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말 Apr 17. 2024

그렇게 구원자가 된다 ep 53. 갈림길

이준기와 소현배가 현란하게 칼날을 교환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불꽃 튀는 칼싸움.


하민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도 못 하고 멍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적’은 본 적이 없다.

몬스터의 움직임은 거기서 거기니까.


소현배는 ‘백혼검’과 ‘다마스커스’를 양쪽에 들고 이준기를 노려보았다.

그 시선의 반대편에는 ‘오캄’과 ‘카데쉬’를 양손에 든 이준기.

롱소드인 백혼검을 든 소현배 쪽이 리치는 우월하다.

그러나 ‘해안약탈자의 샌들’을 신은 이준기 쪽이 이동속도는 조금 더 빠르다.


화살이 발사되기도 전에 뛰어나간 이준기가 선공을 잡았다.

그러나 선빵을 맞은 소현배는 곧바로 반격했다.

백혼검이 발동 효과를 터뜨려 두 배의 대미지를 먹이자, 연쇄 효과로 왼손의 다마스커스가 치명타로 박혔다.


“현배 씨, 스나이퍼인데도 검술이 아주 좋군요? 그런 실력으로 동료를 죽이고 다니니 좋아요?”

“준기 씨는 레벨이 20밖에 안 되는데 나랑 맞짱을 뜰 생각을 다 하네?”


숨을 몰아쉬며, 두 사람은 말싸움을 시작했다.


“현배 씨가 고른 미션은 현배 씨가 결말을 지어야겠죠. 우리 중에 죽는 건 이제 딱 한 명뿐일 겁니다.”

“그게 준기 씨가 아니라는 법도 없겠지?”


분명히 선공을 빼앗겼음에도 이준기와 대등하게 맞서는 소현배를 보자, 하민서는 갈등했다.

이준기와 함께 있을 때는 그가 누구보다 강해 보였지만, 그는 공격대원들 중 레벨이 제일 낮다.

이준기와 같은 편에 서는 게 정말 현명한 일일까?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분명히 소현배가 살인자라고 알림 메시지가 떴는데.’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지, 이준기와 대치 중이던 소현배가 그녀에게 외쳤다.


“하민서 씨! 선택 잘하세요. 저는 27레벨이고 이 친구는 20레벨. 누가 이길까요?”


하민서 주위를 돌던 몇 권의 책이 사그라졌다.

시전을 멈춘 그녀는 뒤로 한 발을 물러났다.

소현배의 말을 듣고 보니, 레벨 차가 너무 크다.

이준기가 선공을 먹였음에도 불구하고 고전하는 이유는 바로 현격한 레벨 차이 때문이 틀림없다.


이준기와 소현배가 다시 한번 검을 교차했다.

네 개의 검날이 두 개씩 짝지어 맞서 불꽃을 튀기다가 분리되었다.

다시 서너 걸음 정도 거리를 띄운 둘이 숨을 몰아쉰다.


‘나는 너한테 두 배의 대미지를 입히고 있다. 넌 그걸 모르겠지만.’

소현배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승리를 자신했다.

‘설마, 네놈 따위가 그 희귀하다는 성흔을 가지고 있지는 않겠지. 난, 선택받은 구원자니까.’


바로 그때, 이준기가 큰 소리로 말했다.


“현배 씨, 그래엄의 축복, 마음에 들어요?”

“뭐, 뭐라고?” 소현배는 당황했다. "무슨 말이냐?"

“놀랐습니까? 음침한 성흔을 들키고 나니까?”

“서... 성흔? 그것도 어디 SNS에서 본 유언비어냐?”


성흔이라고? 하민서는 생각했다.

레벨이 7이나 높은데, 성흔까지 가지고 있다고?

이준기가 이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을까?


“그래엄의 축복. 구원자에 대한 공격력이 400% 증가하고...” 이준기가 소현배의 상태창을 읽었다.

"뭐... 뭐라고?" 놀라서 소리 지른 것은 하민서였다.

"구원자를 죽일 경우 경험치가 100% 증가합니다."


"이... 이준기!"

소현배가 백혼검과 다마스커스를 교차해서 든 채로 이준기에게 달려들며 소리쳤다.

"헛소리는 집어치워라!"


"당신의 살인 행각은 여기에서 끝납니다." 이준기가 말했다. "응보를 받으시죠."


이준기는 차분하게 소현배의 발놀림에 집중했다.

나의 다음 수보다 적의 다음 수를 생각하는 탱커의 소양일까.

소현배가 거리를 좁혀 오자, 이준기는 몸을 낮추어 소현배의 다리를 겨냥했다.


“커억!”


오캄과 카데쉬가 소현배의 다리를 베는 느낌을 확인하자마자, 이준기는 몸을 돌리며 뒤로 물러섰다.

소현배는 이준기의 등을 베려고 양손의 무기를 휘둘렀지만, 다리의 고통으로 균형이 무너졌다.


하민서의 몸 주위로 푸른색 표지와 초록색 표지의 책들이 빙빙 돌기 시작했다.

둘 중 누구의 편에 설 것인지, 드디어 마음을 정한 모양이다.


“얼음 회오리!”


***


- 두둥!


함께 이동하던 김형채와 문아린은 깜짝 놀랐다.

갑자기 뜬 알림 메시지 때문이었다.


- 두 번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 아주 잘하셨어요! 두 명이 거의 동시에 쓰러졌네요. 피바다를 보여주세요! 데스매치는 역시 이런 맛이 있어야죠.


김형채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문아린을 바라보았다.


“뭡니까, 이거? 우리 또 쉬어야 하나요?”

“글쎄요. 어떡하죠. 지도를 보면 거의 다 온 것 같긴 한데.”

“걱정할 필요도 없었네요. 첫 번째 미션보다 더 빨리 끝난 것 같아요.”

“정말 그렇군요.”


“소현배가 또 누굴 죽인 걸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이?”

“두 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걸까요? 설마 소현배가 두 명을 동시에?”

“둘이 싸우다가 같이 죽었을 수도 있죠.”


문아린이 잠깐 생각하고 말했다. “미션을 클리어한 사람이 다음 미션을 선택하는 거잖아요?”

“그런 설명이었죠.”

“싸우던 둘이 다 죽었다면, 이제 우리 드디어 해방인가요?”

"아, 그런 방법이..." 김형채의 얼굴이 밝아졌다.


"미션도 없는데, 앉아서 좀 쉬죠."

문아린의 제안에, 김형채는 제자리에 앉았다.

문아린도 지금 그대로, 멀찌감치 거리를 둔 채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배 안 고파요?” 김형채가 물었다.

“고파요.” 문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쉬는 김에 우리, 식량 팩이라도 먹을까요?”

“네. 그래요, 그럼.”


둘은 각각 인벤토리에서 기본 식량 팩을 꺼냈다.

기본 식량 팩이라고 부르는 것은, 종이로 포장된 딱딱한 빵 같은 덩어리다.

종이 포장을 조금씩 벗겨가면서 둘은 퍽퍽한 덩어리를 베어 물고 씹었다.

중간중간에, 역시 인벤토리에서 꺼낸 물병의 물을 마셔가면서.


“그나마 물은 무제한이라서 다행이에요. 그렇지 않아요?”

“동감이에요. 9월도 끝나가는 마당에 왜 이렇게 더운 걸까요.”


식사를 끝낼 즈음, 상태창이 다시 솟아오르며 알림 메시지가 떴다.

깜짝 놀래킬 정도로 요란하던 알림음이 왠지 바람 빠진 느낌으로 바뀌었다.


- 두 번째 미션을 클리어한 두 명의 선택이 갈렸습니다.

- 각각 다른 걸 골랐다는 얘기죠. 별일 다 봅니다.


“무슨 소리야? 알림 메시지가 왜 이렇게 요란한 거죠, 이번 던전은.” 김형채가 논평했다.

알림 메시지가 이어졌다.


- 이럴 땐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시죠?

- 둘 다 합니다!

- 선택은 여러분의 몫!


“그러게요. 무슨 유튜브 생방이라도 하는 것 같아요.” 문아린이 대답했다.


- 세 번째 미션으로, 주석은 ‘멋진 신세계’, 이준기는 ‘고공 침투’를 선택했습니다.


"주석!" 문아린이 외쳤다.

"그리고... 이준기!" 김형채가 덧붙였다.


알림 메시지가 이어졌다.


- 미션 3-1. ‘멋진 신세계’.

- 미션 클리어 조건: 24시간 내에 공격대 멤버 절반 이상 사망.

- 보상: 생존자 전원 레벨업 및 던전 종료 옵션 부여.

- 미션 실패 시 페널티: 24시간 경과 시점에 멤버 절반 이상이 사망하지 않은 경우, 모자라는 숫자만큼 무작위 추첨에 의해 사망하고 미션 제한 시간 24시간 연장.


- 미션 3-2. ‘고공 침투’.

- 미션 클리어 조건: 24시간 내에 오크 사원 붕괴.

- 보상: 생존자 전원 레벨업 및 던전 종료 옵션 부여.

- 미션 실패 시 페널티: 24시간 경과 시점까지 오크 사원이 붕괴되지 않을 경우, 공격대 멤버 전원 사망.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김형채가 말했다.

“저도요. 오크 사원은 뭐죠?”

“이번에는 살인자가 주석과 이준기였군요.”

“그렇네요. 준기 오빠가 누군가를 죽였군요.”


“준기… 오빠요?” 김형채가 문아린을 바라보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는 사이예요?"

“네. 해운대 던전에서 같은 공격대, 아니 같은 소대였어요.”


“네? 그 공격대에는 저도 있었잖아요? 저하고 같이 2소대에 계셨잖아요?” 김형채가 되물었다.

"아, 그랬었죠." 문아린은 이제야 기억이 나는 모양이었다.

"준기 씨나 저나 비슷한 연배인 것 같은데, 준기 씨는 오빠예요?"

“네? 무슨 말씀이세요?" 문아린이 말했다. "설마, 오빠라고 불러드렸으면 하시는 거?”


“안 됩니까?” 김형채는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푸하하!" 문아린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랍니다.”

“왜요? 왜 차별하시죠?”

“웃기기는 하지만, 지금 웃을 시간이 아니잖아요? 빨리 아이템 뽑고 다음 위치로 이동해요.”

“하긴. 일단 급한 것부터 하시죠.” 김형채는 일단 수긍했다.


아이템 뽑기 결과, 문아린은 ‘결박석’을 뽑았다.

문아린은 아이템 링크를 김형채와 공유했다.


- 결박석.

- 사용 효과: 상대방을 현재 위치에서 얼려버립니다. 아주 답답하겠죠? 최대 1시간 동안 유지되며, 그 전이라도 얼어버린 상대가 공격을 받으면 풀린답니다. 이쯤 되면, 아주 평화로운 물건 아닌가요?

- 사정거리: 100미터.

- 주의 사항: 계속해서 똑같은 주의 사항 말씀드리는 것도 지겹네요. 던전에서 나가시거나, 이번 미션이 클리어되면 이 아이템은 증발해 버립니다. 빨리빨리 소비해 버리자구요!


“아, 정말 요란스런 설명이네요. 형채 씨는 뭘 뽑으셨어요?”

문아린이 물었으나, 김형채는 대답이 없었다.


“형채 씨?”

문아린은 고개를 들어 김형채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수풀을 헤치는 바람 소리만 들려왔다.


문아린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그렇게 구원자가 된다 ep 52. 명백한 운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