 주어지기는 하는데, 웬만한 쫄보가 아니고서야 그걸 고르지는 않는다.

어쨌든 승자 아닌가.


평화적인 선택지의 보상은 모호하게 적혀있기 때문에, FFA 포맷을 처음 경험하는 소현배로서는 그걸 선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평화로운’ 선택지의 무시무시한 실패 페널티까지 고려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분명히 두 번째 선택지 설명에 ‘오크 사원’ 운운하는 내용이 있었을 텐데, 그걸 선택하지 않았다니.’


요란한 소리와 함께 두 번째 미션에 필요한 보급품 상점이 개방되었다.


- 짜잔!

- 아이템 상점입니다. 보급품, 힐링 포션, 그리고 랜덤 아이템의 행운이!

- 메뉴: 보급품, 소모품, 랜덤 아이템.


“아이템 뽑기가 다시 나왔네요.”

“이걸 또 해야 하나요? 아까 뽑은 아이템 사용하지도 못했는데.”

“그건 사라져 버렸을 겁니다. 저도 사용하지 못하고 사라졌네요.”

“어? 그렇군요. 어쩔 수 없이 또 20골드를 넣어야 하겠네요.”

“사소한 일에 목숨 걸 필요 없죠. 혹시 돈이 모자란 건 아니시죠?”

“아뇨. 골드는 충분해요. 아직은.”


이준기는 특정 인물의 현재 위치를 1시간 동안 표시해 주는 ‘게스 후’를 뽑았고, 하민서는 최대 24시간 동안 던전과 분리된 공간에서 혼자 숨어 있을 수 있는 ‘아늑한 1인실’을 뽑았다.


“민서 씨는 원하신다면 그걸 사용해서 다음 미션 때까지 그냥 숨어 계세요.”

“이거 안전할까요?”

“안전할 겁니다. 시스템을 믿어야죠. 우린 모두 던전에서 나오는 무기와 아이템을 사용해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요.”


“아! 그렇군요.”

“전 제 아이템을 사용해서 소현배를 추격하거나, 문아린을 찾겠습니다.”

“어느 쪽으로 하시게요?”

“생각을 좀 해봐야겠어요.”

“소현배를 추격하신다면 전 숨겠어요. 하지만 문아린을 찾으시겠다면 같이 갈게요.”


‘소현배는 첫 번째 미션에서 사망한 사람의 몪까지, 아이템을 두 개 뽑을 수 있지. 그게 변수다.’


***


가까스로 화살을 피한 문아린에게 달려든 것은 김형채.

김형채는 두 레벨 아래의 문아린을 깔보고 덤볐지만, 문아린은 만만치 않았다.

둘이 한창 치고받고 있는데, 갑자기 상태창에 알림 메시지가 떴다.


문아린도, 김형채도,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둘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에 대한 적대행위를 멈추고 대화를 시작했다.


“첫 번째 미션이 끝났다고요?”

“우리 중에 누군가가 죽었다는 거죠?”

“형채 씨, 이제 우리 싸움 그만해도 되는 거죠?”

“미션이 끝났는데 왜 싸웁니까. 휴전합시다.”


김형채는 문아린 처단이 목표였지만, 일단 숨을 돌리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일반 던전에서 실수나 사고를 가장해서 살인을 해왔다.

이렇게 대놓고 배틀로얄을 펼치라고 하니 오히려 더 힘들어졌다.

게다가 문아린이 가진 무기가 생각보다 너무 셌다.


두 번째 미션 내용이 출력되지 않아, 둘은 일단 멀리 떨어져 앉아 쉬었다.

첫 미션을 클리어한 소현배가 보상을 고르는 중이었지만, 둘은 그걸 알 방법이 없다.


“아린 씨, 무기가 정말 훌륭하네요.”

“그거, 칭찬인가요?”

“어떤 무기인지 링크 찍어줄 수 있어요?”

“조금 전까지 절 죽이려고 하시던 분한테요? 좀 곤란한데요.”


쏘아보는 문아린의 눈빛을 피하며, 김형채는 사람 좋은 척 웃었다.


“하하. 하긴 그렇죠. 근데 미션이 그렇게 나와서 어쩔 수 없었다는 건 이해해 주셔야 합니다.”

“글쎄요. 죽은 사람도 동의할까요?”


잠깐 침묵이 흘렀다.


“어딜 가시던 중이었는지 물어봐도 돼요, 아린 씨?”

“아뇨. 대답하기 싫어요.”

“저, 그냥 저쪽으로 사라질까요?”

“그랬다가 다시 덤비실까 봐 두려운데요.”


“미션이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고요! 너무 경계하시는 거 아녜요?”

“저한테도 똑같은 미션이 있었지만, 저는 누굴 공격하려고 하지 않았잖아요!”

“그걸 제가 어떻게 믿습니까?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 보세요.”

“형채 씨야말로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 보시죠. 제가 지금 형채 씨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역시 그런가요.”

“어쨌든 먼저 공격한 건 형채 씨였으니까요.”


- 두둥!

- 첫 번째 미션을 클리어한 소현배 님이 두 번째 미션으로 ‘아름다운 사냥’을 선택했습니다.


- 두 번째 미션. ‘아름다운 사냥’.

- 미션 클리어 조건: 6시간 내에 공격대 멤버 1인 이상 사망.

- 보상: 레벨업.

- 미션 실패 시 페널티: 무작위 추첨에 의한 공격대원 1인 사망 후 미션 제한 시간 6시간 연장.


“헐.”

“이런.”

“소현배가 살인자였군요.”

“그 소현배가 또 살인 미션을 선택했네요.”


“어떻게 하실 건가요? 다시 우리끼리 죽을 때까지 싸우는 건가요?”

“아린 씨가 절 믿어주신다면, 전 아린 씨와 함께 팀을 짜서 소현배를 죽이러 갈 용의가 있습니다.”

“글쎄요. 지금 결정해야 하는 거죠? 전 형채 씨한테 공격받은 게 너무 충격이라서.”

“절 경계하시는 건 이해합니다.”


문아린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자, 김형채도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두 사람 사이에는 몇 걸음의 거리가 있는 상황.


“아린씨, 제가 앞에서 걸으면, 절 믿어주시겠어요?”

“글쎄요. 정말 잘 모르겠어요.”

“제가 서너 걸음 앞에서 걸으면 되잖아요. 그렇게 하면 제가 아린 씨를 먼저 공격하기는 절대 가능하지 않을 텐데요.”


“그래서 제가 얻는 이득은 뭐죠?”

“함께 소현배를 죽이고 미션을 클리어하는 거죠.”


문아린은 잠깐 생각했다.

지금 서로 갈 길 가자고 헤어지는 것은 좋지 않은 선택이다.


김형채가 다시 기습할 수도 있으니까, 주위에 놓고 감시하는 것이 낫다.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하라는 격언도 있지 않은가.

김형채를 믿는 건 아니지만, 둘이 다니면 한 팀처럼 보일 것이고, 제삼자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도 줄어든다.


“좋아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제가 앞을 걷는 것만으로는 부족한가요?”

“네. 부족해요.”

“조건이 뭡니까?”


“어디로 갈지, 제가 정하게 해주세요.”

“하하. 전 또 뭐라고. 그 정도 권력은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다만.”

“다만?”

“목표는 소현배를 죽이는 겁니다. 그것도 제한 시간 내에.”


“좋아요. 여섯 시간이라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뭔가 계획이 있으신 거죠?”

“천천히 말씀드릴게요. 우선 우리, 신뢰를 좀 쌓아보죠.”

“좋습니다.”


원래 문아린을 타깃으로 정한 이유는 가장 만만할 것 같아서다.

김형채로서는 문아린과 연합하여 소현배를 처리할 수 있다면 더 잘된 것.

문아린의 신선자 길드보다는 소현배의 문경새재가 훨씬 강한 반협회장파 길드다.


소현배는 박충기의 자객이라는 소문이 있는 정도의 인물이니, 문아린보다는 소현배를 처치하는 것이 훨씬 큰 공을 세우는 것이다.

반협회장 파벌의 핵심, 박충기에게 큰 타격이 갈 것이니까.

하지만 그런 논리로 문아린을, 아니 이해관계 없는 제3자를 설득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머리를 굴리는 도중에, 갑자기 떠오른 메시지에 김형채는 생각을 멈췄다.


- 짜잔!

- 아이템 상점입니다. 보급품, 힐링 포션, 그리고 랜덤 아이템의 행운이!

- 메뉴: 보급품, 소모품, 랜덤 아이템.


“헉, 이거 또 하네요.”

“아이템 뽑기는 해야겠죠?”

“목숨이 20골드보다는 비싸니까요.”


힐링 포션 채우고, 보급품 점검을 끝낸 뒤 둘은 각각 아이템 뽑기를 돌렸다.


“뭐 나왔어요, 아린 씨? 저는 이거 나왔습니다.”

김형채는 ‘섬광탄’을 링크해 보였다.

적의 시야와 청각을 잠시 마비시키는 아이템.


“저는 이거요.”

문아린은 ‘도플갱어’를 링크했다.

자신과 똑같은 모습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적을 유인하는 아이템이다.


“이제, 우리 한 팀인 거죠, 아린 씨?”

“일단은요.”

“자, 그럼, 소현배 잡으러 가는 겁니다.”

“아까 약속한 대로, 일단은 제가 가자는 쪽으로 가셔야 해요.”

“네, 네.”


문아린의 리드에 따라, 둘은 북서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김형채가 앞서 걷고, 문아린은 그 뒤를 네 걸음 정도 떨어져서 걸었다.


문아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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