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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은 Mar 16. 2022

동기화를 종료합니다.

브랜드 매니저의 2년 회고와 선언


2020년 1월, 
커리어 패스에 변주를 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다시 돌아가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인데, (아마도?)
아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요약이다. (미리 말하자면, 좀 길다)
어, 잠깐만요. 대표님
그러니까, 같이 일해보자는 말씀이시죠?

평소 스타트업 대표님들과 자주 시간을 보내왔다. 채용 고민이 있으니 만나자는 한 대표님과 강남 한 샐러드 가게에서 저녁 식사 중 한참을 듣다가 내가 던진 질문이었다. 이럴 수가, 채용 상담을 빙자한(?) 스카웃 제안이었다. 미래를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은 기다리는 것이 아닌 직접 만들어보는 것이라며 3개월에 걸친 끈질긴 '사고 초려' 스카웃 영향도 컸지만 (이 과정은 언제 떠올려봐도 감탄하고, 감사한 시간들이다), 막연하지만 오래도록 추구해왔던 모습으로 한 단계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눈 앞에서 강렬하게 반짝였기에 그의 제안에 강하게 이끌렸다. 기회와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결정을 내리는 나에게는 도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로드 자전거를 탈 때 코 끝을 스치는 비릿한 밤 한강 냄새를 열망하고 사랑하던 한강 라이더는 6년간의 서울생활을 빠르게 정리하고 생전 처음 살아보는 곳, 충청북도 충주로 거주지를 옮겼다. 그리고 약 2년 간 브랜드가 성장하는 순간들을 빠짐없이 함께 해왔다. 


그 당시 나는 플랫폼 형태로 푸드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IT 기반의 스타트업에서 경험을 꾸준히 쌓아왔는데, 이 브랜드는 세 번째 회사이자 내가 선택한 첫 번째 제조사였고 나에게는 ‘도전’이라는 단어로 정리된다. 충주에 위치한 스타트업 제조사에서 브랜드 매니저(Brand Manager)로서 브랜드와 관련된 움직임을 계획하고 정의하는 브랜딩과 신제품 기획 및 판매 계획 실행 그리고 성과를 측정하는 상품기획 및 세일즈, 촬영 디렉팅, 브랜드 웹사이트 기획, 브랜드 콜라보 등 콘텐츠 관련 프로젝트 또한 기획하고 실행하며 매 순간 깊게 몰입하였다.
나는 건강한 정신력과 건강한 체력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일을 탄력적으로 잘하기 위해 시작한 오전 운동 후 샤워기 밑에서 내가 한 생각이 ‘지금 진행하는 ㅇㅇ 프로젝트 어떻게 하면 더 잘 되게 할 수 있을까', '왜 성과가 안 나올까, 오늘은 이렇게 해볼까’, 당장 뛰어가 동료와 나누고 싶은 아이디어가 샘솟을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나는 그 브랜드와 동기화되어 있었다.


제천으로 떠난 전사 워크샵에서 사랑하는 우리 선수들과 함께 (뒤에 옅게 깔린 노을 색이 일품이다!)


동기화된 1년 10개월

동기화(Synchronization)는 독립된 2개 이상의 주기적인 사건(디바이스)을 적절한 방법으로 결합, 제어함으로써 일정한 위상 관계를 지속시키는 일이다.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동기화시킨 모든 디바이스에서 계정에 접속할 수 있으며 어떤 디바이스에서 작업을 하든, 그 자료가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것을 뜻한다. 평일과 주말 일상 속에서 보고 듣는 인풋(Input)들을 브랜드와 연결시켰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실마리들을 연결시켜 실무에서 실행 가능한 것들은 제안하고, 실행했다. 그 과정에서 크고 작게 성공하기도 했고 무수히 많이 실패하기도 했다. 나는 이토록 무서우리만큼 몰입했던 동기화되었던 2년의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인생을 살며 어떤 것에 몰입하는 경험을 해본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밝히자면, 난 경험주의자다)


브랜드 다큐멘터리에서 인터뷰 중인 나. 피곤에 쩔어있지만 밝은 미소만은 잃지 않은 미소천사의 모습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은 입고, 먹고, 사는 의식주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업에도 과유불급이 있었던 것. 많은 직장인들이 워라벨(Work-Life Balance)을 외칠 때 일과 삶이 적절히 블렌딩된 형태의 워라블(Work-Life Blending)의 가치를 쫓았던 나였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일터와 내 삶을 분리시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과몰입은 브랜드 매니저 역할에 집착하게 만들었고 빽빽하기만 한 틈 없는 하루하루를 살았다.
한 번은 오프라인 공간 초안을 기획하는 업무를 갑자기 맡게 되었고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유관부서에 전달해야 했다. 해내고 싶었다. 잘 해내고 싶었다. 야근 후 집에 돌아오니 밤 11시였다. 생각과 질문을 정리하여 현업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의 통화에서 발견한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새벽 4시가 넘어 기획을 마무리하고 잠이 들었다. (물론 다음 날은 정상 출근하는 평일이었다. 기꺼이 시간을 내어준 선배님, 감사합니다.) 치열한 주중을 보낸 뒤 맞이한 주말에는 산과 논을 넘어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치곤 다가오는 일주일을 준비했다. 돌이켜보면 내 일주일의 시작은 늘 토요일 저녁, 혹은 일요일 오전이었다.


브랜드 매니저는 회사의 '작은 대표'입니다.
사업의 흐름을 대표 못지않게 잘 알고 있어야 하죠.



일을 더 잘하고 싶어 업에 대한 스터디를 할 때 마주했던 글 중 '브랜드 매니저는 회사의 작은 대표다'라는 문장이 있있다. 그 시절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도맡아 많은 짐을 지고자 했던 것 같다. 많은 짐을 가지고 서핑보드에 올라탄 서퍼는 서핑보드와 한 몸이 되지 못했고, 뜨거운 태양 아래 혹독하게 밀려드는 파도를 중심을 유지하며 타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 큰 파도는 업의 경계를 넘어 내 삶으로 아주 거세게 흘러 들어왔다. 동시에 ‘나의 것'을 만들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어서였을까. 시간이 갈수록 나의 시간을 ‘원하는 일'에 투자하고 싶고 ‘원하는 일'을 또렷하게 찾고 싶다는 마음이 강력해졌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일'은 무엇인지, 어떠한 형태로 일을 하고 싶은지, 일을 통해서 어떤 것을 이루고 싶은지, 궁극적으로 어떤 모양의 삶을 빚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정의를 내리고 싶었다. 원하는 방향대로 내 길을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이 거세게 일었다. 무엇보다, 내면의 목소리를 누구보다 내가 있는 힘껏 귀 기울여 들어주고 싶었다. 명함 한 장에 가지런한 디자인으로 설명되는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이 되고 싶었다. 그리하여 좀처럼 직장인에게는 쉬이 주어지지 않는 쉼표를 자발적으로 찍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평소 나에게 영감을 주던 이야기들은 나보다 조금 더 이른 나이에 브랜드를 창업한 사람이나, 다양한 도전을 거듭하며 어제보다 성장한 오늘을 만들어가는 이야기였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탐색하고 정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말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 '되기로' 결정했다.


부산 한 달 살기 첫날 셀피. 손을 아주 잘 쓰는군?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렇게 오늘도 질문의 방향은 외부가 아닌 내부로 향한다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그간의 종적들을 정돈하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어떠한 일을 해왔는지, 어떠한 일을 하고 싶은지, 그 일을 하는 이유,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방향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시간 말이다. 대신, 기간을 약속해두고서. 그 이유는 제한적인 기한 내 더욱 치열하게 질문에 답을 할 것이고 이 치열함은 내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나는 약 2개월간의 기간 제한을 두었다. (더 길어질지도 모르겠다) 먼저 1개월은 부산 한 달 살기이다. 어깨를 잔뜩 웅크리게 만들었던 겨울이 안녕을 고하고 사방에서 생명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봄이 성큼 다가온 3월, 나는 사랑했던 브랜드와의 동기화를 종료했고 지금은 부산에 머물고 있다.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하는 시간을 찐-하게 가지며 하고 싶은 방향을 향해 창업을 하든 그 방향을 함께 할 수 있는 회사를 찾을 것이다. 오늘은 부산 한 달 살기의 세 번째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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