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레이드러너, 2049] 리뷰
※이 글은 영화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질문을 건넨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혹은 그녀)에게 사적인 질문을 던진다. 취미는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상대를 알고자 하는 것은 상대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과 동의어 아니겠는가. 자신과 타자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첫 번째는 ‘물음’에서 시작된다. 대화의 시작을 간단한 질문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은 대화의 가장 기본적인 1단계이다.
영화 [블레이드러너](두 편 모두) 속에서 이러한 ‘질문’은 양가적인 성질을 가진 것으로 그려진다. 1982년 작인 [블레이드러너]에서는 보이드-캄프 테스트(리플리컨트를 색출하기 위한 일종의 거짓말 탐지 시스템)를 통해 리플리컨트를 감별하며, [블레이드러너, 2049] 속에서는 기준선 테스트를 통해 해당 리플리컨트가 인류에게 위해가 되는 성격을 지녔는지 검사한다. 전작에서는 리플리컨트와 인간을 구분 짓는 경계선으로 사용되지만, 후속작에서는 인간과 리플리컨트의 감별이 아닌, 리플리컨트들 속에서 불순분자를 걸러내는 용도로 변모하였다. 이는 이 영화가 인간과 리플리컨트, 두 종족 사이의 문제가 아닌, 리플리컨트 스스로 자신의 상황에 관해 자문하며 고뇌하는 과정을 그릴 것이라는 뜻이다.
즉, 전작 속에서는 리플리컨트가 자신들이 인류만을 위해 노동하는 노예가 아닌 영혼이 있는 생명임을 자각한 상태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로이 배티(룻거 하우어)나 데커드를 사랑한 레이첼(숀 영) 등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자각하며 인간에게 투쟁한다. 그러나 [블레이드러너, 2049] 속 K는 다르다. 그는 철저히 분명한 수단과 목적으로 인해 만들어진, 인류를 위한 도구일 뿐이며, 스스로도 그리 생각한다.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리플리컨트를 잡는 블레이드러너인, K(라이언 고슬링)는 탈주 리플리컨트인 사퍼 모튼(데이브 바티스타)을 찾아오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K는 사퍼에게 몇 가지 질문을 건네지만, 그 질문들은 상대에 대한 궁금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임무(도망친 리플리컨트를 퇴역시키는 일)를 위해 몇 가지 확인 절차를 거치는 것뿐이다. 인간이 리플리컨트에게 건네는 질문(기준선 테스트) 역시 사적인 부분, 궁금증에서 오는 질문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도구로서 리플리컨트에게 행해지는 안전 검사일뿐이다. 이렇게 K는 타인들과 어떤 유기적 연결도 이루지 못한다.
그런 K가 기댈 곳이라고는 자신과 똑같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지능 프로그램 조이(아나 디 아르마스)다. 그는 조이를 대할 때는 다른 이들(인간이나 퇴역 대상인 리플리컨트들)을 대할 때와는 사뭇 다르다. K는 그녀에게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를 물어보며 그녀를 살아있는 사람처럼, 연인처럼 대한다.
그러나 영화 속 사건이 발생하며 K는 점차 변모한다. 그는 리플리컨트가 낳은 아이를 찾는 임무 과정 속에서 실체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다. 그리고 아이가 죽었다고 거짓 보고한 채, 독단적으로 수사에 나선다. 그가 처음으로 ‘도구’에서 벗어나 자기 의지로 무언가를 향해 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K는 자신이 어쩌면 자신이 찾고 있는 그 아이(리플리컨트에게서 태어난)일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생겨난다. 조이는 기뻐한다. 만약 그 아이가 자란 것이 K라면 그는 단순한 껍데기가 아니라 영혼을 갖춘 정말 특별한 생명이 된다. 그렇게 되면 그 특별한 사람이 사랑해주는 자신(조이) 역시 특별한 존재가 될 것이라 생각해서다.
이 과정에서 데커드를 찾아온 K는 그에게 자신의 어머니일지도 모를 레이첼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본다. K는 비로소 인간에게서 만들어진 하위 계급(리플리컨트, 인공지능 프로그램) 사이에서만 나누던 일종의 관계 교류를 인간인 데커드와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와중 그들은 월레스의 습격을 받게 되고, 백업되어 있던 휴대기기 속 조이 데이터를 잃게 된다. 심지어 자신이 리플리컨트에게 태어난 아이가 아닌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함정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K는 노예 해방을 꿈꾸는 리플리컨트 테러 집단에게서 데커드를 죽이라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그러나 K는 데커드를 죽이지 않고, 그를 그의 딸에게 데려다주며 최후를 맞이한다.
K가 자신에게도 영혼이 있는 생명임을 자각해가는 과정은, 조이, 러브, 데커드, 세 인물을 통해서 극명하게 표현된다. K의 관계망의 첫 번째인 조이는, 그와 그녀의 관계가 인간과 다르지 않지만 그것은 그들 안에서만 이뤄진다는 제한을 가진다는 점에서 K가 영혼이 있는 생명임에도 이를 자각하지 못 한 채 갇혀있는 것을 보여준다. 두 번째 관계는 월레스의 리플리컨트 러브(실비아 휙스)이다. 그녀는 리플리컨트지만 일련번호나 코드명이 아닌 이름으로 불린다. 그리고 리플리컨트를 창조해내는, 신으로 보일 수 있는 월레스의 가장 총애받는 위치에 있다. 그것으로 하여금 러브는, 그녀 자신이 월레스에게 특별한 위치에 있음을 끊임없이 확인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는 신에게 간택받은 특별한 존재로서 영혼을 부여받으려는 것이다. 러브와 K가 처음 대면하는 기록 보관소 장면에서는 레이첼과 데커드의 과거 보이드-캄프 테스트 녹취록을 함께 듣는다. 러브는 K에게 블레이드러너 일은 괜찮은지 물어본다. 그러나 그것은 K에 대한 진정한 호기심이 아닌 인간의 흉내에 지나지 않는다. K도 이를 알아차린다. K는 과거 녹취록에서 레이첼이 데커드를 사랑한다는 것을 발견하지만, 러브는 그 대화를 감정이 아닌 규격과 형태로 말하기 때문이다.
결국 영화 속 러브와 조이는 모두 가짜인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 영혼이 있음을 의심하기 때문에 조이는 K에게, 러브는 월레스에게 강한 애착(혹은 집착)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관계를 형성하는 데커드만은 다르다. 그는 자신의 아이를 위해, 그 아이를 포기한 채 숨어 지낸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 자신도 사라져야 하고, 사랑하던 레이첼, 그리고 자식인 아이까지 이 세상에서 흔적조차 남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앞선 조이, 러브, 두 명의 존재는 타자를 매개체로 자신을 정의하려 하지만, 데커드는 타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존재이다. 그는 타자와의 관계로 자신을 정의하지 않는다. 자신의 기억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초록 빛깔의 눈을 가진 레이첼을 사랑하며,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는 그 자신 자체로써 자신을 정의한다. 그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마지막 K는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뜻으로 데커드를 위해 몸 바쳐 싸워 그를 살린다. 그리고 그를 그와 레이첼의 자식이 있는 기억 제작소로 데려간다. K는 조이에게 휴대용 기기를 선물했던 것처럼, 심어진 기억인 과거가 간직한 나무 조각 말을 데커드에게 건넨다. 그리고 마침내 K는 웃어 보인다. 그는 타자로 인해 자신을 형성하는 것이 아닌 먼저 자신을 세운 뒤 타자와의 관계를 형성했다. 그는 마침내 탄생한 후 소멸한다.
독일의 사회학자인 니콜라스 루만은 사랑과 같은 소통 매체를 통해 사회를 구성하는 체계를 정립하려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사회는 우리 개개인의 사유(심리적 체계)를 전제 조건으로 삼지만, 실제로는 그 사유를 철저히 배재한 소통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남들이 이해했다고 생각한 채 행동하지만, 사실 그들이 인식하는 ‘나’라는 존재는 나의 사유는 섞이지 않은, 모두 타자의 사유로만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 문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질문과 상통한다. 사회 안의 관계 속에 내가 있는지, 나라는 자아가 존재하기에 개개인들이 이룬 사회가 발생한 것인지 말이다. 영화 [블레이드러너, 2049]는 사회적 관계를 통해 건설된 존재들이 지닌 한계를 지적한다. K는 데커드에게 데리고 있는 개가 진짜냐고 묻는다. 데커드는 모르겠다며 개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한다. 자신의 존재는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마지막 K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