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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문 Nov 29. 2018

드문드문 쳐진 거미줄로는 아무것도 잡지 못해

영화 [거미줄에 걸린 소녀] 리뷰

  실제 언론인 출신의 스티그 라르손의 손에서 탄생한 소설 [밀레니엄] 3부작은 자국인 스웨덴을 넘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작품이 되었다. 안타까운 작가의 타계로 인해 원래 10부작으로 계획되어 있던 [밀레니엄]은 캐릭터와 세계관 구축을 담당한 첫 단추(3부작)만 꿴 아쉬운 미완 상태로 남겨질 뻔했으나, 새로운 작가 다비드 라게르크란츠를 만나 새롭게 시작을 알려왔다. 그러나 막상 라게르크란츠의 작품을 읽기 시작했을 때,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선 것이 사실이다. 실제 스티그 라르손은 자신의 형과 아버지와는 척을 진 채, 사실혼 관계인 에바 가브리엘손과 함께 살았다. 그가 죽은 후, 남겨진 에바는 자신에게 들려줬던 후속 스토리와 전체적인 연작 가이드라인을 알고 있었기에 그를 대신해 밀레니엄을 집필하려 했지만, 스웨덴 법률 상 법적인 혼인관계가 아니기에 그의 지적재산권이 그를 싫어하던 아버지와 형제에게 돌아가 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실상 이후 작품들은 진정한 [밀레니엄] 시리즈라고 볼 수 없다. 작품의 외적이건 내적이건, [밀레니엄]을 사랑했던 팬으로서 4부 [거미줄에 걸린 소녀]은 나에게 그렇게 다가왔다. 

원작가인 스티그 라르손
4부 [거미줄에 걸린 소녀]부터 밀레니엄을 집필하게 된 다비드 라게르크란츠


데이빗 핀처 감독의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 사실상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한 사태에 소니 측은 후속작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특히 007 시리즈로 몸 값이 너무 올라버린 다니엘 크레이그(미카엘 블롬크비스트 역)를 그대로 가져가기에는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국 제작사는 앞 선 3부작을 건너 띈 채 4부의 영화화로, 뒤이어 나올 새로운 프랜차이즈 시리즈를 설립할 계획을 갖게 된다. 


소니는 새로운 시리즈를 세울 선장으로 영화 [맨인더다크]의 감독 페데 알바레즈를 기용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노인이 어둠 속에서 자신보다 훨씬 젊고 다수인 도둑들을 사냥하는 [맨인더다크]는 독특한 내용과 특수한 상황에 놓인 인물들 간의 액션이 서로 조화롭게 녹아져 시너지를 발휘했던 영화이다. 이때부터 소니의 영화 제작 방향성은 IOT(사물인터넷) 시대에 뛰어난 해킹 능력을 가진 사람의 그 능력을 활용한 액션 영화가 되었다. 실제로 클레어 포이(리스베트 살란데르)의 넘사벽 능력치의 단독 주인공 활약은 리스베트 캐릭터가 가진 해킹 능력을 극대화시켜주었으며, 그것을 이야기의 흐름이 방해되지 않을 만큼의 각색으로 재미난 오락 영화가 탄생했음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영화 [맨인더다크]의 감독 페데 알바레즈가 새로운 밀레니엄의 감독이 되었다.


그러나 이 방향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나 제작사에서 간과한 것이 있다. 원작 [밀레니엄]이 가졌던 매력에 대해,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이유에 대해 정확한 지점을 놓치고 있다. 영화는 앞 선 3부작 내용을 들어내면서 4부로 시작하는 탓에 다양한 인물 관계에 대해서는 굉장히 불친절한 영화가 돼버렸다.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관계에 대해서는 앞 선 내용들이 날아간 탓에 뉘앙스만 줄 뿐이며, 가장 중요한 대척점인 카밀라 살란데르와의 관계는 결국 모든 걸 뒤집고 새로 창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활약이 줄어든 미카엘 블롬크비스트


물론 [거미줄에 걸린 소녀]의 각색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훌륭하기까지 하다. 소설 [밀레니엄] 시리즈의 이야기 골격은 전반부까지는 이야기의 실체를 감쳐둔 채, 여러 가지 힌트들을 흩뿌리며 그것을 쫓는 다양한 인물들의 추격을 담은 추리소설의 성향이 강하고, 후반부에 들어서는 그 모든 추격이 한 곳으로 응집하며 종전에 가서는 리스베트와 미카엘이 자신들과 연결되어 있는 해당 사건(악의 무리 응징)을 해결하는 양상이다. 같은 패턴으로 한 번 실패했던 경험을 발판 삼아서인지 추리 부분과 추적 스릴러 요소는 조금 덜어내고 리스베트의 액션은 배가 시켰다. 특히 원작 속 프란스 발데르 박사와 리스베트의 연결지점이 그의 부탁으로 미국 정보국에서 몇 가지 정보를 빼내 오는 것에서 발전하여 그의 소프트웨어를 빼내 오는 것으로 바뀌었고(이 때문에 소설 속 프란스의 은신처에서 처음 카밀라 일당과 맞닥뜨리는 것보다 빠르게 액션 장면이 발생), 그 소프트웨어가 박사에게 전달하려는 시점에 카밀라 일당에게 공격받아 탈취당하는 전개로 각색되며 영화 초반부부터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게다가 원작 속 프란스 발데르와 그의 아들에 대한 내용이 상당 부분 축소되며(소설 속에서 사건이 야기되며 진실을 추적하는 내용을 담당하는) 그런 이야기의 빈 부분을 에드워드 니덤의 캐릭터 변화로 액션으로 치환해줬다. 에드워드 니덤의 경우 원작 속에서 배불뚝이 아저씨로 나오며, 사건에 있어서도 스웨덴으로 나라를 넘어올 정도로 리스베트를 쫓긴 하지만 직접적으로 발로 뛰는 스타일보다는 정치적으로 인물들을 압박하여 쫓는 캐릭터였다면, 영화에서는 연령대를 낮추며 전직 군인 출신으로 액션에 가담한다.

미카엘보다 두드러지는 활약을 보이는 에드워드 니덤


제일 중요한 [밀레니엄] 전반에 깔린 억압받고 피해 입는 여성들에 대해서도 나름에 이해를 갖고 잘 담아낸 듯싶다. 초반 시퀀스에서 가정폭력범 사업가를 혼내주는 장면은 소설 속에서 치과의사 이를 몇 개 뽑아냈다는 간단한 서술에서 벗어나 리스베트에게 그런 피해 여성들을 구원해주는 안티 히어로적인 면을 부각해줬다. 게다가 원작에서 프란스 발데르의 전 부인이 자신의 남편에게 매 맞는 설정과 그의 아들 아우구스트를 통해 보이는 아동 학대에 대한 관점은 리스베트와 카밀라의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대결구도로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그로 인해 리스베트 자매가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받았다는 설정(원작에서는 어머니가 그러한 학대를 받았고 자매는 폭력에만 노출된 걸로 묘사)과 리스베트가 동생인 카밀라를 버리고 도망쳤기 때문에 이에 원한을 품은 것으로 각색(원작에서는 카밀라는 자신이 버려졌다는 이유라기보다는 선천적으로 아버지를 닮은 사이코패스이기에 자신과 반대되는 언니를 죽이는 게 숙원 사업이 된 것이다.)되었다. 모두 앞선 사전 스토리들이 생략되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초반 시퀀스 속 학대받는 여성을 구원하는 리스베트의 모습


스티그 라르손에게서 탄생했던 리스베트와 미카엘, 잡지사 밀레니엄은 그 얽히고설킨 인물들 간의 이해관계와 그 속에 숨겨진 추악한 범죄들이 스웨덴에 감춰진 어두운 이면과 합쳐져 시너지를 냈던 작품이다. 러시아에서 스웨덴으로 망명한 리스베트의 아버지는 그의 정치적 입지 덕분에 그가 휘두르는 폭력과 불법이 정당화되어 버린다. 심신 미약 상태라는 이유로 법에서 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리스베트와 그런 그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정치적 신념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은 채 늙고 초라해진 미카엘뿐이다. 다비드의 후속 작품들을 그런 둘이 만들어냈던 앞선 서사를 무시한 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면, 사실 그의 작품은 그저 그런 장르 소설에 불과할지 모른다. 소니의 4부로 시작하는 시리즈 리부트는 바로 이런 맹점으로 인해 [밀레니엄]이라는 명성에 비해서는 그저 그런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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