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여행이 고민되는 사람에게
이번 주말에 떠나는 여행을 앞두고서 생각해보니 벌써 4번째 여행이었다. 혼자 떠나는 4번째 여행. 적은 것 같기도 하고, 많은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혼자서 여행 다니기 시작한 이유나 계기는 대단하지 않다. 주변의 친구들은 하나둘씩 바쁜 직장인이 되어갔고, 같이 휴가를 맞추기가 힘들어지고, 겨우 날을 정하면 생각치 못한 여러 가지 이유로 무산되는 일. 그런 경험 한 번씩은 다 있으니까.
그렇게 약속하고 무산되고, 약속하고 무산되기를 몇 번 겪고 나니 이러다가는 앉아서 모니터 여행만 하고 있는 거 아닌가 싶었다. 그런 서글픈 생각은 긍정을 가장한 쿨함과 창의적인 걱정, 두 가지 생각으로 이어졌다.
'꼭 같이 가라는 법도 없고. 가고 싶으면 가면 되는 건데, 혼자 가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아... 괜찮으려나. 국제미아 되고 그러는 거 아니야...?'
비행기표 결제창을 띄어두고 오락가락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있던 엄마가 한 마디 툭 던졌다.
"갈 수 있을 때 가는 거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많이 다녀. 내가 지금의 너라면 고민도 안 하고 바로 간다."
엄마의 오케이 사인을 기다렸다는 듯이 방황하던 손가락은 결제 버튼을 누르게 됐다. 그게 혼자 여행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으로 나는 매년 연례행사처럼 일 년에 한 번은 꼭 혼자서 여행을 다니고 있다.
처음 혼자 여행을 하루 앞둔 밤에 설렘과 기대에 잠을 설쳤으면 좋았겠지만, 역시나 나의 특기답게 끝없는 걱정과 근심이 머릿속에서 샘솟아 잠을 설쳤다. 덕분에 퀭하디 퀭한 눈으로 공항으로 향했고, 비행기에서 기내식으로 배를 채우고, 설쳤던 잠을 보충하고 눈을 떴다. 그리고 걱정의 85% 정도는 차지하는, 여행의 가장 큰 고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새벽 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경유지인 베트남 공항에 도착해 나는 과연 숙소로 무사히 잘 도착할 수 있을까.'
'밤늦게 혼자 택시 타는 것도 안 좋아하는데,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나라에서, 말도 안 통하는 아저씨랑 단둘이서, 다른 데를 데려가도 나는 모를 텐데, 차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은 외계어 같으니 더 불안한 것 같고, 나는 과연 무사히 잘 도착할 수 있을까.'
정말 다시 생각해도 그렇게 바짝 긴장한 상태로 택시를 타본 건 처음이었다. 택시를 탄 1시간 정도의 시간에 과장을 덧붙여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리에 가득했다. 하지만 모든 걱정의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운전하는 내내 표정의 변화도 없고 말이 없던 그 택시 아저씨는 숙소 앞까지 무사히 잘 데려다주셨고, 입가에 살짝 어색한 미소를 머금고 좋은 여행하라는 짧고 굵은 인사를 해주시고 떠났다. 그때, 뒷자리에 앉아서 했었던 수 많았던 의심에 미안하고 아무 일이 없었다는 그 사실 자체에 어찌나 감사하던지. 그리고 그날 밤, 이렇게 아무 일없이 숙소에 누워있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감사하며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
그 후에 여행을 다니며 길을 묻거나 주문을 하거나 숙소에서 짧은 인사나 대화를 하게 되는 사람들도 저마다 친절했고, 여행이 끝나갈 때쯤에는 혼자 머리 속 그려봤던 수많은 걱정들을 다시 생각하며 나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에 감탄도 하고 웃음이 났다. 그리고 생각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 훨씬 많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걱정하느라 갈가말까 고민하지 말고 갈 수 있을 때 많이 다니자.'
혼자 여행을 하면서, 같이 여행을 하면서 자잘 자잘하지만 여러 가지 경험들(시행착오라고 하는 게 가까울지도)이 쌓여가니 떠나는 게 더 쉬워졌다. 몸도 마음도 가볍게, 쓸데없는 짐과 걱정은 비워버리고. 그렇게 나는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보기에는 '혼자서도 겁 없이 잘 다니는 애'가 됐다.
먼저, 여행 추진 능력이 향상됐다. 처음 혼자 여행일 때보다 점점 더 능숙한 솜씨로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결제까지 일사천리로 이어나간다. 가격이 저렴하면 좋겠고 이동성도 좋아야 한다는 단호한 기준으로 숙소를 잡는다. 비행기 표랑 숙소만 해놓으면 여행 준비의 반 이상은 한 거니까.
다음은 마인드의 변화라고 할까. 위에서도 말했지만 모든 일에 쓸데없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지금'을 더 즐기고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큰 변화는 '혼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 이전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더 많이 사람들 속에서 북적북적하게 있기를 원하고, 관계에 많이 의존하고 외로워하는 편이었다는 걸 혼자 여행하면서 알게 됐다. 지금도 사람들을, 그리고 그 사람들과의 관계를 좋아한다는 점은 같지만 그만큼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꼭 그런 사람과의 관계 때문만은 아니라도 혼자서 정리되지 않았던 내 생각이나 마음을 차분하게 꺼내보거나 접어두기에도, 가끔은 보기 싫어 외면했던 솔직한 나의 상태를 들여다보게 된다.
혼자 여행은 같이 하는 여행보다 감당해야 할 일도, 준비해야 할 일도, 결정해야 할 일도 많다. 하지만 정말, 정말로 자유로울 수 있는 여행은 혼자 여행이다. 여행의 A부터 Z까지, 어디로 떠날지를 정하는 것부터 그곳에서 뭘 보고 먹으며 시간을 보낼 건지 그 모두가 내 마음대로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내 마음이고.
그 시간에 대해서는 온전히 내가 중심이 되어서 보낼 수 있다. 아는 사람 하는 없는 낯선 곳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며 나 자신한테 집중하는 여행. 그러니 혼자 여행은 해볼 만하다. 충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