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간다면 인문학과 함께 과학도 공부하고 싶다. 인생의 막바지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이런 아쉬움을 느끼는 문과가 없기를 바라면서 과학에 관한 인문학 잡담을 마친다. (맺음말)
지식소매상 유시민이 매대에 올려 놓은 과학은 어떤 모습일까. 수포자인 나는 "바보를 겨우 면한 자의 무모한 도전"에 흥미를 가지기 충분했다. 이언 스튜어트의 책이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인용되는 것을 보며, 내 최애 작가를 또다른 나의 최애 작가도 좋아한다고 생각하며 즐거웠다.
이 책의 최대 강점이라면 역시, 과학을 기웃거린 문과 남자의 문과적 감상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간다면 과학도 함께 공부하고 싶다는 작가의 말도 감명 깊었지만, 아직도 과학임을 자처하는 맑시즘에 대한 (자아) 비판이나 통섭과 환원주의에 대한 그의 생각은 더욱 흥미로웠다.
생물학, 화학을 거쳐 결국에는 물리학(+수학)으로 되돌아가는 환원주의적 설명이 가능하다는 생각에 대해서, 물리학(+수학)자를 제외한 거의 모든 학자들이 거부감을 나타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명하다. 물리학의 정의가 바로 그런 학문이기 때문이다. 이 궁극의 환원주의를 거부하는 것은,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명제를 거부하는 것과 같다. 수학의 공리를 거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유시민이 아래와 같이 말하는 부분에는 박수를 치고 싶었다.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물리법칙으로 남김없이 설명할 수 있는 날이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할 근거는 없으니까. (4장 중 '환원주의 논쟁')
뇌과학에 관한 챕터를 마무리하는 아래 문단은 이 시대 그 누구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한 지성인이 가진 아름다운 겸허의 태도를 보여준다.
나는 욕심 많고 인색하고 어리석고 보수적인 노인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의 내가 하는, 더 젊은 내가 했던, 모든 말과 행동을 부정하는 언행을 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뇌의 하드웨어 퇴화로 인해 벌어진 신경생리학적 사건으로 여겨 주기를, 나쁜 놈이라고 욕하지 말고 불쌍한 사람이라고 동정해 주기를 바란다. (2장 중 '자유의지')
유시민의 책은 언제나 각주가 철저한데, 이 책은 더욱 그렇다. 이 부분은 누구의 어떤 책을 중심으로 서술했다는 내용을 거의 모든 문단에 대해 철저히 적어놓았다. 그래서 리딩 리스트에 수많은 책을 추가할 수 있었다. 아래는 그 목록이다.
한정훈, 물질의 물리학 - 양자역학을 발생사 관점에서 서술 (50가지 양자역학 이야기가 그런 책이었다.)
리처드 도킨스, 눈먼 시계공 - 도킨스의 거의 모든 책들이 리딩 리스트에 있으나, 차일피일 미루는 중
이혜경, 맹자,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길 - 맹자도 그 당시에는 진보주의자였다. 그러나 한번 읽어볼까.
에드워드 윌슨, 인간 본성에 대하여
피터 싱어, 다윈주의 좌파
니콜라이 오스트롭스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존 엠슬리, 상품의 화학, 세상을 바꾼 독약 한 방울, 멋지고 아름다운 화학 세상
김성구, 아인슈타인의 우주적 종교와 불교
빅 맨스필드, 불교와 양자역학 - 달라이 라마가 묻었다는 게 좀 우려된다
브라이언 그린, 엔드 오브 타임
나탈리 앤지어, 원더풀 사이언스
G. H. 하디, 어느 수학자의 변명
유튜브 Veritasium, 당신이 수학을 모르는 이유
***
사족.
과학자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지만 철학자는 모른다는 말도 무언가 아는 것처럼 한다. (2장 중 '현상과 사물 자체')
이 문장에 대해서는 조금 주석을 달고 싶다. 철학에 입문한 후 내게 최애 분야는 언제나 인식론이었는데, 내가 가장 경애하는 인식론 학자들은 모른다는 말을 아는 것처럼 하지 않는다. 후설, 하이데거는 물론이고, 칸트도 그렇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이나 빈 학파 논리실증주의자들은 허언증 환자들이라는 사실 역시 인정한다. 인식론이 아닌 분야의 철학자들에게는 물론, 위 문장이 딱 들어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