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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관찰자 Mar 02. 2016

지금, 제주도

지금은 제주도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니 푸르른 바다색의 벽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누우니 기분 좋은 햇살이 창문 가득히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한 동안 멍하니 창문에서 들어오는 햇살을 보고 있으니 봄이 온 것만 같았고, 이어서 나는 지금 제주도에 와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어제 오후에 충동적으로 비행기 티켓을 끊어 다른 사람들은 한창 퇴근할 시간에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왔습니다. 어쩌다가 나는 지금 제주도에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이렇게 급작스럽게, 아무 계획 없이, 그것도 혼자서 어딘가를 와보긴 처음이라는 걸 알고서 마음 한 구석에 조금의 당황스러움이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피어오르는 당황스러움이 커지기 전에 나갈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어디를 가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푸르른 바다를 보면, 그 바다를 따라서 걸어야겠다는 계획답지 않은 계획으로 가지고.









내가 아닌 남이 해줘서 맛있는 간장 계란밥을 먹으며 ⓒshinys





바다를 따라 걷기 ⓒshinys



남이 해줘서 맛있는 간장계란밥을 맛있게 먹고서 30분 전에 정한 '푸르른 바다를 따라 걷기'를 위해 걷고 또 걸었습니다. 걸으며 음악을 들을까 싶어 이어폰을 가방에서 꺼내다 좋아하는 음악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소음만 될 것 같아 다시 넣어두었습니다. 그러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파란색 화살표가 눈에 보였습니다. 6년 전쯤 제주도를 처음 왔을 때에 따라 걸었던 파란색 올레길 화살표, 그 표시를 따라서 조용하고 부지런하게 걸었습니다.




이게 길인가 싶었던 올레길 ⓒshinys





나 때문에 새도 놀래고, 새 때문에 나도 놀랬던 길 ⓒshinys






이 끈을 따라 걸으면 ⓒshinys



올레길을 걷다 보면 이 길이 올레길이 맞다는 걸 보여주는 표시가 있는데 그러한 표시를 볼 때마다 내심 반갑고 내가 잘 가고 있구나라는 확인을 받은 것 같아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지금 내 인생의 방향도 이 곳의 올레길처럼 표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지금 내가 가려는 이 방향이 맞다는 걸 확인받는 표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생각을 더하며 올레길의 종료 지점인 쇠소깍으로 향했습니다.





나무도, 물도 푸르르다 ⓒshinys





바다와 강물이 만나는 쇠소깍 ⓒshinys






하늘색과 초록색의 만남 ⓒshinys



이제 다시 공천포로 돌아가기 위해 큰 도로로 걸어 올라가는데 어제 이모들과 했던 대화가 생각났습니다.


'너의 젊음이, 너의 용기가, 너의 자유로움이 부럽네.'


이모가 보낸 그 짧은 문장을 보면서 내가 젊다는 것을, 내가 용기가 있었다는 것을, 내가 자유롭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전까지는 내가 젊다는 것을, 용기가 있었다는 것을, 자유롭다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일을 구하면서 내 나이에 대해 생각해보고 더 이상 나는 젊지 않다고, 근거 없는 걱정들로 하고 싶다는  말뿐인 용기 없는 사람이 됐다고, 남들의 시선에 갇히고 나에게 대한 압박감으로 갇혀있었습니다. 친구들에게는 너는 아직 젊다고, 너는 할 수 있다고, 너는 자유롭게 살라고 말하면서 정작 나 자신에게는 그런 여유를 주지 않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누군가의 부러움으로 내가 가진 것을 알게 된 것이 부끄러웠지만 내가 가진 것을 알게끔 해준 그 부러움에 감사했습니다.





ⓒshinys







다시 돌아온 공천포, 카페로 향하는 길 ⓒshinys






ⓒshinys







바다의 반짝거림이 참 좋다 ⓒshinys







바다를 배경으로 한 큰 액자가 있는 카페 ⓒshinys







사진으로 담기지 않는 멋진 그림 ⓒshinys


아직 하루가 많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내일도,  내일모레도 바다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부정적인 잡음으로 가득 차 있는 머릿 속이 깔끔하게 정리되고, 바다의 푸르름을 보며 젊음을, 용기를, 자유로운 생각으로 채워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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