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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Jan 09. 2024

오랜만에 예전의 기억 한 조각

데이트가 좋은 이유: 두서없는 대화 덕에 떠올린 추억

배경이미지: 2014년 7월, 그리스레스토랑에서 화장실 간 그와 아들 대신 테이블을 차지한 모자들



함께 한지 10년이 넘는 우리, 집돌이인 그와 함께 하다 보니 어느덧 나도 집순이가 되었다. 집돌이와 집순이가 함께 사니 하루종일 붙어있는 날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그에게 데이트신청을 한다. 우리의 데이트는 함께 동네를 걷고, 동네식당에서 점심을 하는 정도로 아주 소소하다. 2주밖에 되지 않는 방학이었는데도, 이번 겨울방학은 어떤 면에선 너무 길었다. 그래서 그에게 아이들이 등교하는 첫날 데이트를 하자고 했다.


월요일 점심, 우리는 약속대로 동네 태국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생각의 흐름대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나눴다. 


...

그: "예전에 탈린에 갔을 때 너무 배가 고팠던 적이 있어. 애피타이저도 먹고 메인도 먹을 요량으로 레스토랑에 갔어. 일단 애피타이저 두 개를 먼저 시켰어. 애피타이저 두 개 먹고도 메인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그런데 애피타이저 두 개 먹고 나니 배가 너무 부른 거야. 애피타이저 양이 어마어마했거든. 참, 탈린에 맛있는 그리스레스토랑이 있는데."

나: "아, 그 올드타운 언덕배기에 있는 거 말하는 거지? 우리 같이 갔잖아." 

그: "그럴 법 하지."

나: "거기서 당신이 아들 기저귀 갈았잖아. 화장실이 아기 기저귀 갈기엔 좁아서 불편하다고 했잖아."

그: "어 그래 기억난다. 기저귀 갈았던 거. 거기 화장실 불편했어."

나: "와 참 오래된 일인데 참 세세한 일이 기억나네."

그: "그때 수영장 딸린 호텔이라 아들에게 방수 기저귀 입혀서 물놀이도 했는데."

...


2014년 여름의 한순간이 우리의 대화로 또렷해졌다. 아들의 기저귀를 간 것을 둘 다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게 참 신기했다. 그때의 아들은 작고 한없이 귀여웠는데, 훌쩍 자라 1, 2년 뒤면 내 키보다 클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딸은 탈린에 가본 적이 없다. 올해는 이미 다른 계획이 있으니, 내년이나 내후년 여름에 딸까지 네 식구가 함께 탈린여행을 가야겠다. 그리고 두서없는 대화를 나누다 우연히 옛 추억도 떠올릴 수 있게 그와의 동네 점심 데이트도 종종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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