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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un 14. 2021

논리적으로 생각하기만 해도
수학이다

[책을 읽고] 조던 엘렌버그, <틀리지 않는 법> (1)

아니, 이런 수학책이 있다니


다른 모든 종류의 책들과 마찬가지로, 수학교양서도 차고 넘친다. 그리고 다른 모든 종류의 책들과 마찬가지로, 수학교양서도 심각하게 높은 확률로 속이 텅빈 강정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상황에서, 칭찬을 마구 쏟아붓고 싶은 수학교양서를 만났다. 


수학이라는 게 반드시 어떤 수식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논리적 사고를 할 수 있다.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해도, 인간이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언어다. 그리고 수는 언어의 핵심 요소다. 따라서 논리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사실 수학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저자는 우리가 조금만 더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확률을 따지다 보면, 우리를 속이려는 많은 사람들의 마수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런 논리적인 생각으로 어떤 문제들을 풀 수 있는지, 이제 살펴보자.



알아야 속지 않는다


5%의 유의수준이 통계적 검증의 잣대로 얼마나 위험한가 하는 문제를 지적하는 부분은 학자로서 양심 선언 같은 느낌이다. p-value 5%라는 기준을 고수할 경우, 같은 실험을 20번 반복하면 평균적으로 한 번은 귀무가설을 기각할 수 있다. 그러면 그 어떤 주장이라도 실험을 통해 검증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정리해서, 존 이오아니디스는 2005년 <왜 학계에 발표된 연구 결과들은 대부분 거짓인가?>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난리가 난 것은 물론이다.


유의수준 장난질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조건부 확률에 대한 몰이해다. (https://brunch.co.kr/@junatul/56) 베이즈 정리는 쉽게 머릿속에 그려지는 개념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설이 옳을 때, 어떤 결과가 발생할 확률'과 '어떤 결과가 발생했을 때, 가설이 옳을 확률'을 혼동한다. 대개의 경우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전자이지만, 우리가 정말로 알고 싶은 것은 후자다. 


유명한 샐리 클라크 사건을 사례로 들어 보자. 전자는 '엄마가 죽인 게 아니라면, 두 아이가 어린 나이에 별다른 이유 없이 죽을 확률이 얼마인가' 하는 질문이고, 후자는 '두 아이가 별다른 이유 없이 모두 어린 나이에 죽었다면, 과연 엄마가 죽인 게 아닐까' 하는 질문이다.


베이즈 정리가 등장해야 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저자의 말대로 베이즈 정리보다는 그냥 2x2 매트릭스를 그리는 것이 이해하기 쉽다. 가설이 옳은 경우와 틀린 경우, 그리고 관찰된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그려 모든 빈칸을 채우면 된다. 이 경우, 엄마가 자기 아이를 연속해서 죽이는 사건 자체가 극악한 확률을 가진 사건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아이 둘이 연속으로 죽었다고 해서 엄마가 살인자라고 단정 짓는 것은 심각하게 어이없는 판단이다.


재심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알콜중독으로 곧 사망하고만 샐리 클라크



수학적으로 생각하면 풀리는 수수께끼


이 책에 나오는 재미있는 분석을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잘생긴 남자들은 성격이 못됐다는 통설이 있다. 그게 사실인지 수학적으로 검토해보자는 것이다. 우선 2차원 평면을 상상해보자. 세로축은 착하고 못된 정도, 가로축은 잘생기고 못생긴 정도를 나타낸다. 그리고 이 2차원 평면에 남자들이 골고루 분포한다고 가정하자. 즉, 잘생긴 남자들은 못됐다는 주장을 거스르는 가설을 세우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못되고 못생긴 (나 같은) 남자들은 아예 데이트 상대로 고려조차 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투명 인간들인 셈이다. 세상의 주목을 받으려면, 착하거나 잘생기거나 둘 중에 하나는 해야 한다. 그래서 실제로 세상의 주목을 받는 부분은 정사각형 전체가 아니라 오른쪽 윗 부분에 위치한 삼각형뿐이다.


투명인간들은 보이지 않으므로, 사람들은 이 삼각형이 남자 전체라고 생각하고 논의를 한다. 착하고 잘생긴 극히 희귀한 남자들이 오른쪽 위 구석에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들은 얼마 되지 않아 잘 보이지 않는다. 잘 보이는 것은 착하고 못생겼거나, 잘생기고 못된 남자들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외모와 성격 사이에 역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세상이 일부 남자들을 투명 인간 취급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우리는 네모난 상자 하나 그려서 알아냈다. 수학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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